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예찬, Welcome to the Horror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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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씹어야 제맛이지만, 썰어야 제맛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썰기의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호러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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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아이템 칼, 도끼, 망치, 야구방망이 등 소프트한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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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셔(slasher)는 '베다, 자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슬래시(slash)에서 파생된 용어입니다. 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영화 속 등장인물(특히 젊은이들)을 몽땅 죽음의 파티로 이끄는 영화를 슬래셔 무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요. 싸이코, 이상 성격의 살인마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때문에 주로 연쇄 살인마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죠. 그 연원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싸이코Psycho>(1962)에서 찾을 수 있으며, 호러라는 일반적인 공포물과 굳이 구별하여 슬래셔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존 카펜터 감독의 1978년작 <할로윈Halloween> 이후부터라는 게 통설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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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Halloween>(1978)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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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슬래셔의 교과서쯤 되는데요, 슬래셔 무비가 갖춰야 할 기본 요소들이 모두 들어있어 이후에 발표된 슬래셔들은 바로 이 영화를 표준으로 삼았다고 하죠. 기본 요소들이란 1) 성적으로 문란한 10대들이 주인공인 점, 2) 그들의 부모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3) 피가 튀는 살인 장면 그리고 4) 도저히 처치될 것 같지 않은 살인마의 등장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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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1980)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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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면에서 <할로윈> 못지않은 성적을 낸 슬래셔 무비가 바로 국내에서도 꽤 인기 높았던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1980)인데요,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인기 있었던 슬래셔 무비 역시 바로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였습니다. 1984년 등장한 <나이트메어Nightmare> 역시 7편까지 제작되었는데요, 이 영화가 창조한 괴물 '프레디Freddy'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Jason과 마찬가지로 가장 끔찍한 살인마의 대표 캐릭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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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셔 무비계의 트로이카, <할로윈>의 마이클,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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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의 인기 때문에 비평계에선 10대들이 하나씩 살인을 당하는 무자비한 영화가 왜 10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가를 밝히는 작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슬래셔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1970년대 등장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슬래셔 무비들은 ‘여성 혐오 영화’의 대표주자로 꼽히는데요, 여성의 순결에 대한 집착과 칼, 톱 등의 남근적 도구의 등장, 남성적 여성의 제거 등의 몇 가지 클리셰는 슬래셔 무비의 특징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나이트메어>의 감독 웨스 크레이븐Wes Craven은 “(<나이트메어>의) 프레디는 가장 잔인한 원초적 아버지 상이다. 다음 세대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기성세대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어머님은 짜장면이, 웨감독은 요즘 애들이 싫다고 하셨어...)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과 참전한 아버지 세대 간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되던 시기에,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지면서 이러한 슬래셔 무비의 출현은 페미니스트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죠. 이후 1997년 <스크림Scream>으로 돌아온 웨스 크레이븐은 반성인지 리뉴얼인지 모를 애매함으로 영화 속에서 이전 슬래셔 무비의 클리셰들을 직접 나열해 유머 코드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때 다시 불어닥친 슬래셔 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해변으로 가다>(2000), <스승의 은혜>(2006)와 같은 한국식 슬래셔가 반짝 나타나기도 했죠. 이때부터는 기존의 키워드들이 사라지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피 튀기는 영화’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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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臟器) 자랑의 향연, 스플래터Splat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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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아이템 전기톱, 수술용 메스, 잔디 깎는 기계 등 살짝 하드한 단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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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셔에서 써는 정도를 촘촘하게 조절하면 이제 스플래터(splatter)로 진입합니다. 이는 피와 흐드러진 살점들이 난무하는 영화, 즉, 스크린을 피로 흥건하게 물들이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슬래셔가 베고 자르는 수준이라면 스플래터는 다지는 수준이랄까요. 하지만 무서운 느낌보다는 다소 역겨운 씬들 속에서 코믹스런 요소들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갈가리 찢어 죽이거나 내장을 꺼내는 등, 극도로 잔인한 비주얼을 보여주면서도 심각하지 않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코미디의 감각을 잃지 않아 웃으면서 볼 수 있지요.(벌써 재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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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 데드The Evil Dead>(1989)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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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스플래터의 효시는 샘 레이미Sam Raimi의 <이블 데드The Evil Dead>(1989)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무덤에서 손이 튀어나와 희생자의 다리를 긁어 뼈가 드러난다던가, 좀비의 눈알이 튀어 나가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목구멍으로 쏙 빠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랍니다.
