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흥행 1위 <너자2> |
|
|
<너자2>는 올해 중국 춘절 연휴에 개봉해 역대급 흥행 기록을 세운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도 꽤 많이 알려졌죠. 명나라 고전소설 『봉신연의』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반항적인 소년 신 ‘너자’가 인간 세상과 친구를 구하며 진정한 영웅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무려 3억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아웃2>를 제치고 전세계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예상 누적 수익은 무려 20억 달러(한화 약 2조 9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단한 기록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흥행 수익의 99% 이상이 중국 내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국가별 예상 수익은 중국이 19억 7,300만 달러, 북미가 1,792만 달러, 호주는 396만 달러 등인데요. 아직은 내수 편중이 강하지만, 동시에 중국 시장의 막대한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기록으로 <너자2>는 <아바타>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바타: 물의 길> <타이타닉> 등에 이어 역사상 20억 달러 흥행 기록을 돌파한 7번째 영화가 됐고, 또 할리우드가 아닌 아시아 영화가 20억 달러 수익을 올린 최초의 영화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
|
|
<너자2>는 이 흥행 열기에 힘입어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피규어 브랜드 팝마트의 ‘너자’ 피규어 랜덤박스는 출시 직후 완판되었고, 중국의 중신(中信)출판사가 낸 ‘너자’ 공식 설정집과 스핀오프 그림책은 4,618만 위안(한화 약 83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중국의 한 연구소 보고에 따르면 ‘너자’ 관련 IP 상품은 피규어, 의류 등 50종 이상, 총 매출은 수십억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
|
|
그런데 이러한 거대 산업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이라는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자2>에는 1,900개 이상의 특수효과 장면을 포함해 총 2,400개가 넘는 장면이 들어갔는데요. 노동자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사람을 갈아 넣는(磨人) 작업’이라고 표현하는데, 4천 명이 넘는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이 3년 이상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습니다.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자기 자신을 ‘갈아 넣는’ 것은 중국이든 한국이든 똑같네요. 한 장면을 완성하는데 보름에서 한 달이 걸리는 것도 흔한 일이고, 감독 역시 “새벽 4~5시까지 야근은 일상”이라고 밝혔죠. 이처럼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그림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대개 척추측만증, 허리 통증, 건초염, 안구건조증 등과 같은 직업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월급은 2,000위안(한화 약 38만 원!)에 불과한 경우도 흔하다고 하네요.(이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영화는 2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지만, 이러한 영화의 흥행은 노동자들의 소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
|
|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장시간 노동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닙니다. 2016년부터 유행한 ‘996근무제’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에 12시간 주6일 근무라니요! 정말 살인적인 노동조건입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 요즘에는 ‘896근무제’(오전 8시~밤 9시, 주 6일)가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이 직원들에게 ‘896근무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007근무제’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 24시간, 주 7일 근무를 의미하는 자조적 표현으로, 퇴근 후에도 업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한 말입니다.*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다 보니 과로사나 산업재해도 끊이질 않습니다. 2021년에는 기술학교 실습생이 공장에서 한 달 1,300위안(한화 약 24만 원)을 받으면서 하루 11시간씩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고, 2022년에는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직원이 장시간 노동 끝에 과로사했습니다.* ‘딥시크’ 개발자의 모교로 유명해진 중국 저장대의 40대 교수가 올해 초 319일 연속 근무 끝에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중 105일은 밤 10시 넘어서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기간 법정 근무일은 183일이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젊은 학자 4명이 과로사했다고 합니다.* 과로사가 전사회적으로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는 구체적인 통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공식적인 통계로 잡히지 않은 과로사도 아주 많을 거라는 점입니다. |
|
|
노동자들의 휴식·휴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문화 |
|
|
이런 배경에서 중국에서는 휴식과 휴가를 둘러싼 노동분쟁 사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2~2024년 북경 제3중급인민법원에 접수된 노동분쟁 11,440건 중, 4,942건(43.2%)이 휴식 및 휴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결코 작지 않은 비중입니다. 이 중 연차 휴가와 관련된 사례가 전체의 70.4%로 가장 많았고, 초과 근무 수당(35.2%), 병가(4.6%),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3.8%) 등과 관련된 분쟁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겠죠. 회사에서 법정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고,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수당 지급이 순조롭지 않으며, 비록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긴 하지만 아파도 병가를 내기가 어렵고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법원으로 간 이들 사건 중 노동자가 승소한 사건은 76.9%에 달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소송 진행 시 소송 비용과 시간, 자료 확보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일반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또 소송에서 승소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만큼의 승소율이 나왔다는 것은, 기업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중국 노동법은 일일 8시간,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제한하고 있고, 초과근무 역시 하루 3시간, 한 달 36시간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2022년 8월 중국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8시간에 달합니다.* 법과 현실이 이렇게 괴리되니, 중국의 노동자들도 참 기가 막힐 노릇이겠습니다. |
|
|
저임금, 장시간, 무한 러닝머신 / 출처: 미디어스
|
|
|
‘장시간 노동’하면 한국도 둘째가라면 서럽죠. 한국의 2023년 기준 연간 노동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국가 중 4위를 기록했고,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하려면 157시간을 더 줄여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회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최근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주 4일제나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이 때문이겠죠. 한국은 노동시간을 꾸준히 줄여 왔지만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멉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제도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차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 현실은 서로 다르면서도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 과로사, 열악한 휴식권 등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는 두 나라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생존을 위해 일터로 나섭니다. 이러한 공동의 고통은 동시에 우리에게 연대의 가능성을 일깨워 줍니다. 당장 함께 손잡고 나서기는 어렵더라도 서로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이해하며 반면교사 혹은 협력의 파트너로서 같이 발전해 가면 어떨까요? |
|
|
<너자2>는 2019년에 개봉한 <哪吒之魔童降世>의 후속편으로, 원제는 <哪吒之魔童闹海>입니다. 간단히 <哪吒2>로 줄여 표기하며, 중국어 발음을 따라 한국어로는 <너자2>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
|
|
#너자2 #노동시간 #과잉노동 #과로사 #초과근무 #노동분쟁 |
|
|
박석진 중국근현대사 공부를 통해 주로 노동 문제를 화두로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와 사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에서 중국에 대해 수업하고 있고, 또한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에서 ‘동아시아와 유동하는 경계’를 주제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다양한 경계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
|
|
최근 한국에서 팝마트(泡泡玛特)의 인기 캐릭터 라부부(LABUBU)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어요. 지난 15일, 국내 팝마트 오프라인 매장에 고객이 몰리면서 안전사고 우려로 라부부 시리즈 판매가 중단되었습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팝마트는 올해 홍콩 주식시장의 슈퍼스타로 떠오르며, 포켓몬과 헬로키티의 뒤를 이어 수퍼IP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저도 예전에 마카오 여행 중 팝마트 매장에 들렀다가 정신없이 장바구니를 채운 기억이 있어요. 특히 블라인드 박스의 매력은 정말!!🎁💖 라부부는 ‘아트토이계의 무라카미 다카시’라 불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카싱 룽의 창작 캐릭터인데요. 아트토이의 예술성과 피규어의 대중성을 모두 갖춘 덕에 앞으로 인기가 더 커질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라부부를 사는 대신... 팝마트 주식을 사고 싶네요!😎💰 앞으로 팝마트와 <너자2> 같은 중국 문화콘텐츠 산업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그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이와 동시에 그 이면에 자리한 취약한 노동 환경의 문제 역시 어떤 방식으로 개선되어 가는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Editor 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