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는 1920년대 미국의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의 공포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독특한 세계관이자 설정입니다. 초기에는 그의 개인적인 창작물에 불과했지만, 이후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Derleth)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후속 창작과 재해석을 거치며 점차 하나의 거대한 ‘공유된 세계관(shared universe)’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덜레스가 이 세계관을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라고 명명하면서 본격적인 대중적 확산이 시작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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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의 부름>의 룰북, 핸드북 /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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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가 전 세계적 현상이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1981년에 출시된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TRPG)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의 등장이었습니다. 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세계 속 탐정이나 조사자가 되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크툴루 신화의 초월적이고 불가해한 공포는 게임의 핵심 테마로 작동하며, 신화의 대중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크툴루 신화는 단순한 문학 장르를 넘어서 놀이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크툴루의 부름>은 현재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TRPG 시스템 중 하나이며, 보드게임 <아컴 호러(Arkham Horror)> <엘드리치 호러(Eldritch Horror)>와 같은 파생 게임들도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기는 비디오 게임 영역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탐정이 되어 크툴루 신화 속 기괴한 사건을 수사하는 게임 <싱킹 시티(The Sinking City)>, 로그라이크 장르로 우주적 공포를 경험하는 게임 <엘드리치(Eldritch)> <다키스트 던전(Darkest Dungeon)> 등의 작품이 등장하였으며, 이들은 각각 크툴루 신화의 핵심 요소인 초자연적 공포와 인간의 무력함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대중과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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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블 데드 3> 속 네크로노미콘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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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체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이블 데드(Evil Dead)> 시리즈는 크툴루 신화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인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을 차용하여 새로운 공포 영화의 흐름을 만들었고, HBO 드라마 <러브크래프트 컨트리(Lovecraft Country)> 역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현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문제와 결합하여 사회적 공포를 재구성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크툴루 신화는 문학이라는 전통적 장르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결합하며 독자적인 팬덤과 놀이문화를 형성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웹툰, 웹소설, 유튜브 콘텐츠 등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창작문화와 결합하여 한국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크툴루 신화가 한국 대중문화에 어떻게 수용되고, 어떻게 변형되어 한국적 크툴루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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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는 본래 이해 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공포와 인간 존재의 무력감을 핵심으로 하는 문학적 세계관이지만,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서는 점차 그 경직된 형식을 벗어나, 보다 유연하고 가볍게 소비되는 방향으로 변형되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툴루 신화는 단순한 ‘신화’나 ‘공포 설정’을 넘어, 유희적 상상력의 재료로 작동하는 일종의 ‘속성 데이터베이스’로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TRPG와 보드게임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입니다.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사자’가 되어 불가해한 현상을 추적하고 대응하는 게임으로, 크툴루 신화의 설정을 체험 가능한 방식으로 구현하였습니다. 이 게임은 공포와 탐색의 긴장감은 유지하면서도, 이용자가 능동적으로 서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 문학 독서와는 다른 몰입 방식을 제공합니다. 이후 <아컴 호러> <엘드리치 호러> <맨션 오브 매드니스(Mansions of Madness)> 등의 보드게임에서도 반복적으로 활용되며, 크툴루는 이미 하나의 ‘장르 기호’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영상매체와 온라인 콘텐츠에서도 이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이블 데드> 시리즈에서 ‘네크로노미콘’이라는 고유 명사를 통해 크툴루 신화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차용했고, 더 나아가 유머와 풍자,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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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게 변신하는 크툴루, (시계방향으로)상사 크툴루, 메카닉 크툴루, 용사 크툴루 / 출처: 더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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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와 서브컬쳐 속 드래곤의 이미지를 섞어 새로운 캐릭터 이미지를 창조하기도 하고, 골 때리게 까다로운 직장 상사가 크툴루로 표현된다거나, 기계화 되어 메카닉 크툴루로 재탄생한다거나, 신의 힘을 잃고 세상을 구하는 크툴루의 모습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초월적 존재로서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의 문화적 놀이 안에서 자유롭게 해체되고 조립되는 유동적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변형은 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데이터베이스적 소비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크툴루 신화는 더 이상 하나의 완결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무수한 ‘속성(tags)’의 집합으로 기능합니다. 기괴함, 광기, 촉수, 혼돈, 고대, 금서 등과 같은 상징 요소들은 각각 조합의 단위가 되고, 창작자는 이 속성들을 조립해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소비자는 익숙한 코드들을 통해 신속하게 장르적 쾌감을 획득합니다.
결과적으로 크툴루 신화는 오늘날 더 이상 폐쇄적이고 정전화(正典化)된 서사가 아니라, 유통 가능한 문화 데이터로 기능합니다. 이는 고전적 신화가 가진 권위성과 기원을 상실한 대신, 팬덤과 참여자의 해석에 의해 무한히 파생되는 ‘살아 있는 신화’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크툴루 신화는 이처럼 대중적 소비 속에서 해체되고 재조립되며, 하나의 유희적 상상력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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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크툴루 신화는 인간이 감히 이해하거나 맞설 수 없는 초월적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허무, 즉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를 핵심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계관이 한국 대중문화, 특히 웹소설이나 웹툰과 같은 플랫폼 기반 장르 콘텐츠에 수용되면서 중요한 변용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포’와 ‘무력함’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그 공포를 극복하고 오히려 ‘강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가 중심이 된다는 점입니다.
