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라고 하면, 조용한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상담자가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상담심리학자들은 이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자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학회를 중심으로 무료 상담을 제공하며,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상담자들이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실 상담자들은 재난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상에서도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맥락에서 억압이나 차별을 겪는 내담자를 자주 만납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내담자나, 이주 배경 때문에 불이익을 경험하는 내담자가 이에 해당하죠.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성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상담자는 내담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함께 살피는 ‘다문화·사회정의 상담’을 적용해 폭넓은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문화적 민감성이 부족할 때 닫히는 마음
성소수자 내담자가 불안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았다고 가정해 볼까요. 만약 상담자가 성적 지향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내담자는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진솔한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상담자가 문화적 민감성이 부족하면, 내담자를 돕기는커녕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상담자의 태도와 시각은 내담자의 심리적 안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문화적 겸손’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최근 상담심리 분야에서는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e)’뿐 아니라 ‘문화적 겸손(cultural humility)’이라는 개념도 주목받고 있어요. 문화적 역량이 여러 정체성을 포괄하는 지식·기술·태도를 의미한다면, 문화적 겸손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자기 반성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열려 있는 태도”를 일컫죠.
책 표지 출처: 알라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문화적 겸손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오랜 수행과 삶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절대시하지 않고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그대로 믿지 않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내가 틀릴 수도 있어”라는 문구를 세 번씩 되뇌었던 일화는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나아가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다른 문화나 관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문화적 겸손이 이끄는 새로운 가능성
마지막으로, 문화적 겸손은 사회적 갈등과 혐오를 해결하는 매우 강력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문화적 편견을 인식하고, 타인의 관점과 경험에서 배우려는 열린 자세는 다문화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오늘 하루, 주변 사람과 대화할 때도 “내가 가진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겸손함을 바탕으로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시도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벽을 낮추고, 모두가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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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선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상담심리전공 조교수. 미국 테네시 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공인심리학자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한국사회에 적합한 다문화 및 사회정의적 개입 방법을 탐색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룰루랄라🎵 새로 맞춘 교복을 찾으러 가는 차 안에서 첫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갑자기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어’x3를 속으로 되뇌이며,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라고 인정하자 첫째도 곧바로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라고 웃으며 잘 마무리가 되었답니다. 부모이고, 연장자니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늘’ 주장했던 저였던 것 같아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의 전제는 곧 상대의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오늘의 악씨레터를 읽은 우리, 하나씩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