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죽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
|
한국의 공포영화 하면 대표적으로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여고괴담>, <장화, 홍련> 혹은 <곤지암>...?
공포영화에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귀신이나 악마가 나오는 오컬트부터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범죄나 심리를 다루는 스릴러 등의 다양한 하부 장르가 존재하죠. |
|
|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는 한(恨)
우리나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여자 귀신은 한(恨)이 서린 존재, 원혼(冤魂)이라고 표현합니다. 한(恨)은 우리나라 고유의 개념으로, 정신 의학과에서는 한을 화병의 증상 중 하나라고 설명하는데요. 한과 관련된 감정 반응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후회나 슬픔, 허무, 탄식과 같은 체념이거나 타인을 향한 증오나 저주, 복수 등으로 나타난다고 하죠. |
|
|
<전설의 고향>(2007)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
|
|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성행했던 한국형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모두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사회에서 희생된 여인들이었죠. 사대부 남자에게 버림받고 살해당한 여인(<월하의 공동묘지>), 시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한 며느리(<여곡성>)... 이들은 모두 복수를 위해 이승을 떠도는 ‘한’ 많은 존재입니다. |
|
|
악녀의 아이콘, 메두사(medusa)
여자 귀신의 기원을 찾아보면 그 궁극에는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medusa)가 있습니다. 사악한 여성의 대명사인 메두사의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리따운 여인이었던 그녀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해 괴물이 된 후 페르세우스에 의해 머리가 잘리게 되었다는 내용이죠. 한마디로 그녀가 한 잘못이라고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는 것뿐입니다. 예쁜 게 죄라면 죄. 그렇다면 나는 평생 무죄. |
|
|
The Head of Medusa, Peter Paul Lubens(1617~161),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
|
|
그러니,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쌓인 한(恨)과 눈이 마주치면 돌로 변해버리는 저주까지 공포의 요소를 고루 가지고 있는 메두사는, 모든 여자 귀신의 모태라고 할 수 있죠. |
|
|
교복을 입은 여귀, <여고괴담>
꽤 오랜 기간 긴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소복을 입고 등장했던 여귀(女鬼)는 21세기를 맞이해 교복을 차려입고 우리 앞에 등장합니다. <여고괴담>은 학교라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성추행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죠. <여고괴담> 시리즈 속 원귀가 된 여고생은 우리 일상 속의 다양한 피해자입니다.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재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다양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혐오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원혼들이죠. |
|
|
<여고괴담>(1998)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
|
|
그런 점에서 <여고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고생 귀신들은 한국 전통적 여귀의 현대 버전이라 할 수 있겠네요. 기존의 지아비와 시댁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전통 사회에서 선생님과 다수의 폭력성으로 가득 찬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학교라는 공간으로 그 무대를 옮겨온 거죠. 한마디로 여귀의 존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에 맞는 옷을 입고 지속적으로 소환되고 있는 셈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위압적인 폭력은 끊이지 않으니까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1960~70년대에 성행했던 한국 공포영화의 주 관객층이 중년여성들이었다고 해요. 영화 속 여자 귀신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시원하게 해치우는 복수극에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던 거죠. 사실상 우리의 어머니(혹은 할머니) 세대에게 처녀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오히려 히어로 영화였을지도요. |
|
|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자
불특정다수를 향한 무차별적 살인과 끝나지 않는 저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링>이나, 종교적 힘을 통해 절대 악인 악마나 사탄을 물리치는 할리우드 공포영화에 비해 우리나라 공포영화는 귀신들이 가진 억울한 개인사를 통해 그들을 무섭지만 불쌍하고도 안타까운 존재로 인식한다는 독특한 차별성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요즘 나오는 뉴스를 보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억울한 죽음이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마다 학교 복도를 배회하는 존재는,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친구를 기다리던 여고생 진주가 아니라 지독한 갑질과 민원에 시달리던 선생님들일지 모르니 말입니다. |
|
|
KEY WORDS #공포영화 #여귀(女鬼) #한(恨) #여고괴담
|
|
|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책임연구원. 장국영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겠다 마음먹고 왕가위 감독이 좋아 영화를 공부하고 아이돌 덕질을 하다 팬덤과 문화콘텐츠에도 관심이 생긴, 학업과 연구가 모두 덕질과 궤를 함께 하는 중.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계란이 바위를 깰 순 없어도 최소한 더럽힐 순 있다’로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호러 장르에 열광하고 로맨스 장르에 알러지가 있으며 다양한 영역의 덕질이 일상인, ‘호러의 어머니’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하고 있으나 실상 옆집 아줌마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정 많고 까칠한, 여린 심성을 가졌지만 살벌한 말빨도 동시에 가진 아이러니한 생명체. |
|
|
오늘의 악씨레터 이한치한, 추운데 더 춥게 공포영화 한 편! |
|
|
저도 공포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요. 오늘의 악씨레터에서 대표적 공포영화로 꼽아주신 <장화, 홍련>, 그리고 <알포인트>를 가장 무섭게 보았습니다. 오늘의 글에서 설명해 주신 것처럼 단지 무섭기만 했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무서웠다'는 감정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그 영화 속에 묻어있던 그들의 아픔과 한, 그 여운으로 인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한국 공포영화 1위는 무엇인가요?😱 피드백에 남겨주세요!! 집계해서 다음주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