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울산에 있는 ‘지관서가(止觀書架)’ 북카페에 대해 처음 들었어요. 울산에만 여섯 개나 있다고 하니 무슨 체인점인가 했습니다. 지관서가라는 말이 낯설 텐데 ‘잠시 멈춰 서서 책을 바라본다’는 뜻이에요. 이 뜻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지 않나요? 2021년 4월 울산대공원에 1호점을 문 열고 현재 7호점까지 오픈했습니다. 대체 지관서가는 어디서 운영하는 것일까요? 궁금하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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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서가가 생겨나기까지
지관서가는 울산시가 공간을 제공하고 플라톤 아카데미가 기획, SK가 조성하여 만든 울산 시민을 위한 독서 공간입니다. SK가 한 곳당 5억 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업은 회사 이름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SK의 소리 소문 없는 후원은 어떤 이유로 이루어지게 되었을까요? 우선, 울산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지요.
울산은 우리나라에서 첫 정유 공장이 세워진 곳입니다. 그래서 울산 하면 공업 중심의 도시, 도시 공해가 떠오르면서 문화공간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SK는 유공(대한석유공사의 후신)을 인수해 1962년부터 운영해 ‘공업지구’가 되었습니다. 공업지구 울산이라는 이미지를 늘 갖고 있었죠. 문화공간, 자연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SK가 지원하여 도심에 울산대공원이 만들어집니다. 이후 태화강 조성 사업으로 십리대숲이 단장되고, 2019년 순천만국가정원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어 친환경 도시로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이로써 울산은 공업도시에서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 울산대공원에 ‘지관서가’ 1호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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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서가 둘러보기
지관서가는 현재 7호점까지 있으며, 1호점부터 6호점까지는 울산에 있습니다.
1호점 울산대공원 지관서가의 테마는 ‘관계(Relationship)’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관계에 관련된 도서와 지관서가를 기획한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추천한 동서양 고전과 인생 테마 추천 도서들이 있어 끌리는 대로 골라서 읽으면 됩니다.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늦가을 오전 시간이었는데, 창밖에선 새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면 숲 냄새가 가득하고, 북카페 안에서 책을 보면서 저 멀리 내다보이는 산 풍경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이곳을 다시 찾은 때는 5월이었습니다. 울산대공원은 5월 장미축제 때 방문객 수가 엄청 는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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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점 장생포 지관서가의 테마는 ‘일(Work)’입니다. 장생포에는 과거에 고래를 잡았던 포경선이 있었습니다. 고래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사용하던 냉동창고와 물류창고는 세월의 퇴락과 함께 버려졌다가 지관서가를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장생포 바다에 정박한 배들과 포구 건너편의 화학 공장들 풍경에서 울산의 역사가 보입니다. 울산 산업현장의 역동성과 포경선이 포구에 정박해 있던 그 시절의 대비를 지관서가에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유리창 밖 일몰의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3호점 선암호수공원 지관서가의 테마는 ‘나이 듦’입니다. 호수 바로 옆인가 기대하고 갔지만 선암호수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어찌 보면 산속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파트촌 사이 노인복지회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책은 중년 이후 노년의 삶에 관한 인생서, 실용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끄럽게도 이곳의 추천 책들을 보니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아서 더 나이 들기 전에 읽어야 할 인생들이 많구나 반성했습니다. 인상 깊은 점은 주문받는 종업원도, 2층 올라가는 계단을 청소하는 직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이용자층도 다양한 듯 보였습니다. 1층의 화장실 역시 어르신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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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점 유니스트(UNIST) 지관서가의 테마는 ‘명상(Meditation)’입니다. 대전에 카이스트가 있다면 울산에는 유니스트가 있는데요. 유니스트 도서관 1층에 지관서가가 문을 열었고, 학교 건물 학술정보관 1층 도서관 공간에 있다 보니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막상 가봤을 때는 ‘명상’ 콘셉트에 맞게 ‘비움의 공간, 연결의 시간으로’라는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북카페 안쪽에 있는 동그란 돌 모양 의자는 ‘명상’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부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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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점 울산시립미술관 지관서가의 테마는 ‘아름다움’입니다. 5호점 지관서가는 시내 중심에 있는 울산시립미술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테마에 맞게 이곳에는 시각예술 관련 책들이 많아요. 1층과 2층에는 테마에 따라 숭고와 열망, 예술가의 꿈, 그리고 조화와 성찰, 예술가의 말 순서로 배치된 게 눈에 띄었습니다. 지관서가는 카페에서 판매한 수익금은 소외계층을 돕는 일로 환원하고 있습니다.
