플레이브(PLAVE)는 MBC 영상미술국 VFX팀 출신 이성구 대표가 설립한 블래스트(VLAST)에서 2023년 3월 데뷔시킨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AI 생성 캐릭터가 아닙니다. 실연자가 센서를 착용하고 춤추고 노래하면, 그 움직임과 목소리가 곧바로 캡처되어 CG로 변환됩니다. 이 하이브리드 제작 방식 덕분에, 무대 위 캐릭터에는 사람의 숨결과 CG의 역동성이 동시에 스밉니다. 플레이브의 무대는 기술의 총합이 아니라, 사람과 데이터가 결합된 새로운 공연 양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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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시네마에서 단독 상영된 플레이브의 숏 콘텐츠 / 출처: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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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스템 위에서 플레이브는 전통 아이돌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2025년 2월 발매된 미니 앨범 〈Caligo Pt.1〉은 초동 판매량 103만 장을 돌파하며 버추얼 그룹 최초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고, 타이틀곡 ‘Dash’는 미국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 진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8월부터는 버추얼 아이돌 최초로 아시아 투어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의상, 숙소, 이동에 드는 비용이 없다는 점에서 소속사는 “기존 아이돌 대비 광고 효율이 두 자릿수 이상 높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은 무대의 경계를 확장했고, 효율적인 비용 구조는 산업의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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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논쟁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2025년 2월, MBC의 한 라디오 진행자의 “플레이브는 킹받는다. 안 보이는데 어디를 보냐”는 발언은 팬덤의 항의를 불러왔고, 그는 곧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실체 없는 캐릭터’를 향한 사과가 정당한가를 두고 ‘과잉 팬덤’과 ‘세대 간 감수성 차이’가 충돌했지만, 이 논란은 버추얼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놓고 사회적 합의가 새로 써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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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브 팬덤의 핵심은 ‘빈칸을 메워 나가는 서사적 몰입’에 있습니다. 병역, 학폭, 스캔들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대신, 캐릭터의 성격·서사·감정은 팬의 해석과 상상에 따라 확장됩니다. 또한, 팬은 더 이상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버추얼 아이돌의 윤리 감시자이자 공동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2022년 중국의 5인조 버추얼 걸그룹 A-SOUL은 실연자의 혹사와 열악한 처우가 밝혀지며 팬덤이 굿즈 환불과 보이콧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는 가상 캐릭터조차 노동 권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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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정체성을 재현하지만, 관계는 법의 바깥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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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의 실체는 기술로 구현된 CG나 목소리가 아니라, 그 위에 덧입혀진 감정과 관계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법제는 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4년 중국 베이징인터넷법원은 “AI가 복제한 타인의 음성은 인격권 침해”라고 판결하며, 음성도 보호받아야 할 퍼스널리티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2025년 한국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이용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통해 음성·모션 데이터에 대한 인격권 보호 원칙을 제시했지만, 이는 버추얼 캐릭터 실연자의 권리나 수익 배분 구조까지는 담아내지 못합니다.
버추얼 아이돌이 ‘진짜’처럼 느껴지기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딥페이크, 데이터 유출, 실연자 교체 같은 문제는 단지 기술의 오류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명확한 계약이 부재한 데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지속 가능한 가상 서사를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적 틀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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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산업 30년, 서사를 움직인 것은 언제나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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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H.O.T.가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이라는 공동체를 탄생시켰다면, 2025년의 팬덤은 캐릭터의 목소리와 연기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노동과 권리까지 들여다봅니다. 아이돌 산업이 서른 해를 달려오는 동안, 기술은 아이돌의 몸을 지우고, 국경을 넘으며, 무대를 가상으로 재편했습니다. 그러나 서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팬덤은 사랑으로 이야기를 쓰고, 연대로 윤리를 바로잡으며, 때로는 보이콧으로 산업을 교정해왔습니다. 팬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스토리텔러이자 공동 기획자입니다. 플레이브의 무대가 ‘진짜’로 느껴지는 이유는 정교한 그래픽이나 딥러닝 보컬이 아니라, 그 위에 감정을 불어넣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버추얼 아이돌의 본질은 ‘코드’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이야기와 관계 맺기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팬들이 어떤 기준으로 ‘진짜’를 인정하고, 어떤 책임을 요구하느냐가 앞으로의 무대를 결정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불어넣는 이야기 안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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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민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강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특히 웹콘텐츠를 중심으로 말과 이야기, 감정과 정체성의 흐름을 연구합니다. 번역과 문화정책 등 언어와 사회를 연결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콘텐츠와 언어, 사람 사이를 천천히 유동(遊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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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행보가 무척 뜨겁습니다. 그만큼 플레이브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도 활발히 오가고 있는데요. 오늘의 악씨레터를 통해 그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새로운 아이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 흐름이 일시적인 열풍에 그칠지, 아니면 K-Pop의 또 다른 진화로 이어질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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