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미 너무 익숙해진 타이완, 하지만 진먼(金門)은 다소 생소한 지역일 것입니다.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는 그 유명한 진먼고량주(金門高粱酒)는 알아도, ‘진먼’이 어떤 곳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진먼은 상대적으로 타이베이, 가오슝, 화롄 등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채 양안(兩岸)을 잇는 정열의 땅, 진먼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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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먼은 타이완섬과 중국 대륙 사이에 있는 대만해협의 작은 섬입니다. 타이완섬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 걸릴 정도로 거리가 꽤 되지만, 지리적으로 중국과는 매우 가까워요. 바다 건너 푸젠성(福建省) 샤먼시(廈門市)가 보이기 때문이죠. 진먼은 고대에는 우저우(浯洲)로 셴저우(仙洲), 우다오(浯島), 창하이(滄海), 창우(滄浯), 우장(浯江) 등으로 불렸으며, 명(明)나라 홍무제(洪武帝, 1328-1398) 때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 시설의 구축 과정에서 현재의 명칭인 진먼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명청(明淸) 교체기 때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의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거점이었으며, 1949년 10월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의 공격에 맞서 국민당 군대가 진먼섬을 지켜낸 구닝터우(古寧頭) 전투, 1958년에 벌어진 진먼 포격전(대만에서는 8·23포전[八二三砲戰]이라고 부름) 등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기에 오랫동안 중국 대륙과 타이완 사이의 최전선 대립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연유로 인해 진먼에는 당시 벌어졌던 격렬한 전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국공내전부터 포격전까지 중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가 있는 진먼, 이제 진먼은 역사의 비극을 꿋꿋이 극복하고 중국 대륙과 타이완을 잇는 가교이자, 타이완을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만들어낸 진먼의 살아있는 역사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수많은 문화유적이 만들어낸 진먼은 타이완섬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자연과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진먼의 매력은 그야말로 끝이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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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자산의 보고(寶庫): 진먼의 문화적 포용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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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먼의 문화적 포용성은 민난(閩南) 문화와 동남아 문화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진먼은 지리적으로 샤먼시와 가까운지라 일찍부터 푸젠 지역의 문화, 즉 민난(閩南) 문화를 계승했어요(※참고로 민(閩)은 푸젠성을, 민난은 푸젠성의 남부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지리적으로는 (푸젠성의) 샤먼, 취안저우(泉州), 장저우(漳州), 푸톈(莆田)이 포함됩니다). 거기에 동남아 문화의 영향까지 더해져 진먼 문화는 다문화적인 포용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는 당시 해외에 진출했던 진먼 화교의 역사에서 비롯됩니다. 청나라 중엽과 말엽, 진먼의 척박한 환경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던 진먼 사람들은 동남아 일대로 떠나 삶의 터전을 마련합니다. 당시 적지 않은 진먼 화교들이 타지에서 돈을 벌고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활동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당(祠堂)을 정리하거나 양러우(洋樓, 서양 건축양식이 혼합된 저택을 가리킴)을 지어 자신들의 성공과 부를 알리고, 서양식 학교를 세워 신식 교육을 행해 인재를 양성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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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싱가폴 화교 무역상 천징란의 사저 천징란 양러우(陳景蘭洋樓), (우)수이터우 마을(水頭聚落) ⓒ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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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건축물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은건 진먼의 민난식 전통가옥이었습니다. 주지하듯이 집은 인간의 여러 행위가 이뤄지는 삶의 터전으로, 그 나라의(혹은 그 지역의) 가옥 형태를 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진먼민속문화촌(金門民俗文化村)이 바로 그런 곳이랍니다. 진먼민속문화촌은 1900년에 완공된 왕씨(王氏) 집안의 민난식 전통가옥으로 현재는 방문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민속문화촌으로 개방되었어요. 이곳은 당시 일본 고베에서 거상(巨商)으로 활동했던 왕궈전(王國珍)과 그의 아들 왕징샹(王敬祥)이 종친들의 거주를 위해 지은 곳으로, 총 18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이했던 점은 건물들이 모두 제비꼬리 모양의 처마를 덧대었다는 것인데요.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제비와도 같이 처마의 곡선미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이는 당시 왕씨 가문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하니, 더욱 남다르게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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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진먼민속문화촌(金門民俗文化村), (우)제비꼬리 모양의 처마가 인상적인 민난식 전통가옥 ⓒ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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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펑스예(風獅爺)’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펑스예는 돌로 만든 사자상인데, 민난 지역의 대표적인 신앙문화 중의 하나입니다. 진먼 곳곳을 다니다 보면 펑스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진먼에 펑스예가 많은 이유는 진먼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진먼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해 여타 지역보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에요. 본래 진먼에 나무가 많았는데, 원(元) 나라 때 대대적으로 벌목을 하는 바람에 나무가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나무가 없으니 섬 전체가 모래와 바위만 남게 되었죠. 그래서 당시 진먼 사람들은 푸젠에서 돌사자를 들여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 및 바람이 센 곳에 펑스예를 두었다고 해요. 그 이유는 펑스예가 바람을 막아주고 나쁜 기운을 물리쳐 준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펑스예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진먼의 민간 신앙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진먼 사람들은 액운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펑스예에게 감사의 의미로 두루마기를 입히고 제사도 드린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펑스예에게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도 하네요. 저도 진먼을 떠나기 전에 펑스예에게 소원을 빌고 왔습니다. 펑스예의 영험함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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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진먼 탐방은 단순히 여행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주었어요.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진먼을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문학 연구자로서 진먼을 깊이 읽어내는 시각을 갖춰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진먼의 지역적 정체성, 즉 로컬리티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 그리고 로컬리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적어도 중국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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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먼 #양안 #조화 #공존 #민난 #포용성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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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중앙대학교 아시아문화학부 부교수. 현재 국립타이완대학교 중문과에 방문학자로 타이베이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중국현대문학을 비롯하여 중국의 현대 학술사와 문화, 근현대 중국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주로 연구하고 있어요. 특히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격동기이자 전환기였던 민국(民國) 시기 지식인의 정치 운명 및 학문적 정체성의 상실과 재건 과정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중국언어문화연구회 편집위원장 겸 연구윤리위원,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연구윤리위원 등을 맡고 있어요. 최근에는 『근현대 중국의 지식인들 - 인간을 묻다』(공저), 『임서가 들려주는 강호 이야기』(번역) 등의 책을 출판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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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하면 떠오르는 술이 있지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왔던 카발란 위스키, 그리고 진먼고량주입니다. 진먼고량주는 은은한 배향이 감도는 깔끔한 맛의 청향형 고량주로, 저와 같은 고량주 입문자가 마시기에도 아주 좋은 술이었습니다.😋😍 이렇게 맛있으니, 진먼=고량주와 같은 공식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 진먼이 지리적,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곳임을 오늘의 악씨레터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양안을 잇는 곳, 진먼이 앞으로 어떤 로컬리티를 가지고 그 역할을 해낼지 저도 주목해 보겠습니다.
어떡하죠... 타이완앓이가 다시 시작되었어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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