6호점 박상진호수공원 지관서가의 테마는 ‘영감’입니다. 이곳은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기존 카페를 리모델링하여, 2023년 5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를 기리며 만들었습니다. 1층은 카페, 2층은 서가, 3층은 전망대로 이뤄졌습니다. 카페 전경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떠오릅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2층 카페에서 창문을 내다보면 눈 앞에 펼쳐진 호수 뷰가 최곱니다.
7호점 지관서가는 경기도 여주에 있습니다. 괴테마을 지관서가의 테마는 괴테의 생과 그의 작품과 닮은 ‘극복’입니다. 괴테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독문학자 전영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독일에서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괴테와 관련된 시설과 집을 한데 모아, 괴테라는 진취적이고 성찰적인 큰 인물의 생애를 하나의 삶의 모델로 한 ‘괴테마을(Goethe-Dorf)’을 여주의 이 작은 마을에 재현하여, 현대인의 인문학적 사고를 함양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여주 ‘괴테마을’에 이어, 8호점도 울산이 아닌 평택에 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경북 예천에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2026년까지 울산에 20개, 전국에 100개가 목표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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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서가로 탈공업지구를 꿈꾸는 울산
탈공업도시로 변신하고 있는 울산시를 보면서 ‘나도 나중에 여기서 살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실 울산에 동생도 살고 있어서 종종 오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어요. 그러고 보니 이곳 울산에는 누가 살까? 거주민의 주연령층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내 이동인구 통계 자료를 보면 연령별 이동률은 전체적으로 20대(23.1%)와 30대(18.9%)가 높고, 6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낮게 나타났습니다. 시도별 순이동률을 살펴보면 세종(2.7%), 인천(1.0%) 등 7개 시도는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많은 반면, 울산(-0.9%), 경남(-0.6%) 등 10개 시도는 전출자가 전입자보다 많습니다. 특히 울산의 20-30대의 전출 수치가 가장 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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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지방 도시의 쇠퇴를 우려할 수 있습니다. 지역 쇠퇴는 인구 공동화 현상과 지역경제 문제, 그리고 지역 소득 감소 등으로 지역사회 및 국가적인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울산을 예를 들면 다양한 일자리의 부족, 광역시 인구 대비 대학의 교육 및 문화 기반의 취약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인구의 고령화와 재정 여건의 악화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관서가의 뜻깊은 노력이 더 다가왔습니다. SK는 지관서가를 통해 지역사회에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문화 확산과 지역 커뮤니티 강화를 통해 인문학 생태계를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지관서가 프로젝트가 울산 시민 모두에게 정신적인 쉼을 주고, 지역 쇠퇴를 막아줄 20-30대 젊은 층이 다시 울산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지관서가만의 독창적인 프로그램들이 펼쳐진다면 울산 시민뿐 아니라 타지역에서 찾아오는 곳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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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지관서가 #울산대공원 #SK #복합문화공간 #지역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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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최준란
문화콘텐츠학 박사. 길벗출판사 편집부장, 홍대앞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홍대앞의 지역적 특성과 책문화공간에 관심을 갖고 「비산업적 문화콘텐츠로서 도시재생 연구: ‘홍대앞’책문화공간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홍대앞을 시작으로 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기반을 둔 콘텐츠를 개발하고 활용하여 도시재생 측면에서 어떤 효용성을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로 학문적 관심을 넓혀가고 있으며, 현재는 서점과 도서관 연구에도 관심이 많아요. 저서로는 『책문화공간과 도시재생』이 있으며, 논문으로 「이태원 책문화공간과 트랜스아이덴티티 연구」, 「진보초 서점거리의 지속 요인 연구」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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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저도 꽤 자주 가는 곳인데요. 지관서가라는 이런 멋진 공간이 있다는 것을 오늘의 악씨레터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지관서가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각 지점의 테마별 도서분류와 목록까지 정리되어 있어요. 함 둘러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6개의 지관서가가 울산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울산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만간 SRT 타고 울산으로 떠나야겠어요! 저 같은 분들 많으시겠죠? 앞으로 울산은 어떻게 변모할지, 지관서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하며 언젠가 지관서가에 다녀오게 되면 저도 후기 남길게요. 다녀오신 분 계시다면, 어땠는지 피드백을 통해 알려주세요. 궁금합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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