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라는 작은 단위 안에 있고, 태양계는 다시 하나의 은하계 안에 있으며, 이런 은하계가 수천억 개 이상 존재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코즈믹 호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이 압도적인 규모 앞에서, 인간은 어떤 중심도, 목적도, 특별한 존재도 아닙니다. 우주는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인간의 이성과 도덕, 신념은 우주의 무한한 질서 앞에서 무력하게 붕괴됩니다. 코즈믹 호러는 바로 이처럼 무관심하고 불가해한 우주의 질서를 감각하게 만드는 공포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에게 악의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존재하며, 그 존재 자체가 인간의 이성을 파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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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존재에 대한 공포 ‘코즈믹 호러’ /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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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인간과 개미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정원을 가꾸기 위해 땅을 파다가 개미굴을 망가뜨렸다고 해 봅시다. 인간에게는 그것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일 수 있지만, 개미 입장에서는 그것이 세계의 붕괴이며, 절대자의 침입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개미의 고통을 인식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크툴루 신화의 신적 존재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합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도 없으며,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식조차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코스믹 호러는 인간이 이러한 극단적인 존재 간 인식 격차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말 그대로 차원적 공포입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의지’가 불러일으킨 공포가 아니라, 무관심하고 불가해한 존재론적 차이에서 비롯된 공포입니다. 즉, 코즈믹 호러는 괴물이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의미한 존재인지 깨달을 때 느끼는 철학적 공포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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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속 크툴루 신화의 변용: 이명과 존재의 간접적 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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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에서 신적 존재들은 명확한 형태나 본질을 가지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개 ‘이명(異名, epithet)’이나 ‘칭호’를 통해 간접적으로 존재를 나타냅니다. 이는 인간이 그 존재의 실체를 감당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의 반영이며, ‘이해 불가능함’ 자체가 공포의 근거가 됩니다. 예컨대 ‘우주의 혼돈’ ‘기어 다니는 혼돈’ ‘무형의 황제’ ‘우둔한 우리 아버지’ 등과 같은 명칭은 신의 존재를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압도적인 위상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이명 중심의 존재 표상’은 웹소설이라는 장르의 문법과 극히 잘 어울립니다. 웹소설은 보통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 명료한 세계관 구조, 그리고 캐릭터의 위계 질서를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장르 특성을 갖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명’은 서사의 압축성과 상징성을 강화하면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합니다.
독자는 이러한 이명을 단서 삼아 인물의 정체를 유추하거나, 그 배경에 어떤 신화 체계가 숨어 있는지를 추리하게 됩니다. 즉, 작품은 크툴루 신화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명을 통해 독자와 ‘코드’를 공유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건 크툴루 신화에서 따온 존재다”라는 점을 눈치채고, 그로부터 발생할 서사적 긴장, 공포, 혹은 설정의 깊이를 미리 상상하고 예측합니다. 이명은 단지 이름이 아니라, 독자와의 암호화된 의사소통 수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웹소설에서는 크툴루 신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해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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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사례로 <전생검신>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크툴루 신화를 한국 웹소설계에 소개한 작품이라 평가받습니다. <전생검신>은 표면적으로는 회귀를 거듭하며 강해지는 주인공의 무협 서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반복되는 전생과 죽음의 경험은 단순한 성장 장치가 아닌, 점차 코즈믹 호러적 실체를 향해 접근하는 통로로 변모합니다. 루프물은 기본적으로 ‘특정 지점에서 사건 발생 → 세이브 → 진행 → 결말 → 세이브 지점으로 로드 → 다시 진행 → 또 다른 결말 → 세이브 지점으로 로드(이하 반복)’ 같은 게임 구조를 따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루프한다는 것이 아니라 루프라는 능력을 통해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며, 주인공의 치명적 실수 또한 무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죠. 이런 점에서 ‘광기’와 ‘허무한 죽음’이 강조되는 코즈믹 호러의 특징과 절묘한 시너지를 발휘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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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백웅’은 처음에는 무협 세계에서의 복수와 성공을 목표로 하지만, 루프가 거듭될수록 이 세계의 규칙과 기억, 존재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 세계가 정합적인 서사가 아니라, 무언가 더 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영향 아래 있다는 암시가 곳곳에 배치됩니다.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이 루프를 반복하며 점점 ‘깨달아가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 정신의 소유자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다른 웹소설 속 주인공처럼 천재적이거나, 초월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배움이 느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우둔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그는 ‘개복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연약하고, 수없이 죽음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는 수없는 전생 속에서도 광기에 빠지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크툴루 신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광기의 서서한 침식’이라는 주제와 대조되면서, 새로운 조합을 형성합니다. 루프물이라는 구조는, 그 자체로 현실의 규칙을 반복적으로 무너뜨리는 장치이자, 코즈믹 호러적 공포가 서서히 배어드는 서사적 기법입니다. 이 구조 속에서 독자는 백웅이 진실에 접근할수록 점점 현실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전생검신>은 궁극적으로 크툴루 신화를 무협이라는 장르 안에 주입하고, 회귀라는 반복의 구조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존재론적 경계를 실험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크툴루 신화는 배경 설정이 아닌, 형식과 구조, 인물의 심리와 독자의 인식에 이르는 다층적 차원에서 작동하며, 이명과 루프, 광기와 생존이라는 크툴루적 코드들을 한국 웹소설식으로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무협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고대 중국 신화에서 드러나는 재앙적 상상력과 인신공양의 기억, 즉 문명의 기원을 감싸고 있는 폭력과 공포의 정조(情調)를 통해 크툴루적 세계관을 문화적으로 내화하고 있습니다.
