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불과 20년 전에는 'communication'이란 단어를 '의사소통'으로 번역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번역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고요, '의사'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죠. 요즘엔 '소통'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요. '의사'에 중점을 두면 언어를 교류의 도구로 삼는다는 뜻이 강하지만, '소통'에 중점을 두면 언어가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한다는 의미가 더 세집니다.
우리는 이런 소통을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세계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에서 굉장히 친밀하게 구사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더 이상 세계라는 대상을 넓게 보지 않고 어렵게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열려있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세계는 동물의 세계, 인간 세계 같은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이 세계에 대한 활용을 큰 어려움 없이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그리는 세계, 내가 바라보는 세계
아주 근본적인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말하면서 '세계'라는 개념을 썼습니다. 예컨대 '한국현대소설의 세계'라고 말할 때의 의미와 가깝습니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세계는 내가 살아온 역사가 바탕이 된 세계, 즉 하나의 공유된 지평 속에 응집된 근본적인 이해를 뜻하는 듯하거든요. 내 안에 그려진 서사가 나를 이루고 내가 바깥을 바라보는 시각이 된다는 것이죠.
얼마 전 제 세계를 직시하게 해준 우스운 일이 하나 있었는데요. 삿포로에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에 대해 거의 까막눈과 마찬가지인 저는 언어의 장벽을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거리를 걷다 저 멀리 커다란 간판을 보게 됐습니다. 수저에 붉은색 물체가 가득 담긴 이미지였는데, 그걸 보고 "저긴 뭐하는 곳이지? 고춧가루? 한국 음식점은 아니겠고 훠궈라도 파는 곳일까요??" 했더니 곁에 있던 분이 깔깔깔 웃는 게 아닌가요. 알고 봤더니, 수저 가득 담긴 연어알이었어요.
그 순간 저의 세계를 되돌아봤습니다. 저에겐 수저 가득 연어알이 담겨있는 이미지보다 고춧가루가 담겨있는 그림이 더 가까운 세계였던 거죠. 저라는 사람이 살아오며 응집시킨 이미지에서 수저 위 빨간 물체는 고춧가루가 당연했던 겁니다. 언어를 몰라 배경에 적힌 문구는 당연히 알 수 없었고, 비행기 도착 후 피곤했던 상태로 돌아다녔다는 걸 핑계로 삼아볼게요. (연어알을 한 번도 못 본건 아니라고 조용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나의 세계, 우리의 세계는 기존에 보고 들었던, 살아왔던 역사에 기초하여 이룹니다. 언어를 통한 교류가 최전방 위치에서 비켜난 현재에, 우리가 세계를 넓히고 세계와 교류하는 방식에 무엇이 있을까요.
소통과 이해의 도구, 콘텐츠
콘텐츠는 우리를 알지 못했던 세계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콘텐츠로 시대를 이해하고, 세대를 만나고,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읊조리기도 합니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 친구에게 한국에서 '레드썬'이란 표현의 맥락과 의미를 이야기해 준 적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넷플릭스를 통해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시청하던 친구가 연락이 왔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