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윤리와 동물복지,
인간의 문화인가? 당면 과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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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체는 저마다 살 권리가 있습니다. 보통 육식동물도 먹기 위해서만 살생을 합니다. 간혹 그렇지 않은 육식동물이 발견되는 경우 인간과 비교되면서 종종 지탄을 받곤 합니다. 그래서 잡식동물인 인간이 영양분을 섭취하고 생존하기 위해 생물 개체(동물이든 식물이든)를 죽이는 것도 비윤리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식물을 죽여서 먹는 것 역시 개체의 생명을 없앤다는 점에서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생명체의 지능 문제와 관련된 반론 제기가 물론 가능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이 고등 지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인간은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들 및 세상 존재자들에게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할 힘을 지녔다고 말해지곤 합니다. 전통적인 인간우월주의나, 이를 반대하는 현대 신유물론의 인간론조차도 이와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지하듯 인간은 같은 인간이나 자신의 가족만이 아닌 다른 생물들의 존망과 보호까지도 기꺼이 책임지려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럴 수 있는 지구상의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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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의 논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동물권의 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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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바로 이런 존재이기에 다른 동물들을 먹이용, 애완용, 관상용, 나아가 반려용으로서 대우할 수 있는 논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연주의적인 ‘힘의 논리(logic of power)’가 있습니다. 힘이 세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논리가 배경에서 작동해 왔다는 것입니다. 과거 인간에게 노예제가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본래부터 자연주의 상태에서의 이 세상은 정글의 법칙이 얼마든지 통용될 수 있었던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주의적이고, 동물적인 힘의 논리를 인간은 그 스스로 동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냥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요?
지구상 생명체 중 가장 지능이 높다고 하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이렇게 다룰 수 있는 지위를 정말로 지니고 있을는지요? 인간의 이런 생각을 윤리적, 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요? 일찍이 동물권(animal right) 옹호론자인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인간이 이런 자연적인 태도로만 살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동물에게도 기본적으로 개체의 존엄성이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사해 평등 및 인간 존중의 사상을 동물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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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서 자연 생태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생태주의 환경론이나 동물복지론 등도 생각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천부인권사상이 퍼진 이후, 인간은 인간 각자 모두를 존엄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정글의 법칙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다른 동물들을 힘으로만 찍어 눌러서는 안 된다는, 곧 존엄성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도 중요해졌습니다. 이를 환경윤리의 논리로 치환하자면, 고등 지능을 가진 인간들은 자신을 지구상 생명체의 한 종으로, 곧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간은 모든 종의 생존과 번영 및 생태적 균형이 보존되게 하는 데 깊은 관심을 둘 수 있습니다.
이 견지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개념으로 인해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호칭해야 한다는 주장도 정착되었습니다. 특히 21세기에는 수많은 동물이 인간의 반려동물로 사육되고 있는 중입니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 금붕어, 풍뎅이, 뱀, 전갈, 소라게, 햄스터 등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천차만별입니다. 더욱이 최근 반려동물 개념에는 인간의 ‘놀이적 혹은 관상적 사육’이라는 사고방식보다 진정한 ‘친구와 가족’이라는 사고방식이 더 많이 들어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반려동물 집사들은 집, 먹이, 놀잇거리, 같은 종 동료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사육이나 동물복지 개념에 문화 및 문화콘텐츠적 시각이 들어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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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말 동물복지와 환경윤리를 중요시 생각해야 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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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및 PC 개념이 대중에게 유포되고 인지되기 시작하면서 현대적인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동물권은 천부인권사상이 유포되기 시작했던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와 궤를 같이합니다. 이미 이때 존 로크, 이마누엘 칸트, 제레미 벤담 등과 같은 지식인들은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언급했었습니다. 이 견지에서 많은 동물권, 동물복지론자들은 인간이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합니다. 지능이 없는 식물, 땅에 떨어진 열매만을 먹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채식주의, 비건(꿀, 유제품, 계란 섭취도 거부하는 채식주의), 프루테리언(떨어진 열매만을 먹는 사람)의 문화입니다.
하지만 환경윤리의 논리가 아무리 강해진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 반려동물의 사육을 전면 금지하는 것 등은 불가능합니다. 개나 고양이 등 일부 동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에 의해 사육되어 왔습니다. 결국 인간 문화의 한 국면이자 충돌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든 인간 역시 생태의 한 부분임을 스스로 절실히 자각하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시되어야 합니다. ‘함께 더불어 살기’라는 개념, ‘생태시민성’이라는 개념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동물권이나 동물복지 개념은 서구의 전유물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양의 오래된 전통 사상들에서 생명 존중 개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1세기 현재, 자연과 동물은 기후 및 바이러스 등으로 자연의 일원인 인간 사회에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환경윤리나 동물복지 개념 등을 현대의 문화라고 간단히 치부해서는 안 될 상황이 이미 도래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계속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며 동물들을 복지와 무관하게 대우한다면, 결국 그 대가를 인간이 고스란히 되돌려 받게 되리라는 점은 이제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반려동물 문화나 환경콘텐츠 등을 생각하면서 자연과 동물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더욱더 일상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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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윤리, 동물복지, 반려동물, 환경콘텐츠, 자연, 기후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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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수
한국외대 철학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사회철학과 문화콘텐츠학을 함께 공부한 문화학자입니다. 사회·문화이론을 전공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글로컬 혼종문화 정체성, 문화콘텐츠의 공공성 및 윤리 문제, 대중문화와 철학, 시각문화, 과학기술문화, 기독교 콘텐츠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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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달걀 좋아하시나요?🍳 저는 달걀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단백질 섭취와 포만감(천연 위고비라면서요😆)을 위해 챙겨 먹으려 하고 있어요. 제가 자주 구매하는 달걀은 ‘자유방목 동물복지 유정란’으로, 난각번호 1번 달걀이에요. 난각번호 1번은 닭들이 야외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자유방목 방식으로 생산된 달걀을 뜻해요. 반대로 난각번호 4번은 케이지 사육 방식인데, 이 경우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A4용지 한 장보다도 좁다고 해요.
그런데 달걀을 사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나는 정말 닭의 동물권 때문에 난각번호 1번을 고르는 걸까, 아니면 좋은 사육환경에서 생활한 닭이 낳은 달걀이 내 몸에도 더 좋을 것 같아서 고르는 걸까?’라는 것이죠. 솔직히 두 번째 이유가 더 큰 것 같아요. 이런 제 모습이 너무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건 아닐까 싶다가도 나를 위한 선택이 닭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조금은 덜 자책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이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먹고 쓰고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환경과 자연, 그리고 다른 생명들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늘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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