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씨 뉴스레터 Vol.1 No.3 2023.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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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우리를 세상과 조우하게 하고, 우리 내면과 대면하게도 합니다.
단숨에 읽고 또 펼친 책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의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라는 에세이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괴로웠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어요. 애써 외면하고 부정했던 내 '이상한 감정'. 드디어 이 감정을 말할 언어를 찾은 듯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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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이란?
이 책은 아시아인을 비롯한 소수가 미국에서 겪는 인종차별을 다루고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차별'은 노골적인 차별만은 아니에요. 이민자에게 부채 의식을 가지라는 주류 사회의 암묵적 기대랄까, 백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유색인종의 예의 바른 행동, 백인 기준에 '미달한' 외모와 언어에 대한 자기혐오, 그리고 "다른 아시아인들과 함께 있으면 더 열등해지는 기분"(책 27쪽) 등 내면화된 인종차별도 포함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인종차별' 대신 '마이너 필링스'라는 표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수의 무심함에 소수가 느끼는 미묘한 부정적 감정. 이런 감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예를 들면 불안, 짜증, 수치심, 우울감, 열등감, 죄의식 등이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 말이죠. 저자의 글을 직접 읽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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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분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책 8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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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아시아계 미국인만이 아니라 여성, 빈곤층,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 주류 집단에 끼지 못한 사람이 모두 공감할 감정이 '마이너 필링스'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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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와 피해망상
한국에서 택시 타는 일은 늘 어려워요. 내 한국어가 서툴러서, 내가 잘 몰라서, 내가 소심해서, 내 피해망상인 줄로만 알았죠. 그런데 그때마다 느꼈던 미묘한 감정의 표현을 찾았어요. 처음 한국 유학할 때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어요. 택시를 타려면 서툰 한국어가 고스란히 드러났죠.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짜증을 내비치는 택시기사를 만난 날이면 제 자신을 탓하기 바빴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지만 또 다른 상황을 마주합니다. 한국인과 함께라면 괜찮던 카드 결제가 혼자 탄 택시에선 꼭 문제가 있대요. 기기 고장은 흔한 이유고, 출발할 때 카드 결제를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금을 강요당한 건 부지기수였어요. 나중엔 제가 젊은 여성이라서, 혹은 '외국인 티가 나서' 그랬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택시 호출앱이 보급되면서 이 고충은 말끔히 없어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이상한 강박증이 생겨버렸어요. 택시를 탈 때 모국어를 최대한 하지 않기!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모국을 들키지 않기!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조심했어요. 친구와 택시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다 싸늘해진 택시기사의 눈빛을 본 순간이었죠.
얼마 전 한국에 오신 어머니를 모시고 강릉 여행을 갔어요. 택시를 탈 일도 많았죠. 택시 공포증은 승차 중 어머니가 제게 말을 걸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드러났어요. 물론 어머니는 강릉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셨고, 마지못해 모든 질문에 대답해야 했어요. 물론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간결하게요. 그리고 수시로 택시기사의 눈치를 살폈어요. 탈 때와 내릴 때에도 일부러 더 상냥하게 인사했어요. (캐시 박 홍이 비행기에서 만난 남아시아 젊은이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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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애정
대체 전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감정 배설에 불과한 인터넷 댓글? 중국인 피해자의 검증되지 않은 경험담? 아니면 소위 말하는 N-word와 같은 무게의 '짱깨'? 이런 표현은 화가 난다기보다 속상하고 무서웠을 뿐이에요. 혹시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제 두려움은 한국에 대한 애정과 비례함을 깨달았어요. 한쪽이 쌓이면 다른 한쪽도 무겁게 늘었던 거죠. 저는 한국을 아주 많이 좋아해요. 인생의 절반을 여기서 보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예요. 그런데 이 나라가 나를 싫어한다면? 저를 부정하고, 경멸하고, 배제한다면 상처받을 것 같아요. 결국 제 두려움은 사랑과 늘 공존하고 있었어요. 미국에 대한 캐시 박 홍의 감정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시간을 가로질러 1996년에서 들려온 한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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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이 커지는 만큼
우린 영원할 수 있을까
너와 사랑하면 난 자꾸
힘든 나를 만들어가
- DEUX, '사랑 두려움',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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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와 여백
제 두려움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어리석으며 대표성은 부족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소수자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서, 백 분의 일도 다룰 수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자리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그들'의 곁에서 말하는 것뿐이에요. '근처에서 말하기'란 아무리 비슷한 처지에 있더라도 그들을 대표하거나 대신하여 발언하지 않겠다는 제 다짐이에요. 제가 남겨둔 여백에 타자가 들어와 의미를 함께 채워 나가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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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규정을 의도적으로 멈추어 의미가 간단히 봉쇄되지 않게 하고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에 여백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타자가 그리로 들어와 그 자리를 원하는 방식으로 메울 수 있게 됩니다." (영화감독 Trinh T. Minh-ha의 인터뷰 재인용, 책 14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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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는 미처 살피지 못한 내면을 읽는 용기와 그것을 이야기할 언어를 알려주었어요. 좋은 콘텐츠는 우리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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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u Chen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특임연구원. '조선어'를 배워서 한국을 만났고, 대학원 공부로 삐딱함을 얻었습니다. 제일 자주 하는 생각은 "왜?"이고, 제일 싫어하는 대답은 "원래 그래~"입니다. '원래 그런 것'을 인정하라는 말보다 더 폭력적인 말이 있을까요? '원래'를 거부하는 게 공부하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믿어요. 그리고 회의감이 들 때마다, 어느 겨울날 지하철 2호선에서, 존경하는 분과의 대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논문을 열심히 잘 써도 세상을 바꿀 수 없는데, 왜 하는 걸까요?" "그래도 조금은 아름다워지지 않겠어요?" 공부가 이렇게 낭만적일 수가! 지금은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허물고, 자아와 타자의 간격을 좁히고,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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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악씨레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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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하면서 오늘의 레터를 미리 읽은 저는 서점으로 달려가 <마이너 필링스>를 구입하였습니다. 두근두근... 저의 이 떨림은 대면해야 할 나의 내면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함, 혹은 두려움인 것 같아요. 나의 내면을 대면할 용기를 내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이 악씨레터 구독자님들께는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합니다. 피드백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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