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사회적 예술입니다. 이는 영화가 현실을 반영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따라서 영화는 시대를 지배하는 정서와 집단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가령 1920년대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암울한 시기를 보냈는데, 당시 표현주의 영화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했습니다. 1950년에 미국 시민들은 경제위기와 냉전체제를 보내면서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었는데, 당시 누아르 영화가 이런 사람들의 무의식을 반영했습니다. 또한 영화는 ‘사회 제도와 의식’을 창조합니다.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은 KKK단을 흑인의 폭동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단체로 묘사해서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탄생시켰고, 70~80년대 미국 영화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혼율에 제동을 걸기 위해 가족영화를 만들어 이상적인 가족상을 제시했습니다. 마블 사의 히어로 영화는 ‘영웅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메시지 이면에 미국이 세계를 지킨다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녹여냈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사회적 기능은 ‘이데올로기 토론의 장’입니다. 한쪽에서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기존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을 소재로 애국심을 고취시킵니다. 따라서 영화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며, 한 사람이라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경쟁하는 이념의 전쟁터입니다. 이런 사실은 장르영화의 특징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멜로와 코미디 장르영화는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고 묘사하고, 스릴러와 공포 장르영화는 사회 제도가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가 얼마나 불완전한 지를 각성시킵니다. SF와 판타지 장르영화는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개혁하며 사회적 예술로서 기능합니다.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한 사람들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일찍 알아차린 히틀러는 영화를 선동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인 출신으로 독일 국민의 95% 이상의 마음을 선동해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그가 적극 활용한 예술 분야는 영화와 음악인데, 특별히 그는 영화가 가진 선전선동의 기능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총독이 된 후 무용수 출신 리펜슈탈(L. Riefenstahl)을 영화감독으로 고용해서 나치를 찬미하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1차 세계대전의 패망과 서방나라의 경제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는데, 리펜슈탈의 영화를 보면서 나치가 게르만 민족의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히틀러의 믿음은 그의 최측근이자 나치의 선전국장인 괴벨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괴벨스는 전쟁 중 일주일에 3편의 영화를 감상할 정도로 영화광이었는데, 그는 ‘선전은 본질상 예술이며, 영화는 선전의 중요한 무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를 비롯한 예술이 선전선동의 도구로서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주지하듯이 영화는 도시 노동자의 오락거리로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영화의 사회적 효과에 점차 주목했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매스미디어가 지닌 사회적 효과를 처음 연구한 이론은 ‘탄환이론’(The Bullet Theory)입니다. 이 용어는 커뮤니케이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슈람(W. Schramm)이 매스미디어의 효과를 증명하려고 명명한 이름인데, 그에 따르면, 영화의 메시지는 수용자 개인의 마음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필연적으로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시도되었고, 그중에 Payne재단이 영화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매스미디어의 효과를 입증하는 최초의 실증연구입니다. 이들은 시카고 부근 6개 지역에 거주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6편의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가 이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영화가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사회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감정을 자극해서 현실 세계에 대한 사고와 해석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탄환이론의 연구방법에 오류가 드러났고, 그 뒤로 탄환이론은 서서히 힘을 잃다가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지닌 사회적 기능과 파급효과는 실제 존재하며, 대다수의 연구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합니다. 요컨대 영화는 ‘이데올로기 탄환’을 관객에게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영화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탄환으로 변신중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입은 방탄복은 안전한가요?
KEY WORDS
#매스미디어 #매스커뮤니케이션 #탄환이론 #사회적예술 #장르영화
WRITER
박진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여러 대학에서 영화분석과 글쓰기와 철학과 문화·예술을 가르칩니다. 창작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음반을 제작했고,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연구반(48기)을 수료하고 단편영화 제작에도 참여했어요. 이후 영화제와 방송국 음악 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였습니다. 현재 한국복지방송에서 화면해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영상 미디어 스토리텔링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저서 <K-스토리텔링>(2022)에 공저로 참여했고, 대표 논문으로 “영화 속 시각이미지에 나타난 ‘사유의 환유적 확장’-영화 <설국열차>를 사례로”(2019)와 “‘봉준호 장르’의 가능성: <기생충>의 크로노토프 서사전략”(2020) 등이 있습니다.
오늘의 악씨레터
콘텐츠 범람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방탄복을 입어야 할까요?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리터러시(literacy)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리터러시는 제가 무척 관심 갖고 있는 분야라서 책 두 권 추천할까 합니다.😘 쉬우면서도 술술 읽히는 책으로는 『잘 봐 놓고 딴소리』를, 조금 더 학문적으로 깊이 읽고 싶다면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 가이드』를 추천드려요. 리터러시와 관련해서 함께 읽고 싶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피드백에 남겨주세요~!!
그나저나 봄은 오고 있는 거죠? 아직 춥지만 곧 벚꽃......😆🌸🌸
FEEDBACK
지난주 악씨레터에 도착한 답장💌이에요. 구독자님께서 시간 내어 보내 주시는 소중한 피드백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구독자님의 피드백을 통해 악씨레터는 더더더- 좋아질 거예요!!
🌷이제는 한류와 한국 문화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아이돌’의 기원과 정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가수가 직접 알려주는 ‘아이돌의 기준’이라니,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대중문화에서 직접 활동한 사람이 학문적으로 대중문화를 분석해보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