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여행의 매력은 맛있는 먹거리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식도락의 향연에서 잠시 벗어나 여행 테마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다양한 역사 공간을 찾아보면서 옛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 역시 타이베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는데요. 그중에서 린위탕 선생의 옛집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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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사상과 문명을 아울렀던 20세기 대학자 린위탕(林語堂, 1895-1976), 동시대를 살았던 여타 중국 학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타이틀은 사뭇 특별합니다. ‘동서(東西)문명의 교량’ ‘중국 최고의 지성’ ‘유머대사(幽黙大師)’ 등, 이처럼 린위탕 선생은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폭넓은 식견과 박학다식한 면모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중국 푸젠(福建)성 장저우(漳州)현 판자이(阪仔)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기독교 학교에 다니며 서양식 교육을 받았어요. 당시 중국의 하버드대학으로 일컬어진 상하이 세인트존스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대학과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각각 비교문학으로 석사학위,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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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린위탕 선생은 그의 첫 번째 영문 저서인 『나의 조국, 나의 겨레』(원제: My country and my people)을 냈는데요. 출간 직후 당시 『뉴욕 타임스 북 리뷰』(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에 정식 소개될 정도로 당시 미국 출판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어서 1937년에 나온 린위탕의 대표작 『생활의 발견』(원제: The Importance of Living)의 경우 당시 미국 전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1939년에는 소설 『경화연운』(원제: Moment in Peking)을 발표하여 중국 및 영어권 독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이 작품으로 1975년 그의 나이 80세 때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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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My country and my people 표지, (우)Moment in Peking 표지 /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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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의 『생활의 발견』,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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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 선생의 명성은 한국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그중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단언컨대 『생활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생활의 발견』의 한국어판은 1954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었는데요(이종열譯, 학우사). 당시 출간된 한국어판 『생활의 발견』은 일본어 번역서 『生活の發見』(阪本勝譯, 創元社, 1938)을 다시 번역한 건데요.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 서양서를 번역할 때는 원서의 일본어 번역서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활의 발견』의 한국어 번역본이 상당히 다양하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재출간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이처럼 『생활의 발견』이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고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일련의 지침들이 책 속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이를 바꿔 말하면 린위탕 선생의 ‘생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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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ortance of Living(1937) /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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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 선생은 『생활의 발견』을 통해 동양, 즉 중국과 서양의 문화 차이, 더 나아가 중국인과 미국인 사이의 의식구조, 관념, 사상 등의 대조를 통해 각각의 장단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법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내놓았는데요. 그는 중국 고대 현자(賢者)들의 삶의 태도였던 ‘한적(閑適)’과 ‘중용(中庸)’에서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물질이 주는 순간적이면서도 자극적 쾌락이 아닌, 허황된 욕심과 마음속 불안을 버린 정신적 평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을 통해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을 강조했던 린위탕 선생의 ‘생활 철학’은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고 부귀공명(富貴功名)에 급급해하는 현대인들에게 지혜로운 삶의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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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지어진 린위탕 옛집은 양밍산(陽明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요. 린위탕 옛집이 여타 역사 인물들의 옛집과 다른 점은 특유의 건축 양식에 있는데요. 이는 린위탕 선생이 직접 설계한 것인데, 중국 전통 건축 양식인 사합원(四合院) 구조에 스페인의 건축 양식을 접목했는지라 그의 옛집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건축미가 공존하고 있어요. 하얀 벽에 푸른색 기와를 올려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입구는 아치형으로 설계되어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기까지 하는데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사각형 모양의 회랑을 지나면 안뜰에 스페인식 나선형 기둥이 방문객을 친절하게 맞이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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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린위탕 선생 옛집 외부 전경, (우)린위탕 선생 옛집 내부 전경 ⓒ한지연 202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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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내부에는 린위탕 선생의 저서, 장서(藏書)를 비롯하여 선생께서 평소에 사용했던 각종 유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특히 선생은 파이프 담배 애연가였는데요.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채 담배 본연의 맛과 향을 느긋하게 즐기는 선생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심 흐뭇하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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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린위탕 선생 옛집 내부, (우)린위탕 선생의 유품 ⓒ한지연 202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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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 선생의 묘(林語堂先生之墓) ⓒ한지연 202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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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내부 구경을 마친 후 뒤뜰로 발걸음을 옮기면 선생이 영면해 계신 자리가 있어요. 생전에 선생께서 추구하셨던 ‘한적’과 ‘중용’의 생활 철학처럼, 선생의 묘지는 전혀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묘지 비석 위 순백의 머그잔에 담겨 있는 진한 커피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경건해졌습니다.
양밍산 자락 입구에 위치한 린위탕 옛집에 방문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학자 린위탕 선생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는 묘미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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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중앙대학교 아시아문화학부 부교수. 현재 국립타이완대학교 중문과에 방문학자로 타이베이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중국현대문학을 비롯하여 중국의 현대 학술사와 문화, 근현대 중국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주로 연구하고 있어요. 특히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격동기이자 전환기였던 민국(民國) 시기 지식인의 정치 운명 및 학문적 정체성의 상실과 재건 과정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중국언어문화연구회 편집위원장 겸 연구윤리위원,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연구윤리위원 등을 맡고 있어요. 최근에는 『근현대 중국의 지식인들 - 인간을 묻다』(공저), 『임서가 들려주는 강호 이야기』(번역) 등의 책을 출판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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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다음 여행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지체 없이 타이베이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어요. 타이베이, 그러니까 대만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좋아서 다시 가고픈 곳은 대만이 처음이에요. 오늘의 악씨레터를 읽으니 『생활의 발견』을 읽고, 당장 양밍산 자락에 있는 린위탕 선생의 옛집에 가보고 싶습니다. 식도락 여행도 겸사겸사요.🤭
악씨레터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가 매주 펼쳐집니다. 독자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악씨레터, 주위에 많이 소문내 주세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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