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별자리, MBTI에서 사주까지 - 나 지금 불안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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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B형이세요?”
“오늘 물고기자리 운세가 좋더라고요.”
“너 T 아니야? 완전 극T 같은데.”
“내년에 대운이 들어온대.”
이처럼 일상 속 익숙한 말 한마디에서도,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형 현대인’의 단면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구조와 의미를 절실히 갈망합니다. MBTI든, 사주든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는 프레임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우리의 삶에 일종의 안도감을 제공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앞으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확실한 해석’을 제공해 주는 구조를 원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이해를 넘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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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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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한 인상비평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문화 비교학자인 헤르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Cultural Dimensions Theory)』에 따르면, 한국은 ‘불확실성 회피 지수(Uncertainty Avoidance Index, UAI)’에서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UAI 지수가 낮은 미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모르면 일단 시도해보자” “실패도 성장의 일부”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반면, 한국은 “미리 알아야 실패하지 않는다” “리스크는 피해야 한다”라는 심리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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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 속에서, 혈액형 4유형에서 별자리 12유형, MBTI 16유형, 사주 60갑자에 이르기까지 - 점점 더 정교하게 분화된 해석 체계를 통해 ‘나’를 규정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드러납니다. 구독자 240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빠니보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자주 묻는데, 그게 좀 슬퍼요. 본인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누군가가 정해준 목적지만 기다리는 느낌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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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단순한 여행 관련 물음을 넘어, 선택의 부담조차 타인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만큼 우리는 모든 결정이 무겁게 느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혈액형도 MBTI도 사주도, 우리 삶의 해석을 타인 혹은 구조에 위탁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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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취향, 사주는 콘텐츠, 이들은 모두 위안의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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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하고, MBTI를 기준으로 팀을 나누며, 사주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가 항상 정확하진 않아도, 우리는 그 안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이 해석 도구들은 불확실한 삶을 구조화하고자 하는 심리적 욕망의 표현이자, 스스로를 설명하고 싶은 현대인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는 하나의 내러티브인 셈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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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답은 없다, 흐름 위에 나의 선택을 세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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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본래 예측 불가능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Πάντα ῥεῖ(Panta rhei, 판타 레이)”, 즉 ‘모든 것은 흐른다’는 말로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진실로 보았고, 세상의 본질은 멈춤이 아닌 흐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모든 것은 흘러갑니다. 우리는 자꾸만 ‘정해진 답’이라는 틀을 갈망하지만, 알다시피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 위에 어떤 선택을 세울지는 나의 몫입니다. 우리는 선택하는 존재이고, 그 선택이 곧 나를 만들어갑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정해진 구조에 기댈 것이 아니라, 흐르는 세계 속에서 나의 선택을 믿는 자세,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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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민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강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특히 웹콘텐츠를 중심으로 말과 이야기, 감정과 정체성의 흐름을 연구합니다. 번역과 문화정책 등 언어와 사회를 연결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콘텐츠와 언어, 사람 사이를 천천히 유동(遊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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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에는 첫 중간고사를 치룬 ‘고딩’이 있답니다. 며칠 전 진로 관련 수행평가를 준비하던 아이가 꽤 심각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진로가 맞는 것 같긴 한데, 나중에 바꾸고 싶어지면 어떡하죠? 바꿀 수 있는 거예요? 바꿔도 되는 거예요? 그러면 생기부 망가지지 않아요?” 당연히 바꿀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여러 가능성 안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때로는 실패도 해가면서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 지금 우리의 사회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불확실성은 높지만, 확실하고 명확하며 빠른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우리를 밀어부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학부모로써 조급한 마음이 들지만, 판타 레이를 생각하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계절의 여왕 5월!! 좋은 날씨를 맘껏 누리시며,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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