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생경했던 기차 풍경
지난 일요일, 광화문 근처에서 열린 작은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강릉행 기차를 탔습니다. 일요일 밤 강릉으로 향하는 기차는 평소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가 많이 타는 편입니다. 주말을 맞아 서울의 집을 찾았다가, 강원도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들이죠.
그런데 그날 기차에는 손에 큼지막한 쇼핑백을 든 20대 남성들이 평소보다 많이 보였습니다. 그들 손에 들린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니, 게임과 관련된 쇼핑백인 것 같았습니다. 그제야 낮에 광화문 광장에서 봤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꽤 큰 규모의 게임 관련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고, 세종대왕 동상 옆에는 귀여운 고양이 인형이 설치되어 있었거든요.(그 고양이 인형은 알고 보니 롤에 등장하는 캐릭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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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월즈 팬 페스트 현장 / 사진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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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e스포츠 축제
스마트폰을 꺼내 뉴스를 살펴보고 나서야, 저녁에 ‘월즈’, 또는 ‘롤드컵’이라고 부르는 ‘리그 오브 레전드 2023 월드 챔피언십’의 결승전이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렸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페이커가 속한 프로게임단 T1이 7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도요. 롤이 무슨 종류의 게임인지도 모를 만큼의 ‘겜알못’인 저도, 페이커가 그 롤이라는 게임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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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T1 / 사진 출처: 게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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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검색을 해보니, 제가 광화문에서 봤던 그 행사의 명칭은 ‘월즈 팬 페스트’였더군요.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주간을 맞아 롤의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광화문 광장 일대를 e스포츠 축제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나흘 동안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디지털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다양한 이벤트와 유명 아이돌들의 공연, 대형 캐릭터 인형 설치 등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춘 e스포츠 축제였다고 합니다. 서울시가 e스포츠 행사에 광화문 광장을 사용하도록 허가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해요. 이번 ‘월즈’ 결승전을 전 세계에서 온라인으로 약 4억 명이 시청했다고 하니, e스포츠의 위상이 정말 대단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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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문화산업의 핵심 콘텐츠로
여전히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존재하지만, 게임은 이제 ‘중독’이 따라붙었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문화산업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았습니다. 게임이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e스포츠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네요. 2001년 ‘한국 e스포츠협회’가 창립되고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활성화되면서, e스포츠는 대중 스포츠로서 인기를 얻게 되었죠. 그 인기는 스타크래프트의 자리를 리그 오브 레전드가 이어받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서, 다양한 연령층에게 e스포츠와 게임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되었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추억의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V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김관우 선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하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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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유퀴즈에 출연하여 화제가 된 e스포츠 선수 김관우
사진 출처: tv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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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줄여서 ‘중꺾마’라고도 하는데, 작년 말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 유행어입니다. 이 말은 작년 롤드컵에 참가한 프로게임단 DRX 소속 김혁규(Deft) 선수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의 제목에서 유래했습니다. DRX가 이 유행어에 걸맞은 역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며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담고 있는 이 문장이 화제가 된 것이죠. 스포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심지어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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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2022년 월드컵에도 등장한 '중꺽마' / 사진 출처: KFA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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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게임은 특정 연령대의 남성만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라 여성과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문화콘텐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게임에 대한 다양하고 참신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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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 강원도 원주 거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에서 강의하며 중화권 장르문학 및 문화를 공부하고 있어요. 1930-40년대 중국의 탐정소설로 박사논문을 썼고, 최근에는 타이완과 홍콩, 중국 대륙의 추리소설과 범죄 드라마 등 미스터리 서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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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주에 금요일은 부산에, 일요일은 서울 광화문에 있었는데요. 부산역에서는 '지스타 2023'에, 광화문에서는 '월즈 팬 페스트'에 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연이었지만, 게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최근 기회가 있어서 게임콘텐츠 포럼에 다녀왔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인 '머시나리움' 같은 게임을 인디게임이라고 부르고, 단지 재미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게임을 '시리어스게임'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겜알못'에게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저는 게임에 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끼고 있는 이 색안경은 도대체 몇 개나 되는 걸까요...🕶️ 악씨레터가 색안경을 벗어버리는데 하나의 작은 창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주 수요일 오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번주 공포영화 투표는 참여가 저조해서 결과는 저만 알고 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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