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를 기획하는데 있어서 ‘관찰’이라는 과정은 너무나 중요해요. 관찰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살펴볼 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을 말해요. 대상에 대해 살펴본다는 것은 그에 대한 현 상황만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과거에 어떠한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냈고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요. 우리가 트랜드를 분석한다고 하면 대부분 현재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획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찰은 우선 과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현재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리고 이에 더해지는 기획자의 절대적인 감각을 포함해야 해요.

<닥터 하우스>에서 환자를 만난다는 것

FOX사에서 제작된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와 함께 웃고 울면서 지난 한 달의 시간을 보냈는데요. 저는 드라마를 볼 때 대사나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성향이 있어서 OTT 드라마 시리즈의 정주행을 시작하면 일상의 대부분을 드라마와 함께하는 편이에요. 이 드라마를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잠시 소개하자면, 환자는 끔찍이 싫어하면서 의문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괴팍한 의사 하우스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가상 공간인 프린스턴 플레인즈버러 대학병원의 진단의학과 과장으로 그의 팀원들과 다른 병원에서 진단하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병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병을 밝혀내고 치료하는 드라마예요.

이 드라마에 시청자가 더욱 빠져드는 것은 매 에피소드를 보는 것이 한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거예요. 하우스의 진단의학과 팀원들은 마치 탐정이 사건을 조사하듯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환자의 병명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방법은 우리가 만나는 병원 의사 선생님이 할만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들인데요.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의 사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나 그 병이 발생할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장소에 방문하여 환자의 신상정보를 캐내거나 주변인을 탐문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진단의학과장인 그레고리 하우스의 신념과도 같은 “모든 환자는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환자의 말을 듣고 믿기보다는 직접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드라마 내에서 실제로 하우스가 환자를 만나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을 때, 혹은 완전히 답답한 상황에서 직접 환자를 관찰하고 면담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입니다. 처음에 드라마를 볼 때는 왜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환자에 대한 신뢰 없이 어떻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자와 의사 그 미묘한 관계

우리가 동네 병원을 갈 때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특히 대학 병원을 가면 의사와 환자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도 10분 정도일 것입니다. 이것도 긴 시간이죠. 더욱이 담당한 환자가 많은 의사 선생님은 옆방, 또 그 옆방에도 환자를 대기시키고 계속 움직이면서 환자를 진료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환자와 대화하면서 환자인 우리의 증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여 처방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오늘 TV에 출연한 어떤 이혼과 불륜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님은 의뢰인을 만나면 그들이 너무 신세한탄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죠?”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주변 사람에게도 습관적으로 이런 식의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주변에는 T인 사람들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시던데요. 우리는 의사 선생님이나 변호사님을 만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괄식으로 짧고 간결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고 만나야 하는 걸까요? 살짝 의문이 드는 순간이네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에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내용을 읽으면서 위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이트는 “환자를 회복시키고 고통스러운 증상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려 할 경우. 그는 강하고 집요하게 치료의 전 과정에 걸쳐서 저항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치료하는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서, 또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는 환자는 거의 만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브루스 핑크가 지은 <라캉과 정신의학>에서도 “라캉은 환자가 치료를 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환자는 현재의 증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의 에너지를 투자한다. ... 물론 환자들은 분석가를 찾아와서 하루빨리 증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환자는 증상을 포기하길 원치 않는다.”라는 내용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환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오지만 현재의 증상에 따라 오는 현상에서 또 다른 만족이나 해방감을 얻을 수도 있고 스스로 병을 통제하고자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네요.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복잡한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콘텐츠와 관찰

환자와 의사 이야기를 <정신분석 강의>에서 전개하던 중 프로이트가 ‘관찰’에 대해 언급하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같은 관찰이 매우 어렵고 집중적이고 심층적인 작업을 통해 수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라는 부분입니다. 정신분석가는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진료실에 방문한 환자의 오랜 인생의 고통을 분석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장치들을 활용하여 환자들의 대응하는 태도를 살펴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환자들이 무심결에 행하는 태도를 통해 그들이 하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는 거죠. 프로이트의 다양한 환자 임상 사례를 통해 그들이 억압하고 숨기고 있는 기억과 내용들을 읽어내는 과정이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닥터 하우스>에서 의사가 환자를 믿지 않고 직접 관찰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은 그러한 과정이었던 거죠.

그럼 문화콘텐츠 기획에서 관찰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볼까요? 우리가 트랜드를 분석하고 문화콘텐츠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기획자가 되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찰은 어디에서 어떻게 필요할까요? 프로이트의 임상 사례에서는 그가 사용했던 어떠한 장치를 적용하면서 어떠한 전환이 이루어졌고, 그 전환점에서 발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 기획에서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이 있습니다. 낯설다는 것은 익숙한 것이 앞에 존재하기 때문에 낯설어질 수 있지요. 우리가 익숙한 것을 충분히 잘 살펴보고 기획자의 관점을 통해 내용 또는 매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낯설고 매력적인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기획을 시작하는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고 쉽게 적용하고 수행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콘텐츠라는 환자를 고치는 의사로서 기획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최우선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은 제대로 된 관찰을 통해 숨겨져 있던 보물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점을 문화콘텐츠 기획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은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관찰 #닥터하우스 #프로이트 #라캉 #낯설게하기

최보경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전시콘텐츠, 지역문화콘텐츠, 과학문화콘텐츠, 디지털미디어콘텐츠 관련 공부를 계속하고 있어요. 콘텐츠를 경영이나 마케팅 등 관련 학문들과 연계해서 공부하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디지털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조수토 대표, 전시콘텐츠 전문회사 (주)앰허스트 이사 등을 하면서 현업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경기도 파주의 남방한계선 안쪽에 있는 미군부대 유휴지인 캠프그리브스 문화재생사업 총괄감독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분류해보면 키스해링, 요셉보이스, 에드워드 커티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등 작가 전시, 어린왕자 한국특별전, 빅뱅 10주년 전시, 피스마이너스원 등 문화콘텐츠 협업 전시, 러버덕 프로젝트와 1600판다의 세계여행 등 공공미술 프로젝트, 문화샤넬, 디올정신,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비통, 노아의 방주 반클리프아펠, 티파니 다이아몬드 전 등 럭셔리 브랜드 전시, 서울패션위크, 서울디자인위크 등 문화예술행사,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기업과 아트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