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의 청년들 모두가 심하게 피로한 사회에 살고 있죠.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悟り世代)’, 한국에는 ‘N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했고, 중국에서도 ‘탕핑(躺平)’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탕핑’은 힘든 현실에 맞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 있겠다는 의미로, 일종의 반항이자 체념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중국의 MZ세대 청년들이 찾은 안식처는 바로 불교입니다. 여러 불교 사찰을 방문해 삶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행운을 기원합니다. 이런 현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요. 한편, 한국의 MZ세대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을지로, 이른바 ‘힙지로’에 자리 잡은 철학 전문서점 ‘소요서가’는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명소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바로 소요서가의 대표 윤상원 선생님께 철학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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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온라인 서점, 전자책,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 등이 요즘의 트렌드이죠. 영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의 독립서점이 계속 문을 닫고 있다는 뉴스도 종종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철학’과 ‘독립서점’은 각각 다소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담대하게 철학 전문서점을 여시게 된 계기가 뭘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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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함께 철학 공부모임을 하던 지인들끼리 우리가 보고 싶은 책을 출판해보자는 취지로 출판사를 차렸고, 우리 책 외에도 다양한 큐레이션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점까지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점 문을 열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진지한’ 목적으로 서점을 하게 되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묻기도 했고, 지금처럼 공적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답을 했습니다. 서점이 위치한 을지로라는 지역의 특수성, 그중에서도 세운, 청계상가군의 역사와 현재성을 고려해 독립서점의 역할을 제시하기도 했고, 철학에 특화된 서점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른 답변을 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 우리는(우리가 누구인지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청년이 아닙니다. 중장년의 어른들이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서로 알던 사람들끼리 이 일을 도모할 때 어쩌면 우리는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는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물론 모두의 지금이 동일한 모습은 아닙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고민거리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자기 삶의 변화를 원했고, 그 변화를 유흥이나 다른 소모적인 일로 꾀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공부였습니다. 마침 저는 공부를 직업으로 하던 사람이라 학교 바깥에서 다른 방식과 목적에 따라 새롭게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출판과 서점 일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자기 삶을 새롭게 창조하고 싶다는 우리의 생각과 실천이 곧 철학적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가 철학서점을 통해 더 많이 공유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아마 있었던 것 같고, 우리 사회에 철학서점 하나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습니다. 물론 서점 운영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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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통상적인 서점의 상호를 간판에 적는 대신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여덟 글자의 질문을 적어 두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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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독특한 질문입니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와 같은 예외적 작품을 제외한다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영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비평이나 이론은 될 수 있어도 영화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다릅니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철학적이고,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 역시 철학적입니다. 철학자들마다 자기만의 관점으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을 남긴 것만 봐도 이 질문의 특수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철학적일까요? 소크라테스 이래로 철학은 ‘본질’을 묻고 ‘개념’을 통해 답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철학은 바깥을 향해 질문을 던질 뿐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자신을 향해서도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칸트 이래로 이런 질문은 ‘비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철학의 시작은 질문이고, 질문은 안과 밖을 동시에 겨냥하며, 이제 모든 질문들의 밑바탕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철학서점답게 서점을 방문하는 분들께 질문을 드리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철학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각자가 던질 수 있는 질문도 다르겠지만, 손님들이 서점 방문을 통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질문에 인색하고, 그런 사회일수록 권위적으로 변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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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실제로 한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철학 공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소요서가를 찾는 MZ 세대가 늘었지요? 문학콘텐츠, 역사콘텐츠 같은 개념은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철학콘텐츠라는 개념은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것 같아요. 