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만 남은 좀비 VS 정신만 남은 영적 존재
영적 존재가 인간의 길흉화복에 관여한다는 믿음으로 제와 굿과 같은 의식을 행하는 샤머니즘은 동양의 전통적인 문화예요. 한국의 선교, 일본의 신교와 같은 토착신앙은 인간 주변에 영적 존재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때문에 한국의 콘텐츠도 그동안 죽음 이후에 육체만이 남은 좀비보다는 신체가 소멸된 후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영혼, 즉, 정신적인 것에 주목해 왔어요.
좀비가 인간의 이성과 정신이 소멸되고 육체만이 남은 존재라면 귀신은 육체가 소멸되고 정신만이 남은 존재로 이 둘은 매우 대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콘텐츠에서 좀비의 특성을 가진 괴생명체의 등장이라니... 놀라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과학 기술 VS 인간의 욕망
미국과 한국의 아포칼립스 장르는 인류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답니다. 할리우드는 우주, 바이러스, 환경오염 등 과학기술에서 한국은 인간에게서 그 원인을 찾고 있어요. 괴생명체 또한 비슷한 외향과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발생 원인은 다르게 묘사 돼요. <나는 전설이다>와 <워킹 데드>의 좀비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지만 <킹덤>의 좀비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에요. <에어리언>의 괴물은 우주에서 건너왔지만 <스위트 홈>의 괴물은 인간의 욕망에서 발현되는 것이랍니다.
예로부터 동양은 정신적인 것을 중요하게 인식해 왔어요. 동양의 전통 종교 중 하나인 불교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탐욕이나 분노 등 마음의 번뇌를 다스리는 정신수양을 통해 열반(涅槃)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바라봐요. 유교 또한 인(仁)과 예(禮) 등 인간다움을 위한 정신수양을 강조해요.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콘텐츠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에요.
인간의 욕망과 파멸
인간의 욕망은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등장해 왔어요. 영생을 꿈꿨던 진시황이나 현세의 부와 권력이 사후세계까지 영원하길 바랐던 파라오 등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혔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죠. 영생, 부와 권력 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미이라>, <인디아나 존스> 등은 세계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왔어요. 최근 K콘텐츠 또한 인간의 욕망을 통해 세계 수용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욕망하는 인간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욕망이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요. 욕망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랑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며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갈망하게 돼요. 매슬로우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이러한 욕망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고 삶을 지배하는 중심이라고 주장해요.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욕망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것이에요. 이것이 인간의 욕망을 다룬 콘텐츠가 시공간을 넘어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이유랍니다.
괴물은 누구인가?
얼마 전 <스위트 홈> 시즌 2가 오픈 됐어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 내재되어 있던 욕망의 모습을 반영한 괴물이 되고, 이들에 의해 인간 사회가 파괴되는 모습을 그린 시즌 1과 달리 시즌 2에서는 괴물의 등장으로 겁에 질린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인류의 모습을 묘사해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인공은 자신보다 타인을 구하고자 하지만, 괴물의 등장으로 겁에 질린 권력자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거리낌없이 학살을 자행해요. <스위트 홈>에서 바이러스는 매개체일 뿐, 인간을 괴물로 변이시키는 것은 내재되어 있는 욕망이에요. <킹덤>, <스위트 홈> 등 한국 아포칼립스 콘텐츠는 인류의 위기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는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