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No.15 II 2026.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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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소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작가의 실제 삶을 기초로 소설 속 화자나 주인공의 행적을 서술한 소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전적 소설을 읽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소설 속 화자나 주인공의 행적이 작가 자신의 삶과 얼마나 일치할까? 어떤 것이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이고, 어떤 것이 허구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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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 ⓒ나무위키
이 글은 중국 출신의 프랑스 망명 작가 가오싱젠(高行健, 1940- )의 소설 『한 사람의 성경(一個人的聖經)』을 통해, 위의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하려 합니다. 가오싱젠은 지난 2000년, 중국계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그는 중국 문단에서 주목받는 극작가이자 문학이론가였지만,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후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자유를 선택한 저항적 문학가로 서방 세계에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는 조국을 배반한 반정부 작가로 비난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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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설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신령한 산(靈山)』과 『한 사람의 성경』은 그의 창작 세계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소설입니다. 특히 두 작품은 모두 ‘자전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과거 전체주의 체제의 중국에서 한 나약한 지식인이 느꼈을 고통과 번민을 짐작케 해줍니다. 그는 일체의 ‘주의(-ism)’에서 벗어나 자신을 차가운 골방에 고립시킬 때라야 비로소 ‘순수한’ 문학을 길어 올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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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의 성경』은 철저한 ‘개인적’ 글쓰기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는 2인칭 ‘그대’와 3인칭 ‘그’가 번갈아가며 등장합니다. 화자는 대체로 현재의 자신은 ‘그대’로, 과거의 자신은 ‘그’로 지칭합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에서 작가 자신을 대변하는 주인공 은 세 가지(즉 ‘화자’, 2인칭 ‘그대’, 3인칭 ‘그’) 양상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2인칭 ‘그대’는 고국을 떠나 망명 중인 인물로, 화자와는 심리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자신입니다. 작품 속 ‘그대’는 일체의 구속과 인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약간은 변태적인 성향을 지닌 남성입니다. 반면 ‘그’는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 억압과 폭력을 경험한 인물로, 화자와는 심리적으로 먼 거리에 존재합니다. 지식인 가정에서 나고 자라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지닌 ‘그’는 가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 어머니를 잃고 아내로부터 배신을 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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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은 문화대혁명의 경험으로부터 ‘도망자의 윤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에게 ‘도망’은 나약한 지식인의 비겁하고 저열한 행위가 아닙니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개인은 ‘도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작품 이름에 새겨진 ‘성경’은 특별한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의 ‘성물(聖物)’이 아니라 오직 ‘나’ 한 사람에게만 의미와 가치를 지닌 평범한 사물일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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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오싱젠의 아내 왕쉐윈(王学昀)과 관계된 이야기입니다.
왕쉐윈은 가오싱젠의 고교 동창이었습니다. 왕쉐윈의 말에 의하면, 그녀에게 먼저 호감을 나타낸 것은 가오싱젠이었습니다. 가오싱젠은 베이징에서, 왕쉐윈은 난징에서 각각 대학 생활을 했지만,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마음과 생각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7년 두 사람은 마침내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문제는 이후의 결혼생활에 관해 가오싱젠의 작품 속 내용과 왕쉐윈의 기억 사이에 편차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속에서 화자는 아내의 고발이 두려워 땅속에 묻어둔 자신의 작품을 소각합니다. 그러나 왕쉐윈은 그녀와 그녀의 오빠가 지니고 있던 ‘반동 서적’들을 소각하도록 강요한 것은 오히려 가오싱젠이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는 ‘반동’으로 몰린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출세에 방해가 될까 봐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고 말합니다. 문화대혁명 이후 베이징 문단에서 활동하던 가오싱젠은 외도 중에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고 합니다.
왕쉐윈의 주장은 사실일까요? 그녀는 오랫동안 중국 남방의 명문대학인 난징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가오싱젠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홀로 길렀습니다. 그런 왕쉐윈이 가오싱젠과 헤어진 지 3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일부러 가오싱젠을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을 지어낼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가오싱젠과 왕쉐윈 두 사람 모두와 가까웠던 지인들도 왕쉐윈의 증언에 힘을 실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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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롄징 출판사에서 출간한 『한 사람의 성경』ⓒ博客來
그렇다면 가오싱젠은 거짓말쟁이일까요? 가오싱젠은 『한 사람의 성경』에서 화자의 말을 빌려,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자유를 누리고 홀로 즐기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문학은 투쟁의 도구도 아니고 사회적, 윤리적 사명감의 발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진실성’이라는 가치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는 같은 소설에서 “문학이란 확실히 거짓말이다.” “그대도 마찬가지로 문학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문학이란 인간 내면에 도사리는 동물적 본능에 커튼을 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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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그가 문학을 통해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진실이든 거짓이든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반대로 ‘진실성’이 문학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족쇄나 걸림돌이 된다면 왜곡하거나 폐기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위와 같은 서사 장치와 고백은 심오한 진실성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문학 창작을 통해 진실을 감추는 이와, 그러한 창작이 갖고 있는 허위성을 노출하는 이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존재론적 위상 면에서 보자면, 후자가 전자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후자는 전자의 창작 행위를 위에서 지켜보며 그것을 규정하고 평가하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오싱젠이 소중하게 여기는 창작의 ‘자유’는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무언가를 폭로하거나 감추는 자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자유는 문학이라는 행위가 내포하는 끔찍한 패러독스마저도 창작의 소재로 삼을 정도로 진솔하고 대담한 자유입니다. 이로써 가오싱젠과 왕쉐윈 사이의 진위 공방은 무의미해지고, 그는 예술로써 파렴치하고 무책임하게 보일 개인사의 오점을 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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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 한 사람의 성경, 문화대혁명, 왕쉐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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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호
상지대학교 중국학과와 자유전공학부를 거쳐 현재는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소설, 문학 논쟁, 정치사상을 주로 연구하였고, 최근에는 중국 SF 창작에 관심을 두고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국의 인도주의 담론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대안적 사회 비판 사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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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로 덥고 습하다가도,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한 줄기 바람에 기분이 좋아지는 여름의 한가운데에 와 있습니다. 이 여름, 구독자님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영화 〈호프〉도 보고, 뮤지컬 〈베토벤〉은 벌써 네 번째 보았습니다. 음악가로서 가장 소중한 청력을 잃어가는 자신과 마주하는 베토벤을 보며 매번 오열하고..😭 그렇게 이 뜨거운 여름을 즐겁게 나고 있답니다. 뭔가에 푹 빠져 집중하다 보면 더위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악씨레터에 소개된 가오싱젠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뮤지컬 〈베토벤〉이 그렇듯,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제가 찾고 싶은 건 그 구별 너머, 저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감동과 진실입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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