콘텐츠로서의 철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피로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이에게 철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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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철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 서점을 찾는 손님들 중에 젊은 세대, 특히 이삼십 대 여성들이 많고,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많은 온/오픈 공간이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출판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전 분야에 걸쳐서 베스트셀러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였습니다. 그런데 젊은층에게 철학만 인기 있는 게 아니라, 독서와 책 문화 전체가 ‘힙’하다는 인상을 주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걱정스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소위 잘나가는 철학책은 철학사적 맥락은 생략한 채 삶에 대한 긍정과 윤리적 태도를 피로사회에 요구되는 힐링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들이 본문 편집이나 내부 구성보다는 외부 디자인과 마케팅에 방점이 찍힌 채 굿즈처럼 소비되고 있습니다. 책 역시 엄연한 상품이고 이렇게라도 책이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지만, 책이 상품 시장 자체를 자극하고 대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터 벤야민은 20세기 초에 만국박람회가 노동자들에게 교환가치를 가르치는 학교로 작동하고 있다며 ‘상품 물신’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텍스트힙’ 문화가 새로운 물신주의를, 어쩌면 ‘텍스트 물신’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철학이 질문이고 비판이라면 철학, 그리고 철학책의 역할은 가상을 조장하는 데 있지 않고 비판하는 데 있습니다. 피로사회를 살고 있는 젊은층에게 철학은 이런 사회의 더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주기보다, 또 다른 사회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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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영화계의 제작-유통-상영으로 이어지는 구조처럼, 소요서가도 출판-서점-아카데미로 이어지는 개념을 만들고 계신 것인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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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소요서가의 법인명은 ‘연구소오늘’입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고민하고 연구한다는 ‘거창한’ 포부를 담은 이름입니다. 연구소오늘이라는 법인 아래에 철학서점 소요서가, 도서출판 소요서가, 아카데미소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점은 을지로 청계상가 3층 보행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문가에게도 가볍지 않고 애호가에게도 무겁지 않은 서점을 지향하며,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는 칸트의 계몽의 표어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현재 동서양의 철학고전과 해설서, 인문, 예술, 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신간 등 3000여 종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서점에서는 매달 커뮤니티 활동도 운영 중입니다. 저자 및 역자와의 대화를 위한 북토크 ‘소요서담’, 페미니즘 독서모임 ‘소요당24’, 출간 6개월 이내 신간을 읽는 ‘금요 신간 읽기 모임’, 문학독서모임 ‘소요lit.’과 예술+이론 독서모임 ‘소요시각’이 대표적입니다.
출판사 소요서가는 철학과 예술 분야 출판에 주력하는데, 2023년 10월 첫 번째 책 “소크라테스”를 출간했고, 11월에는 두 번째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 장욱진”을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신간 “문명”을 출간한 후, 하반기에는 “궁정인 갈릴레오”, “하이데거와 반유대주의” 등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소요 역시 철학과 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21/22년에는 ‘서양철학사’를, 22/23년에는 ‘정치철학 고전 읽기’ 강의를 진행했고, 2023년 12월부터는 정치철학 고전 읽기 현대편을 특강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2024년 하반기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예술위원회의 지원 하에 ‘우리는 문학을 모른다’(지혜학교)와 ‘서양미술사ABC 현대미술편’(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석과 불교철학 강의 또한 곧 시작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철학이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철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철학이 ‘생각에 대한 생각’이자 ‘비판’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실천 그리고 공동체 생활의 토대가 되는 ‘지적 문화’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 소요서가는 동시대를 향한 문제의식을 출판사를 통해 제작하고, 아카데미에서 유통하며, 서점에서 공유하는 자체 순환 구조를 통해, 철학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소요서가는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철학적으로 제기한다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을 너머 아시아가 직면한 문제들을 철학적인 시각으로 함께 탐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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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철학콘텐츠 #한중일청년 #MZ세대 #텍스트힙 #철학전문서점 #소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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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조교수. 한중영화비교, 한중문화콘텐츠, 아시아 대중문화 등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영화를 통해 한중문화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사람과 사람, 또한 한국과 중국 간의 대화적인 관계를 위해 다양한 문화현상 및 인간의 무늬를 듣고, 읽고, 쓰고, 말하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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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철학서점 소요서가를 운영하는 연구소오늘의 대표로 일하며 프랑스 현대철학과 칸트 철학에 대한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점 안팎에서 번역, 강연, 독서모임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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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 다들 다녀오셨나요? 15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역대급 흥행이었다고 합니다. 도서전을 두고 흥행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어색한데요. 이번 도서전의 흥행은 ‘성수동에서 가장 핫한 팝업스토어’에 다녀오는 것과 일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Z세대의 텍스트힙 트렌드에 불과하더라도, 그저 인스타용일 뿐이라고 해도 책과 독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환영할 만한 일 아닐까요? 소요서가도 서울국제도서전도 그리고 악씨레터도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잘 기능하기를 기대합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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