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K-pop 분야를 비롯한 한국문화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한류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K-pop이죠. 중국에서 시작한 한류의 전사(前史)를 보면 1996년 중국의 국제방송에서 한국음악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7년 ‘서울음악실(漢城音樂廳)’이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H.O.T.’ ‘NRG’ 등 한국 대중가요 그룹을 전문적으로 소개했어요. 바로 그때부터 K-pop의 초국적인 매력이 발휘되기 시작했죠. K-pop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비평의 역할도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비평 없는 기획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기획 없는 비평도 존재할 수 없죠. 그래서 대중음악 평론가 김봉현 선생님 모시고 음악콘텐츠 관련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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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음악평론가라는 직함을 필요로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또 음악평론이 한국음악산업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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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카세트테잎이나 시디를 모으곤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면 누구나 직접 음악을 창작하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예술가의 재능과 제가 가진 재능은 좀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좋은 음악을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예술을 하기엔 이성, 논리, 이런 것들이 너무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제 자신에 대해 객관화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진 재능의 종류는 음악을 창작하는 직업보다는 음악에 대해 생각하고 글쓰고 통찰하는 직업에 더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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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은 현재 한국음악산업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누구도 음악평론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시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봅니다. 사실 전 ‘평론’이란 단어를 저와 결부시키는 걸 점점 피해오고 있습니다. 평론이란 단어는 너무 좁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평론에 국한되기보다는 그저 제 스스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팔짱 끼고 아티스트의 앨범에 점수 매기는 것보다는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앨범이나 이슈에 관해 칼럼을 쓰는 것 외에도 아티스트와 협력해서 신선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거나, 리스너와 대중에게 보다 깊고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강연이나 모임을 주도한다거나, 명작 앨범을 바이닐로 제작하고 저의 글로 가치를 기록하는 일 등 제 스스로 생각할 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평론이란 개념에 구애받지 않고 해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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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많은 음악 장르 중 힙합을 더 집중적으로 다루셨고, 힙합 저널도 많이 쓰셨고, 힙합에 관한 책도 꾸준히 쓰거나 번역하고 있는데, 언제 힙합과 처음 사랑에 빠지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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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90년대에 힙합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이런 게 랩이구나, 이런 걸 힙합이라고 부르는구나 하면서 음악을 듣다가 힙합이나 랩이란 개념을 제대로 인지하고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의 다른 음악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에 빠져들었던 것 같고, 그 모습들(자유롭고, 거칠 것 없고, 솔직하고 등등)이 거부감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였기에 그 후로 지금까지 이렇게 제 삶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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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초기의 K-pop부터 지금 방탄소년단의 음악까지 기본적으로 힙합에서 출발했다는 느낌이 종종 들어요. 한국 힙합은 K-pop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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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케이팝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SM의 유영진, YG의 양현석과 테디, JYP의 박진영 등은 모두 힙합과 알앤비에 기반한 음악을 했던 아티스트들이죠. 또한 케이팝 산업 내부에는 래퍼와 힙합프로듀서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래퍼가 연습생들에게 랩을 가르치고, 힙합프로듀서가 케이팝 트랙을 만들죠. 케이팝과 힙합은 뗄 수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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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2010년대의 한국 힙합을 평가하시면서 ‘쇼미더머니’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는데, 사실 ‘쇼미더머니’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힙합의 대중화에도 큰 역할을 했어요.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쇼미더머니’와 똑같은 포맷으로 제작한 중국 힙합 예능 <더 랩 오브 차이나(中國有嘻哈, THE RAP OF CHINA)>는 2017년에 온라인으로 방송되면서 매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어요. 이러한 현상 속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문화의 영향력과 저작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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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티브이쇼에서 오디션 시스템으로’ 무언가를 하는 흐름은 지금에 와 돌아보면 자연스러운 대세였던 것 같아요. 쇼미더머니가 처음 나왔을 때 힙합과 오디션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냐며 반발이 많았지만 결국 그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이냐 중국이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던’ 힙합이 세월이 흐르며 ‘티브이쇼나 인터넷에서 랩스타가 탄생하는’ 흐름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은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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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작년 힙합계를 개척하고 판도를 바꾼 여성들을 조명하는 넷플릭스 다큐 <레이디스 퍼스트: 힙합계의 여성들>을 보고 나서 여성 래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요. ‘남자의 게임’이었던 힙합계에서 많은 여성 래퍼들이 서로 도와주면서 다양한 장애물을 넘고 지금까지 걸어왔어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 래퍼가 갈 수 있는 길도 많아지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는데 앞으로 아시아 여성 래퍼들에게 어떤 새로운 연대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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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저도 그 다큐멘터리를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남자래퍼들이 자기네 크루에 여자래퍼 1명씩만 끼워줬기 때문에 우리 여자끼리 서로 눈치 보고 시기하게 되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제 우리는 우리끼리 많은 걸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시아 여성 래퍼를 말하기 이전에, 힙합 역사에서 아시아 힙합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죠. 예전에는 아시아 래퍼들이 흥밋거리나 변방 정도로만 취급받았다면 이제는 아시아 래퍼들이 흐름을 주도하거나 멋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케이팝의 긍정적인 영향도 있었을 테고, 뮤직 비지니스와 엔터 업계의 아시아인 사업가들이 일을 잘해온 측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꼭 ‘아시아 여성’ 래퍼들끼리의 독자적인 연대감이라기보다는 힙합의 세계화, 아시아 힙합의 성장 위에서 자연스럽게 아시아 여성 래퍼들 간의 연대와 화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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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연 마지막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즐기는 악씨레터 구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힙합 한 곡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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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HIPHOP ANTHEM 2023>을 추천합니다. 작년에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미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여러 기념행사가 열렸는데요, 한국에서도 래퍼 50인이 참여한 이 단체곡이 발매됐습니다. 들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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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음악콘텐츠 #대중음악평론 #힙합 #K-pop #쇼미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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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조교수. 한중영화비교, 한중문화콘텐츠, 아시아 대중문화 등을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영화를 통해 한중문화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사람과 사람, 또한 한국과 중국 간의 대화적인 관계를 위해 다양한 문화현상 및 인간의 무늬를 듣고, 읽고, 쓰고, 말하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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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힙합 저널리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힙합에 관한 책을 꾸준히 쓰거나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남몰래 좋은 수필가의 꿈도 키워온 끝에 『오늘도 나에게 리스펙트』라는 산문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결국은 좋은 문장을 쓰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네이버뮤직, 카카오뮤직, <씨네21> 등에 연재했고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 <블랙아웃>의 스토리를 썼다. <서울힙합영화제>를 기획하고 주최했고 김경주 시인, MC 메타와 함께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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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악씨레터는 인터뷰 형식으로 찾아왔습니다!🎤 힙합이란 장르와 한국, 아시아에서의 힙합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지면의 제한상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아쉬움은 김봉현 선생님의 책을 읽는 것으로 대신...😊 추천해주신 <HIPHOP ANTHEM 2023>은 무려 19분이나 되는 긴 곡이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래퍼들의 목소리를 하나씩 들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힙합 하니, 예전에 자주 들었던 투팍(2Pac)의 <Life goes on>이 듣고 싶어지네요. 구독자님의 힙합 추천곡!! 피드백으로 보내주세요~~! 같이 들어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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