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크툴루 신화를 변용하거나 그 설정을 차용한 콘텐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크툴루 신화를 활용한 작품들이 늘어났지만, 서구권에서는 꽤나 오래전부터 크툴루 신화를 활용한 콘텐츠와 2차 창작물들이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만큼 크툴루 신화의 팬덤 또한 강력합니다. 그런데 크툴루 신화는 ‘신화’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신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현대 창작물의 산물입니다. 그렇다면 크툴루 신화는 어떻게 해서 ‘신화’라고 불리게 된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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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신화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크툴루 / 출처: Superpower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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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의 펄프 잡지 『위어드 테일스(Weird Tales)』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한 무명의 작가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그가 쓴 소설들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뒤 ‘크툴루 신화’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문화적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분명 ‘신화’를 창조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허구의 고대 신들을 설정하고, 세계관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지만,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신화’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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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 출처: 네이버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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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세계관을 “크툴루 신화”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설정을 “그레이트 올드 원(Great Old Ones)”이라 칭했고, 인간 이성과 과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우주적 공포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신’은 인간의 신앙이나 윤리를 초월한, 이해 불가능한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창조한 이야기들은 '신화'라기보다는 ‘우주적 허무주의(cosmic nihilism)’의 문학적 구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의 소설은 사실 재밌지 않았습니다.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즉 우주적 공포를 다룬 그의 이야기 속에는 영웅도 없고, 극적인 스토리텔링도 없습니다. 주인공들은 광기에 빠지거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이 다루는 것은 인간이 결코 대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이러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소설적 재미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계관으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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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의 글을 읽은 동시대 및 후대 작가들은 그가 창조한 설정을 인용하고, 재해석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인물이 어거스트 덜레스(August Derleth)입니다. 그는 러브크래프트의 친구이자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자신이 세운 아르캄 하우스(Arkham House) 출판사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고,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구조로 재정립했습니다.(덜레스의 선악 이분법 구조는 지금까지도 논란거리입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 즉 코스미시즘(Cosmicism)이 다루고자 한 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후 이 세계관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넘어 ‘공유 우주(shared universe)’로 확장되며 실제 고대 신화처럼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크툴루 신화는 더 이상 단순한 문학적 설정이 아닌, 독자와 작가들이 참여하는 ‘신화 만들기(myth-making)’의 장이 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 접어들면서 크툴루 신화는 더 이상 소수 작가들만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브라이언 럼리(Brian Lumley), 램지 캠벨(Ramsey Campbell),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 같은 작가들이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적 공포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신화를 확장합니다.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팬 픽션, TRPG(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보드게임, 비디오 게임 등의 다양한 형태로 크툴루 신화는 진화해 갑니다. 특히 1981년 등장한 TRPG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은 전 세계 팬들이 직접 크툴루 세계관 안에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툴루 신화는 고정된 텍스트를 벗어나, 참여자들의 창작이 덧붙여지고 재해석되며 살아 숨쉬는 신화로 변화합니다. 이 신화는 특정한 민족이나 종교에 기반하지 않지만, 근대 이후의 불안과 인간 이성의 한계를 상징하는 현대적 신화로 기능하게 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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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크툴루 신화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심지어 인터넷 밈(meme) 속에서도 활발히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신화가 하던 ‘전승’과 ‘기억’의 역할을 현대 매체들이 어떻게 대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신화란 결국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그리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야기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그런 점에서 크툴루 신화는 고대의 신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화’가 된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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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러브크래프트 #신화 #코스믹호러 #펄프픽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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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문화콘텐츠학 박사로, 한국외대, 한성대, 용인예술과학대에서 플랫폼, 웹콘텐츠, 웹소설, 영상비평, 윤리학, 글쓰기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화콘텐츠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경향성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연구 테마는 플랫폼, 웹소설, 대중성, 세대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플랫폼, 키치를 주제로, 문화콘텐츠 생산과 향유 문화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대중들의 삶과 일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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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우리의 삶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만남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생산과 소비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책 『문화콘텐츠와 디지털콘텐츠』는 이러한 변화를 깊이 이해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현상과 맥락을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를 위해 기획되었다. 문화콘텐츠와 디지털콘텐츠는 21세기 동시대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이 두 용어와 개념이 탄생하고 확산된 배경에는 사회적, 기술적 변화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 경험과 창조적 욕구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문화적 변화는 단순히 문화콘텐츠의 소비 방식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인간관계, 공동체 형성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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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문화콘텐츠를 만든 용어와 개념
- 제1강 디지털콘텐츠의 기초: 용어와 개념
- 제2강 문화콘텐츠의 의미: 형성과 확산
- 제3강 문화콘텐츠의 기원: 문화와 예술
- 제4강 디지털콘텐츠의 전사: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 제5강 문화콘텐츠의 정의: 경험과 제작 요소
제2부 문화콘텐츠의 구성 요소
- 제6강 문화콘텐츠의 근원: 원형과 자원
- 제7강 디지털콘텐츠의 도구: 기술과 융합
- 제8강 문화콘텐츠의 체계: 분류와 장르
- 제9강 디지털콘텐츠의 속성: 연결과 전환
제3부 문화콘텐츠의 산업과 기획
- 제10강 문화콘텐츠의 산업: 창의경제와 가치사슬
- 제11강 디지털콘텐츠의 유통: 플랫폼과 생태계
- 제12강 문화콘텐츠의 기획: 모듈과 설계
- 제13강 문화콘텐츠의 주체: 역할과 창조
제4부 문화콘텐츠의 전략과 책임
- 제14강 문화콘텐츠의 전략: 브랜드와 콘텐츠
- 제15강 디지털콘텐츠의 진화: 생성형 인공지능
- 제16강 문화콘텐츠의 실천: 세계시민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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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및 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중국영화를 주제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류를 포함한 아시아 대중문화의 교류, 문화콘텐츠담론, 문화정체성과 스토리텔링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 강의, 번역을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유동한다는 생각으로 트랜스아이덴티티 담론을 통해 세상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회장,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대 Culture & Technology융합대학 학장 및 대만연구센터장,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조직위원장, 중국영화포럼 대표, K-콘텐츠학술문화축제 조직위원장, 한국영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지은 책으로 『착한 중국 나쁜 차이나』『중국 초기영화 1896~1931』『인간의 무늬』『문화콘텐츠론』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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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씨 임대근 대표님의 신간이 ACCI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전자책으로 먼저 선보이는 『문화콘텐츠와 디지털콘텐츠』는 제목 그대로, 문화콘텐츠와 디지털콘텐츠의 개념부터 기획 및 전략, 그리고 실천까지 쉽고도 깊이 있게 풀어낸 책입니다. 문화콘텐츠를 공부하고, 즐기며 기획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현재 부크크에서 구매하실 수 있으며, 곧 리디북스, 밀리의 서재, 북큐브, 알라딘, 예스24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4월 중순에 종이책 출간도 예정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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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팬덤과 함께 살아 숨쉬는 현대 신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데비 존스 선장도 크툴루와 닮아 있지 않나요? 신화라고 하기엔 좀 괴상하고, 공포라고 하기엔 묘하게 매력적인 크툴루 신화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7기에 이어 8기에도 좋은 글을 주고 계신 박성준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한 달 후의 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음주엔 어떤 분의 글이 소개될지 두근두근💞 기대해 주세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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