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대만 문화부 리위안(李遠) 장관이 했던 말이 잠시 화제가 되었어요.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한류가 만들어지는 데 대만 소비자 기여가 적지 않았지만, 한류는 쇠퇴 중이고 이제 곧 대만류 차례가 온다고 발언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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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간담 중인 대만 문화부 장관 / 출처: 臺灣文化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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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뉴스에서도 그의 발언을 보도하였고, 한국 학자나 네티즌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죠. 특히 이를 대만인의 열등감이나 민족성으로 치부하는 해석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나 저는 이 해석에 반대합니다.
물론 대만인이 한국에 가지는 수많은 감정 중에 열등감이 일부 존재할 수 있고, 민족성 영향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이 때문만은 아니에요. 더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우선 이 발언자 직업과 대만 국내 상황을 이해해야 해요. 그 발언자는 일반 소비자가 아닌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집권당 ‘정치인’이죠. 따라서 현재 대만 집권당 상황을 고려하여 이 발언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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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그에게 무엇이기에 쇠퇴를 언급했을까요. 한류는 원래 대만 문화정책 결정자에게 본보기에요. 세계 공용어가 아닌 한국어를 기반으로 동아시아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유행하고, 정치와 경제에 파급효과를 가져온 한류는 대만 집권당이 꿈꾸는 이상향과 일치하기 때문이죠. 민진당이 집권한 현 정부는 탈중국화와 동시에 대만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화문화보다 대만 본토 문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대만 본토 문화를 지향하는 집권당은 탈중국 정책이 옳았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죠. 그 증명 방법으로 대만류를 선택할 수 있어요. 본토 문화를 전제로 성공한 대만류는 국가정체성 확립, 탈중국 정책 정당성 확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죠.(홍유선, 『대만 언론의 한국 국가 이미지 형성』, 한국외대 박사학위논문, 2020, 214-224쪽)
그래서 현 대만 정부는 대만류를 어느 때보다도 강렬히 원하고 있어요. 하지만 한정된 시장 규모에서 대만류가 흐르기 위해서는 한류의 공백이 필요해요. 한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대만류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저는 대만 문화부 장관이 간담회에서 한류 쇠퇴와 대만류 성공을 동시에 언급했다고 생각해요. 즉 앞서 말한 대만인의 열등감이나 민족성으로만 그의 발언을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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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대만 문화부 장관이 말한 바와 같이 한류는 곧 쇠퇴하고, 대만류가 등장할까요. 그가 꿈꾸는 대만류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의 말대로 대만은 한류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죠. 그리고 이 배경을 바탕으로 대만류도 형성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대만 소비자는 한국 콘텐츠를 폭발적으로 소비했음은 물론, 빠른 홍보를 위해 음반 회사 군스창피엔(滾石唱片)은 1998년 12월 17일 언론을 통해 한류를 ‘문화현상’ 의미로 최초 공식 사용했어요.(홍유선·임대근,「용어 한류의 유래」, 『인문사회21』 제9권 6호, 2018, 1240-1242쪽)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화권과 동남아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했죠. 이러한 대만의 홍보 능력과 환경은 한국 문화뿐 아니라 자국의 것도 유통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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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문화 용어 ‘한류’ 최초 사용 / 출처: 聯合晚報 (우)1999년 대만 한류 / 출처: 自由時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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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대만은 문화산업 발전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반도 탄탄하게 갖추고 있죠. 대만 정부에서도 지원하되 간섭은 배제하는 팔길이 원칙을 문화기본법 제21조 2항에 명시하고, 2019년에 대만콘텐츠진흥원(文化内容策進院, TAICCA)을 설립하여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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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 출처: 文化内容策進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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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도 준비가 되었어요. 지난 약 26년간 한국 드라마, 게임, 노래를 즐기며 성장한 소비자층은 한류 콘텐츠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이들이 이제 한류를 대만 정책과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실무자가 되어 대만류를 가속할 수 있죠. 물론 대만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하지만 대만류의 가능성을 계속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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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찍부터 해온 노력으로 현재 위치에 올라와 있죠. 챔피언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움을 포기하고 안주하는 챔피언은 도전자의 패기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한류도 새로운 흐름을 막으면 메마르기 마련이죠. 만일 대만류가 흘러온다면 우리는 경계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대만류를 ‘강’으로 삼고, 한류는 ‘바다’가 되어 이를 흡수해야죠. 그러면 더 크고 강한 한류로 발전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바다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해저는 강바닥보다 낮습니다.
한류도 바닥 높이를 낮춰야 해요. 그 높이를 낮춰 위로는 타국 문화를, 아래로는 세상 깊숙한 내면을 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류가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 속에 있는 더 많은 세계인을 품을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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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만사범대 인문대학 전임강사. 한국외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고 아름다운 이치(佳理)를 찾고 있어요. 문화정치에 관심이 많아 한류, 소프트파워, 국가정체성, 이데올로기, 다문화사회를 연구하고 있죠. 동양철학에도 신비감을 느껴 동양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답니다. 현재 국립대만사범대 한국학연구센터 센터장, 중화민국한국연구학회 이사,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해외이사, 한국외대 대만연구센터 편집위원, 국립가오슝대 한국연구센터 협동연구원,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특임연구원도 맡아 활동하고 있어요. 이러한 활동과 교류를 통해 공영하는 다문화공동체 형성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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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씨레터를 편집하는 저도 악씨레터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여러 관점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한류와 대만류!
연이은 폭염에 에어컨을 끌 수가 없네요. 빨리 이 더위가 지나가길 바라지만 막상 가을이 오면, 이 여름이 그리워지겠죠?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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