특히 좀비가 나오는 코믹한 스플래터 무비를 슬랩스틱 스플래터 영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런 스플래터의 경향은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헬 레이저Hell Raiser> 시리즈)와 같은 심각한 유럽 출신의 호러 작가에겐 찾을 수 없는 미국만의 특성이 녹아있죠. 경쾌하고 발랄하며 가벼운 미국식 키치 문화가 호러와 결합되어 탄생한 특이한 변종 스플래터 영화는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 시리즈를 만든 피터 잭슨Peter Jackson의 초기작 <데드 얼라이브Dead Alive>(1992)가 가장 대표적인데요, 극도의 잔인함이 계속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묘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답니다.(-ㅠ-)(츄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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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얼라이브Dead Alive>(1992) / 사진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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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를 못 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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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포영화는 여름 특수, 한 철 장사라는 오명을 쓰고 평가절하되기 일쑤였습니다. 우리가 그저 ‘얼마나 무서운지 어디 한번 볼까’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호러영화에서 사다코는 미디어가 가진 파급력과 불특정다수를 향한 타자의 분노를 투영했으며, 뱀파이어(흡혈귀)는 AIDS의 공포와 전염병의 공포를, 좀비는 바이러스의 확산과 집단 이기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레디를 위시한 슬래셔 영화의 연쇄 살인마들은 젊은 세대를 응징하고자 하는 기성세대를 이야기했(으며 동시에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강렬한 비난과 비판을 받았)고,
스플래터 영화 속 우스꽝스러운 주인공들은 권위적이고 경직된 사회를 조롱하며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사실을 공포라는 장치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조금 더 달리 보이는 호러라는 장르에 대한 여러분의 거부감이 조금은 사라지길 바라마지않으며 외쳐봅니다. 단언컨대, 호러영화는 사랑입니다.(레드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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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난번 <팬데믹과 아포칼립스> 글에 실린 사진들이 너무 아름다워(!) 차마 눈이 부셔 볼 수 없었다(!!)는 칭찬(...)을 개인적으로 전해주신 몇 분이 계셔서 이번에는 조금 덜 아름다운 사진들로 엄선해 보았습니다.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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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호러영화 #슬래셔 #스플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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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 장국영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겠다 마음먹고 왕가위 감독이 좋아 영화를 공부하고 아이돌 덕질을 하다 팬덤과 문화콘텐츠에도 관심이 생긴, 학업과 연구가 모두 덕질과 궤를 함께 하는 중.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계란이 바위를 깰 순 없어도 최소한 더럽힐 순 있다’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호러 장르에 열광하고 로맨스 장르에 알러지가 있으며 다양한 영역의 덕질이 일상인, ‘호러의 어머니’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하고 있으나 실상 옆집 아줌마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정 많고 까칠한, 여린 심성을 가졌지만 살벌한 말빨도 동시에 가진 아이러니한 생명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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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악씨레터를 보며 슬래셔slasher와 스플래터splatter 이 두 단어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오늘의 공포는 그동안의 공포보다도 난이도가 훨씬 더 높은 것 같아요. 제목만 들어도 오싹해지는 영화들... (왜 다들 포스터 속에서 뭔가를 들고 있는 걸까요😭) 이 중에서 저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가 정말 무서웠어요.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가장 무섭게 보셨나요? 궁금궁금!!
극도의 잔인함이 계속해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피터 잭슨의 초기작인 <데드 얼라이브>, 그 경험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처음 봤을 때의 그 강렬한 느낌과 비슷할지 비교해 봐야겠습니다.
무서워하면서도 자꾸만 보게 되는 공포영화, 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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