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5년 7월, 웹소설 기반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고, 그 미래를 아는 유일한 독자가 주인공이 된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이미 현대 판타지 웹소설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2020년대 한국 판타지 웹소설 IP 가운데 처음으로 영화화되는 사례로, 플랫폼을 넘어 극장으로 확장되는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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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인기 비결은 단순히 참신함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한 설정과 서사를 바탕으로, 그 익숙함을 비트는 방식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회귀, 빙의, *먼치킨, *시스템 창 같은 익숙한 장치를 통해 ‘독자가 주인공이 되는 메타 서사’를 풀어냄으로써, 향유자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몰입을 제공합니다.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클리셰(cliché)’는 원래 인쇄소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던 활판 틀을 뜻합니다. 이후 자주 반복되어 진부하게 느껴지는 표현이나 장면을 의미하게 되었지만, 웹소설 속 클리셰는 단순한 진부함이 아니라 되풀이 그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특히 매일 결제하고 기다리며 향유하는 웹소설에서는, 익숙함 자체가 하나의 장르처럼 작동합니다.
이러한 익숙함은 제목, 표지, 문장의 첫 머리에서도 드러납니다.
“S급 헌터” “죽었다가 깨어나보니”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
이와 같은 문장은 웹소설의 상징이자 일종의 약속처럼 사용됩니다. 향유자들은 이 약속을 알아보고 진입하며, 이미 알고 있는 서사를 다시 즐깁니다. 이는 짧고 반복적으로 향유되는 스낵컬처(snack culture)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현실이 벅차고 감정 소모가 큰 지금, 향유자들은 콘텐츠 속에서도 고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웹소설은 초반 몇 줄 안에서 통쾌함과 보상을 제공해야 하며, 클리셰는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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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웹소설 시장 모두 이러한 클리셰 중심 구조에 익숙합니다. 한국에서는 회귀·빙의·환생을 뜻하는 ‘회빙환’ 구조가 대표적입니다. 실패한 인생을 리셋하고, 무시당하던 존재가 절대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 플롯입니다.
“실패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도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
이 바람이 회빙환의 중심을 이룹니다.
중국에서도 ‘솽원(爽文)’이라는 서사 유형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솽(爽)’은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뜻으로, 주인공이 눈에 띄게 빠르게 성장하거나 적을 응징하는 전개가 특징입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사이다’ 전개라고도 볼 수 있지요. 회빙환과 솽원 모두 현실에서 누리기 어려운 성공과 보상을 극적으로 압축한 판타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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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웹소설의 클리셰는 단순한 상업 전략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의 정서에 반응한 결과입니다. 현실에서 좌절하고 실패하며 고군분투하는 독자들에게 웹소설은 단 몇 줄 안에 통쾌함과 감정 보상을 안겨줍니다. 그것이 바로 클리셰의 역할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구조 안에서, 익숙하게 위로를 얻는 것. 이것은 피로한 세대가 선택한 콘텐츠 향유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웹소설의 클리셰는 오히려 ‘집단적 상상력’에 가깝습니다. 반복은 진부함이 아니라, 공감과 환상의 반복입니다. 향유자들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향유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는 익숙함이 주는 심리적 안정이자, 끊임없이 진화하는 콘텐츠 생태계의 방식입니다.
결국, 익숙함은 진부함이 아니라, 피로한 시대의 가장 빠르고 단단한 위로 방식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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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은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이기고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뜻합니다. 원래는 게임 용어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주는 대표적인 웹소설의 주인공 유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스템 창은 게임할 때 화면에 뜨는 창처럼, 웹소설 속 주인공에게 미션, 능력, 보상 같은 정보를 알려주는 가상의 화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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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민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강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특히 웹콘텐츠를 중심으로 말과 이야기, 감정과 정체성의 흐름을 연구합니다. 번역과 문화정책 등 언어와 사회를 연결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콘텐츠와 언어, 사람 사이를 천천히 유동(遊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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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미 보셨을 <폭싹 속았수다>,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분명 많이 울텐데, 여유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깊은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새 저의 최애는 방영 14년 차에 접어든 예능 <런닝맨>인데요. 익숙한 형식 속에서 예측 가능한 웃음을 찾는 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 같아요. 그런 저에게도 딱 맞는 콘텐츠,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읽으러 총총..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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