중국 신화에서 반고의 개벽이나 황제와 치우의 전쟁, 여와의 대홍수 신화 등은 모두 세계가 창조되거나 정립되기 위해 반드시 파괴와 희생을 수반하는 구조를 지닙니다. 특히 고대 제정 의례나 종묘 제사에서 보이는 인신공양적 상상력—하늘과의 교통을 위해 인간을 바치는 행위—는 ‘이해 불가능한 존재를 달래는 행위’라는 점에서, 크툴루 신화의 불경한 제의와 직접적으로 접속됩니다.
<전생검신>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서사 전반을 관통하는 죽음의 반복, 전생을 통한 대가의 지불, 고대 존재와의 접촉을 위한 정신적, 육체적 파괴는 고대 중국의 신화적 재앙 서사와 크툴루적 공포가 혼융된 결과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백웅이 맞닥뜨리는 세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짜인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희생을 전제로 돌아가는 거대한 순환적 제의의 세계이며, 그 배후에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무형의 의지들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고대 신화의 근원적 폭력성과 크툴루 신화의 존재론적 무력감을 겹쳐 놓음으로써, 기존의 도교적 질서나 불교적 윤회의 희망적 메시지를 전복하고, 비가역적 반복과 파괴의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이 세계에서 주인공은 더 이상 도의 궁극에 도달하는 자가 아니라, 그 ‘도가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 무너지지 않는 자, 즉 크툴루적 존재에 대한 내성이 가장 높은 인간으로 위치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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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 신화의 교차로에서 등장한 크툴루적 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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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이 한국 웹소설계에서 크툴루 신화를 유행시킨 작품이라면,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탁월한 대중적 흥행을 통해, 대중들에게 크툴루 신화를 알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책빙의물*, 스테이지물*, 성좌물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진 구조적 복합성과 신화적 혼종성은 단순한 장르의 조합을 넘어, 서사의 기반이 되는 ‘신화’ 자체를 이야기의 내적 장치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그리고 이 신화적 장치 속에 크툴루 신화가 전략적으로 삽입되어 독자에게 강한 인식적 충격과 극적 반전을 제공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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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전지적 작가 시점>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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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물’은 일반적으로 신격화된 존재들, 곧 ‘성좌(星座)’들이 인간의 세계를 지켜보며 자신이 선택한 챔피언에게 힘을 부여하는 형식을 갖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도 이러한 구도를 따르며, 작품 속 ‘성좌’들은 각종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 한국의 영웅 이순신, 중국 신화의 손오공이나 도가적 신선 등 다양한 문화권의 신들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 나란히 배치되며 서사에 참여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진명(眞名)’이 아닌 ‘이명(異名)’으로 불리며, 이름 자체가 인물의 성격과 기원을 암시하면서도 직접적인 폭로를 유예합니다. 예컨대, ‘긴고아의 죄수’ ‘심연의 흑염룡’ ‘검은 빛의 인도자’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와 같은 이명은 독자의 상상력을 유도하며 존재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증폭시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크툴루 신화적 상상력이 효과적으로 침투합니다. 성좌들 중 일부는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적 존재들과 유사한 속성과 이명을 지니며, 그 불가해하고 비인간적인 특징으로 인해 독자에게 익숙한 신화 체계와는 다른 위화감을 조성합니다. 초기에는 ‘가라앉은 섬의 주인’ ‘살아있는 불꽃’ ‘은밀한 모략가’ ‘거짓 종막의 설계자’ 같은 이명이 등장하지만, 명확한 정체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 중 일부는 이 명칭들 속에서 크툴루 신화의 흔적을 인지하며, 서사가 고조될수록 이 존재들이 일반적인 신이 아닌 ‘외부신(Outer Gods)’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이러한 구성은 국내 웹소설 독자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크툴루 신화의 이질성과 낯섦을 전략적 반전 장치로 활용한 사례입니다. 독자는 그리스 신화나 동양 신화의 캐릭터들은 비교적 익숙하게 인식하지만, 크툴루 신화의 존재들은 규칙을 벗어난 미지의 코드로 등장하여 예측 불가능성과 공포를 함께 야기합니다. 이들 존재는 기존의 신화적 질서를 무화시키며, 작품 후반부의 서사적 전환—예컨대, 게임의 법칙이 붕괴하거나 성좌 체계 자체가 왜곡되는 순간—에 결정적인 서사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은 크툴루 신화를 대놓고 전면화하지 않으면서도, ‘이명을 통한 상징적 표상’ ‘존재의 인지 불가능성’ ‘질서 바깥의 위협’이라는 크툴루 신화의 핵심 미학을 정교하게 수용합니다. 