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은 서양 클래식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전설적인 음악가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음악의 거장들로는 누가 떠오르세요? 역사를 거슬러 가야금이 처음 만들어진 가야 시대로 올라가면 가야금의 명인 우륵 선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야국이 멸망한 뒤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투항했습니다. 신라의 왕은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감명받아 망국의 악기인 가야금과 우륵을 내치지 않고 오히려 오늘날의 충주 지역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가야금 연주를 이어가도록 도왔습니다. “즐거우면서도 넘치지 않고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다”라는 뜻의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 명언을 남긴 역사 속의 가야금 거장입니다.(2022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우륵 선생의 이 말을 떠올리며 연주했다고 하죠.)
우륵은 직접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 창작가이자 연주가였습니다. 오늘은 우륵을 닮은 현대의 또 한 명의 가야금 거장, 故황병기 선생의 음악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936년에 태어나 2018년까지 활동하신 황병기 선생은 전통 가야금 음악뿐만 아니라 수많은 창작곡을 남기며 가야금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또한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에도 큰 힘을 기울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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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은 명주실과 오동나무로 만들어져 사람의 손으로 뜯어서 연주하기에 순수한 자연의 소리를 가진 악기입니다. 원래 가야금은 전통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을 연주하던 국악기였는데, 1960년대부터 이 가야금 음악을 새롭게 창작하기 시작한 분이 바로 황병기 선생입니다. <침향무> <미궁> <시계탑> <남도환상곡> 등 수많은 창작곡을 발표하며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열었습니다. 오늘 제가 특별히 추천하는 곡은 바로 황병기 선생의 <춘설>입니다. 얼마 전 입춘으로 봄의 시작을 알렸지만, 눈이 내려 하얀 봄이 되었죠. 많은 분이 따스한 봄을 기다리고 계실 텐데요. <춘설>을 통해 봄에 내리는 눈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함께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 추천합니다. 황병기 선생님이 직접 연주하신 음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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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은 18현 가야금 곡입니다. 원래 전통 가야금은 12현이어서 18현 가야금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현대 가야금은 25현이기 때문에 18현 음악은 귀합니다. 25현 가야금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17현·18현·21현 등의 다현 가야금이 제작된 것인데요. 개인적으로 18현 가야금 소리가 25현 가야금보다 전통 가야금에 더 가깝게 느껴져서 보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곡 중 오늘 <춘설>을 선정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겨울과 봄 사이에 듣기 좋은 음악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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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12현 가야금 (우)18현 가야금 / 사진 출처: 국립국악원, 궁중악기사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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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선생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도 법조인이 아닌 가야금 연주자의 길을 걸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강, 그 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생전 인터뷰를 참고해 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노래를 잘해서 KBS 방송에 출연했을 정도로 음악에 굉장히 소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악기를 하나 제대로 배워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가야금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가야금 소리를 듣자마자 “아, 나는 가야금은 꼭 배워야겠다, 정말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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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가야금 소리 속에 우리 옛 어른들의 목소리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았어요. ‘여기 우리 것이 있다, 너 지금 무엇을 방황하느냐’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네이버 인생 스토리 황병기 인터뷰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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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야금을 시작한 후 황병기 선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을 했지만, 대학교 전공은 가야금이 아닌 법학을 택했습니다. 가야금은 그저 좋아서 배우는 것이었고, 대학교 전공은 또 전공대로 따로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야금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아, 집 근처 국악원을 매일 오가며 연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 법대 3학년 때 KBS 전국 콩쿠르에서 또다시 1등을 차지해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고, 졸업하자마자 당시 국악과 학장이었던 현제명 작곡가의 부탁으로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강의했습니다. 이어 이화여대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 특별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1985~1986년에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고, 1986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열며 세계 무대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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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가 고수(鼓手)로 무대에 올라 황병기 선생의 <남도환상곡>을 함께 연주했던 영상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곡은 12현 전통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창작곡입니다. 12현은 1년 열두 달을 의미하며, 우리 전통음악의 뼈대를 이루는 장단도 12박으로 이뤄져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아우르는 열두 달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음악을 만들고, 악기를 제작할 때도 인생의 철학을 담아왔습니다.
가야금의 ‘가야금스러움’은 바로 왼손으로 줄을 흔드는 ‘농현(弄絃)’에 있습니다. ‘줄을 희롱한다’ ‘줄을 가지고 논다’라는 뜻으로, 오른손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낸 후, 여음을 왼손의 움직임을 통해서 꾸며주는 것이 소리의 핵심입니다. 음과 음 사이 공간에 귀를 기울이면 가야금의 깊은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도환상곡>은 이러한 농현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황병기 선생의 노력이 잘 담겨있는 곡입니다. 황병기 선생에게 직접 사사한 이예랑 교수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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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과는 또 다른 매력의 <남도환상곡> 어떠셨나요? 황병기 선생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굳어진 옛것만 즐긴다면 그것은 전통이라기보다 골동품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씀처럼, 전통은 굳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창조되며 이어져야 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제 새로운 전통이 된 황병기 선생의 곡들을 통해 ‘전통’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곤 하는데요. 가야금 음악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거장을 기억하며, 그분의 작품들이 전하는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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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에서 타악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마쳤어요. 그리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글로벌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박사를 수료했습니다. 국악 타악은 물론 드럼, 라틴타악기 등의 세계 타악기를 부전공했고 가야금 지도자 자격증도 있으며 군악대에서는 해금 연주자로 활약하였습니다. 현재는 국악의 전당 대표로서 국악 아카데미와 유튜브 채널 <국악의 전당>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국악 부문 대의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 출강 중이며, 전통음악과 콘텐츠에 대한 강의 및 연주를 해오고 있습니다. 국악에 반해 반평생 국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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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춘설>을 듣던 중 댓글을 하나 봤는데, 거기서 “춘설이 난분분하다”는 표현이 있어서 찾아봤어요. 난분분(亂紛紛)하다는 ‘눈이나 꽃잎 따위가 흩날리어 어지럽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야금의 청아한 소리와 함께 눈 앞에 어지러이 흩날리는 눈의 풍경이 그려졌어요. 다른 댓글에서는 <춘설-평화롭게>(누르면 링크로 연결) 부분이 대전 지하철(단선) 종착역에서 나오는 음악이라고 해서 찾아봤어요. 대전에 살고 계신 구독자님은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남도환상곡>은 오늘의 악씨레터를 써주신 김영진 선생님이 언제 장구를 치시는지 궁금해서...🤭😆 故박동진 명창이 TV광고에서 외치셨던,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가 떠오르며, 이렇게 좋은 우리의 전통음악을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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