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에 일어난 제주항공 참사는 17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시간을 돌아보며 새해 계획을 세우는 평범한 연말이 누군가에겐 다시 오지 않는 영원한 내일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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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관련 기사들을 읽다가 현장에서 포스트잇과 펜을 나눠주는 남성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대표입니다. 그 역시 3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잃었습니다. 2012년 우연히 암에 걸린 지인과 손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마음도 치유되고, 지인의 병이 완치되는 경험을 통해 손편지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손편지운동’이라고 하니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자연재해 피해자, 한국전쟁 참전용사, 세월호와 이태원참사 유가족 등 위로가 필요한 사람과 현장을 찾아 손편지를 전하는 지극히 사적인 애도입니다. 참사 직후 무안을 찾은 이근호 대표는 사람들에게 펜과 종이를 나눠주며 “편지를 남겨달라”고 부탁했고, 공항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난간에는 유가족과 지인, 추모객들의 부치치 못한 편지들로 빼곡하게 채워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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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마음들이 고통스러운 죽음의 공간에서 희미하게 서로를 비추고 있는 것 같아서 사연을 읽을 때마다 뭉클하고 울컥했습니다. 손편지 사연이 가득한 추모의 계단을 보면서 주디스 버틀러의 ‘사회적 애도’를 떠올렸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슬픔에서 출발한 개인들이 분노와 애도를 표현하고, 연대하는 것을 버틀러는 사회적 애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사회적 애도는 우리 역시 불확실하고 취약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이번의 생존자가 다음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됩니다. 버틀러는 상실의 슬픔에서 상실을 책임지는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의 죽음도 깊이 애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비극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윤리적 실천이 사회적 애도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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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는 『슬픔의 위안』에서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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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것으로 잃어버린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결합, 의미있는 새로운 관계, 새로운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할 수는 있다. (중략)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하므로 그들의 삶에 참여하게 된다. 우정과 관계 속에 자신을 투자한다. 다시 예전처럼 살아가기 시작한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슬픔에게 충분한 시간을 배려할 때만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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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충분한 시간을 배려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롤랑 바르트는 1977년 10월 23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부터 일기와 메모 형식으로 슬픔을 기록합니다. 일반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잉크나 연필로 작성했는데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 아픔을 하루하루 경험하는 일들과 연관해서 기록한 몽타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르트의 책상 위 작은 상자에 보관되었던 이 메모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약 30년이 흐른 2009년 『애도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초반부엔 극심한 좌절과 고통, 슬픔과 부정의 감정들이 뒤엉켜 있어서 다소 혼란스럽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그의 분노, 슬픔, 외로움과 절망에 공감이 갑니다. 바로 어제까지 함께 살던 가족이 떠났다는 상실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해하고, 인정하며 멀쩡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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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안다. 나의 애도가 엉망이 되리라는 걸” (1977년 11월 2일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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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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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977년 12월 8일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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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떠난 이가 남기고 간 장소, 관계 안에 외롭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 사이에 서로 다른 애도가 모여 새로운 사이맺기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 그리움의 실체들, 살아갈 날들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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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하루 앞둔 12월 31일, 제가 사는 동네 재래시장에서 74세 노인이 운전한 차량이 시장으로 돌진하면서 1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제가 자주 가던 과일가게 직원이셨습니다. 항상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해주시고, 과일 추천도 친절하게 잘 해주셨는데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과일 가게 앞에는 그분을 추모하는 단골들의 꽃과 술, 간식들이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무수한 말들과 웃음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요. 불의의 사고로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또한 현재 진상조사와 장례절차가 진행 중인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도 깊이 애도합니다. 남겨진 가족과 동료, 이웃과 친구들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고, 충분한 사회적 애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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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참사 #손편지 #사회적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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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문화콘텐츠 비평가.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이사.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 진행.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교양/다큐 400여 편을 집필했어요. 현재 KBS 시청자평가원, OBS <미디어공감 좋은TV> 고정패널로 활동 중이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TV가이드 등에 콘텐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어요. 문화콘텐츠를 통한 사회적 실천에 관심이 많아서 방송, 영화, 게임, VR, XR 등을 통한 콘텐츠 액티비즘 연구를 수행 중이에요. 저서로는 『뉴미디어와 스토리두잉』, 『디지털 소양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공저), 『미디어 격차』(공저), 『AI와 더불어 살기』(공저), 『문화콘텐츠와 트랜스미디어』(공저)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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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난지 이제 열흘 정도 지났습니다. 너무 큰 슬픔 앞에서 어떻게 애도를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저와 같은 분들께, 오늘의 악씨레터는 가만히 손을 붙들고 ‘애도’라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조근조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적인 애도에서 사회적인 애도까지, 우리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깊이 애도하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함께 연대할 때 이 슬픔이 그저 슬픔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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