이로써 독자들은 단순히 이야기의 진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명과 서사의 결을 따라가며 숨겨진 존재를 추리하고, 마지막에 그것이 크툴루 신화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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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무법자> 신화의 탈을 쓴 크툴루적 존재와의 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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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신화 속 무법자>는 크툴루 신화 속 신을 거래 대상이자 성장 요소로서 적극 활용한 작품입니다. 이는 박제후의 이전 작품인 웹소설 <피도 눈물도 없는 용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용사>가 크툴루를 소재로 한 게임에 빙의했다는 설정이라면, <신화 속 무법자>는 연재 당시 유행하던 ‘신화 속 세계에 빙의’하는 설정을 따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등 익숙한 신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경험하게 되는 신화의 세계는 단순히 고전 신화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툴루 신화의 모티프와 정서를 결합해 더 심오하고 초월적인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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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설정상 기반으로 삼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들 또한 점차 크툴루적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제우스나 아폴론, 헤르메스 등은 인간 중심적 인격신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더 이상 인간과 공감하지 않는 추상적 질서의 관리자 혹은 초월적 의지를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때로 ‘빛의 지성’ ‘영원한 수호자’ ‘하늘 너머에서 시선을 보내는 자’와 같은 이명으로 불리며, 그 본질은 전통 신화의 인격성과는 다른, 크툴루 신화의 ‘외부신’과 유사한 거리감과 불가해성을 내포합니다.
결과적으로, <신화 속 무법자>는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고전적 틀을 차용하면서도, 그 틀 속에서 크툴루 신화의 존재론적 불안과 초월성을 혼종시켜 새로운 신화적 상상력을 창출합니다. 이로써 독자는 익숙한 신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월적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 ‘문화적 낯섦(uncanny)’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크툴루 신화의 이질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기존 신화물의 장르적 문법을 교란하는 전략이자, 주인공의 비범성을 설명하기 위한 ‘세계의 틈’으로서의 크툴루적 개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초기에는 일반적인 빙의자이자 회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극 중반부터 크툴루 신화에 기원을 둔 ‘외부의 신들’과의 접촉을 통해 비범한 힘과 통찰을 얻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강력한 능력을 얻는 서사 장치라기보다는, 기존의 신화 질서 바깥에서 온 존재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질적 힘을 내면화하고, 새로운 신적 위상을 부여받는 서사적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신화 속 무법자>에서 주인공은 고전신화의 성좌들이 기피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금기의 힘’에 접근하며, 이를 통해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그 너머의 세계로 향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하스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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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에서 주인공의 조력자로 자주 등장하는 하스터(Unspeakable Hastur)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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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터는 크툴루 신화에서 흔히 ‘노란 왕(The King in Yellow)’ ‘카르코사의 주인’으로 불리며, 크툴루와 대립하는 외부신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하스터는 크툴루처럼 거대하고 불가해한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자신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명확한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일부 설정에서는 하스터가 크툴루를 싫어하기 때문에, 인간이 크툴루의 의지에 반하는 선택을 할 경우 그 선택에 편승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스터는 크툴루 신화의 존재들 중 인간이 그나마 접근 가능한-거래 가능한-대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예외적 신입니다.