현대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적 무한경쟁 구조와 약육강식의 현실을 반영한 콘텐츠 소비가 두드러지며, 이러한 맥락에서 크툴루 신화는 단순한 공포의 체계가 아니라 강자의 탄생을 정당화하는 극적인 배경으로 전환됩니다. <스위트홈>에서 인간이 괴물로 변해간다는 설정은 본래 인간 존재의 붕괴를 상징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은 이 ‘괴물화’의 경계에서 자신을 통제하고, 그 힘을 오히려 타인을 지키는 데 사용함으로써 생존을 넘어선 주체적 강자로 거듭납니다. 이는 전형적인 크툴루 신화의 코스믹 호러 구조와는 정반대의 변주입니다. 불가해한 존재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내 것’으로 흡수해 버리는 적응과 승화의 서사인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웹툰 <기기괴괴>의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도 인간이 절대적 공포에 노출되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점차 이러한 위협을 인지하고, 때로는 그것을 이용하거나 극복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공포의 시스템 안에서 무력하게 소멸하는 대신, 그 공포를 체화하여 새로운 존재로 각성하는 서사는 한국 장르 문법의 특징입니다. 이는 크툴루 신화의 ‘이해 불가능한 존재’를, ‘이해하고 마스터할 수 있는 강함’의 배경 설정으로 전환하는 문화적 전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국식 변형은 특히 웹소설에서 두드러집니다. 크툴루 신화의 초월적 존재들은 종종 ‘던전의 보스’나 ‘혼돈의 신’과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며, 주인공이 맞서 싸우고 결국 그 힘을 흡수하거나 넘어서는 적으로 자리합니다. 이 구조는 자본주의적 경쟁 사회 속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통념과 맞물려, 우주적 공포조차 성장과 각성의 재료로 삼는 독특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한국적 맥락에서 크툴루 신화는 ‘패배의 공포’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서사로 탈바꿈합니다. 공포를 마주한 개인이 좌절하는 대신, 그 공포를 자기화하고 초월함으로써 강자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한국 장르 콘텐츠의 근본적인 욕망 구조를 드러냅니다. 크툴루 신화는 더 이상 절망의 끝이 아니라, 성장과 승리의 서사를 위한 배경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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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는 더 이상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작품에 머무는 폐쇄적이고 정전화된 신화 체계가 아닙니다. 이 신화는 후대의 창작자들에 의해 ‘공유된 세계관’으로 확장되었으며, TRPG와 비디오 게임, 영화와 밈(meme), 보드게임과 유튜브 콘텐츠 등을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문화 자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네크로노미콘’이나 ‘크툴루’와 같은 명칭은 이제 공포의 정체성보다는 창작과 소비를 위한 코드(tag)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크툴루 신화가 본래 지녔던 ‘이해할 수 없는 공포’라는 내러티브의 중심축이 해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크툴루 신화는 아즈마 히로키가 언급한 바와 같이, 설정과 속성이 집적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존재하며, 창작자와 소비자들은 이 속성들을 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생성하고 유희적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신화가 종교적 권위나 공동체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살아 있는 신화’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크툴루 신화는 단순한 공포 구조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강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동합니다. 웹툰 <스위트홈>이나 <기기괴괴> 등은 더 이상 인간이 무력하게 파괴되는 세계를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포의 힘을 극복하고 그것을 자기화함으로써 주체적 힘을 획득하는 서사를 제시합니다. 이는 한국 장르 콘텐츠가 지닌 ‘성장’ ‘각성’ ‘승리’의 내러티브와 맞물리며, 크툴루 신화조차 이 서사의 자원으로 흡수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크툴루 신화는 오늘날 한국의 콘텐츠 소비자와 창작자에게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함을 증명하고, 생존을 정당화하며, 이야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가 됩니다. 공포는 이야기의 종결이 아니라 출발점이며, 무력함은 초월로 나아가기 위한 서사의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크툴루 신화는 한국 대중문화에서 하나의 ‘태그’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 태그는 웹툰, 게임, 유튜브, 그리고 무엇보다 웹소설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며, 크툴루 신화의 변용은 곧 장르 문법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웹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크툴루 신화는 어떻게 웹소설의 내러티브와 구조를 바꾸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목격하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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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문화콘텐츠학 박사로, 한국외대, 한성대, 용인예술과학대에서 플랫폼, 웹콘텐츠, 웹소설, 영상비평, 윤리학, 글쓰기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화콘텐츠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경향성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연구 테마는 플랫폼, 웹소설, 대중성, 세대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플랫폼, 키치를 주제로, 문화콘텐츠 생산과 향유 문화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대중들의 삶과 일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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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악씨레터를 읽으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1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함께 몰려오는 좀비떼를 보면서 느꼈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것이 아마도 러브크래프트적 ‘코스믹 호러’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이후의 시즌은 보지 못했지만, 오늘의 악씨레터 내용을 통해 추측하자면 주인공의 성장과 각성, 궁극적인 승리의 가능성으로 서사가 확장되지 않았을까요? 확인해 보려면 <킹덤> 시즌2와 스핀오프 <킹덤: 아신전>을 봐야겠네요.🧟😨
다소 멀게 느껴졌던 크툴루 신화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집니다.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있는 다음 내용은, 한달 후에 찾아오겠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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