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는 무협소설을 소재로 발달하여 자국 내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북경이 중국영화의 탄생지였지만 남경을 거쳐 1920년대 상해에서 중흥기를 맞는다. 1928년부터 만들어진 <화소홍련사> 시리즈의 성공은 <대파구룡산>, <화소구룡산> 등의 아류작을 만들어냈다. 한국인 정기탁 배우가 <구룡산>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 중국무협영화의 전통은 싱가포르를 거쳐 홍콩 쇼브라더스가 이어가며 홍콩영화의 대세가 된다.
당시 중국영화는 죽의 장막에 가려져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문화대혁명 등의 암흑기를 거치며 영화는 선전도구로 전락하였고 그만큼 퇴보한 듯한 흐름을 보여주던 시기이다. 1976년 모택동의 사망 이후 다시 개교한 북경전영학원(베이징영화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부활한다.
1982년, 북경전영학원에서 제5세대 영화인들이 배출되며 그들은 진정한 영화정신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제작하며 중국영화의 중흥을 꿈꾼다. 그들은 죽의 장막에 가려졌던 중국영화의 존재감을 서구영화계에 보여주며 각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영화가 각광 받았던 것은 그동안 가리워진 중국영화에 대한 신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영화가 확실히 보여주는 색채감 및 소재의 특이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꼭 대규모 자본에 의한 부산물이 아닌 열정과 영화혼으로 잘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붉은 수수밭> 수상 당시 한국영화도 1989년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바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다. 충무로 제도권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비충무로 영화로 배 감독 자신에 의한 완벽한 1인 영화이다. 이 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자 충무로 영화인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영화는 시스템에 의해 제작되지만, 꼭 도제 시스템이나 대예산의 부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중국영화가 꼭 이러한 느낌이었다. 숨겨져 있던 진가개 감독의 <황토지>, <대열병>, 전장장 감독의 <말도둑>, 황건신 감독의 <흑포사건> 등 주옥같은 영화들이 세계영화제를 통해 속속 소개되었다. 가장가, 왕소사 등 6세대 감독은 지하영화로 일컬어지는 독립영화를 제작하며 표현의 자유를 갈구했다. 중국영화의 신비감은 십수 년을 갔는데 이후의 영화들은 제국주의적인 도취에 빠져버렸다. 소재의 한계에 이른 양 중국 제일 의식의 영화가 양산되며 한국 관객들에게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특히 장예모의 탈작가주의적 행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국두>,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지만 <영웅> 등으로 시작된 제국주의 편향의 영화들은 궤도를 이탈하여 비틀거리다가 관제 행사 감독으로 영화인생을 마감한 듯하다. 그 외 감독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특히 2021년에 개봉되어 중국 흥행기록을 경신한 <장진호> 같은 영화가 진가개 감독과 홍콩의 서극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놀랄 일이다.
이러한 영화가 한국에서도 개봉하니 그들의 배짱에 놀랄 뿐이다. 그들의 무분별한 상업논리에 편승한 수입업자도 문제이다. 역사 왜곡과 자국 중심의 시각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타국 관객들의 관심을 받을 리 없다. 이렇게 중국영화는 한국 관객들과 멀어지며 이즈음은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