하스터는 이 작품에서 불가해한 존재이자 금기의 경계를 넘어선 ‘지식과 권능의 수여자’로 등장하며, 주인공에게 힘을 제공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이는 흔한 의미의 신의 축복이 아닙니다. 하스터는 명확한 감정이나 지향성을 갖고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보다도 크툴루의 의지를 방해하고, 인간이 ‘질서를 교란하는 변수’가 되는 것을 방관하거나 유도하는 방식으로 힘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크툴루 신화 속 신들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구원을 베풀지 않는다는 전제를 뒤흔들지 않으면서도, 하스터를 통해 ‘외부신의 힘을 빌리는 비범한 인간’이라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주인공은 이 힘을 통해 단순한 강자가 아니라, 기존 신화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신화 바깥의 존재’로 거듭납니다. 이는 그가 단지 강한 성좌 중 하나가 아닌, 신화의 균열을 통과한 예외자이자 새로운 신화 질서의 개입자임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신화 속 무법자>는 단순한 신화 리믹스를 넘어, 크툴루 신화의 코드(이명, 초월, 광기, 무관심성)를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독자에게 이중적인 서사 층위를 제공합니다. 익숙함 속의 낯섦, 고전의 얼굴을 한 외부신.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 구현한 크툴루적 장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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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시대, 크툴루 신화는 어떻게 ‘살아 있는 신화’가 되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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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는 본래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와 그로 인한 존재론적 공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고전적인 코즈믹 호러 장르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신화 체계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질서는 이해 불가능한 무한한 질서 속에서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점을 철학적 공포로 가시화했습니다. 이러한 무관심적 공포는 20세기 초 러브크래프트의 상상 속에 머무르지 않고, 21세기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환경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특히 웹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크툴루 신화는 단지 ‘참조되는 소재’나 ‘공포스러운 배경’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서사 구조, 캐릭터 설계, 독자와의 상호작용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 걸쳐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생검신>은 루프 구조를 활용하여 크툴루 신화의 ‘반복되는 광기’와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무협이라는 동양 장르 안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문화 혼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명 중심의 존재 표상을 통해 독자에게 상징을 통한 해석의 공간을 열어주며, 신화의 데이터베이스화된 소비 구조 안에 크툴루 신화의 외부신을 전략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신화 속 무법자>는 하스터와의 거래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크툴루 신화를 기존 신화 체계의 틈에 개입시키는 서사 전략을 구현함으로써, 신화의 위계를 전복하는 힘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크툴루 신화가 더 이상 폐쇄적인 서구 중심의 공포 서사에 머물지 않고, 동아시아적 문맥, 한국적 감수성, 디지털 장르 문법과의 접합을 통해 ‘살아 있는 신화’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입니다. 즉, 크툴루 신화는 ‘절대적인 외부’로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사의 바깥에서 중심으로 진입하여, 인간을 재정의하고 장르를 재구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오늘날의 크툴루 신화는 더 이상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화의 경계를 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서사의 동력, 낯선 상상력을 수용하는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실험적 매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웹소설은 이 신화를 새롭게 번역하고 유통하는 창의적 플랫폼이며, 크툴루 신화는 그 안에서 진화하며 생명력을 이어가는 현대적 신화의 얼굴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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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빙의물: 소설이나 만화의 작가 혹은 독자였던 주인공이 자신이 만든 또는 읽었던 이야기 속 세계로 들어가, 그 안의 인물로 다시 태어나거나 빙의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원작의 전개를 바탕으로 새로운 선택과 서사를 만들어가는 장르입니다. 회귀물이나 게임빙의물처럼 기존의 결말을 바꾸거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원작의 정보를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스테이지물: 주인공이 탑, 던전, 가상 세계 등 단계적으로 구성된 공간을 하나씩 돌파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로, 각 스테이지마다 고유한 규칙과 보상, 적이 등장해 긴장감과 몰입감을 더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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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신화 #코스믹호러 #웹소설 #전생검신 #전지적독자시점 #신화속무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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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문화콘텐츠학 박사로, 한국외대, 한성대, 용인예술과학대에서 플랫폼, 웹콘텐츠, 웹소설, 영상비평, 윤리학, 글쓰기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화콘텐츠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경향성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연구 테마는 플랫폼, 웹소설, 대중성, 세대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플랫폼, 키치를 주제로, 문화콘텐츠 생산과 향유 문화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대중들의 삶과 일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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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재미있게 읽어왔던 웹소설 속에도 크툴루 신화의 모티브가 내재되어 있고,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현대의 살아 있는 신화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 웹소설을 볼 때마다 ‘혹시 이것도 크툴루 신화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 같아요. 흥미로운 주제로 3회에 걸쳐 연재해주신 박성준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덕분에 관련 지식도 한층 레벨업 된 느낌입니다!😆💖
오늘은 수요일인데, 월요일 같아요. 그런데 수요일이네요?!! 금요일도 빨간날이고요. 덕분에 여유가 넘치는 한 주입니다. 힘차게 6월 시작해 보시죠!💪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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