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영화의 한국 개봉은 반세기를 넘어섰다. 1967년 호금전 감독의 <방랑의 결투>부터이다. 무협영화의 정수를 보여주며 현란한 색감부터 이색적인 소재, 정패패, 악화, 진홍열 등의 새로운 배우들... 무엇 하나 뺄 수 없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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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극장을 대관, 홍콩영화 세미나를 시작/2010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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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당시 흑백영화였던 한국영화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컬러는 물론이고 일본의 스태프들이 참여하여 일본영화 못지않은 완성도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제작사인 홍콩 쇼브라더스는 현상도 일본의 현상소를 이용하며 선진영화사로 도약했다.
당시는 일본영화가 수입되지 않았던 때이다. 일본영화의 최전성기는 1960년대로 홍콩영화는 자신의 영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일본의 영화인력을 영입하고 어느 정도 일본영화 수준의 단계에 접근했다. 동남아로 이주한 화교들은 물론이고 동북아 화교들에게도 홍콩영화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주는 영화였다.
한국관객은 홍콩영화를 통해 일본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대리만족했다. 출연진도 동양인으로 별다르지 않았고 보여주는 액션도 일제강점기를 겪은 관객들에게는 일본영화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끔 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은 세대들조차도 그것은 이색적이며 뛰어난 활극이었다. 흥행이 안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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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왕우, 초교 주연의 장철 감독의 <외팔이> 시리즈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했던 정통무협이었다. 무협소설을 통해 갖고 있었던 환상적인 장르를 목격하며 느끼는 경외감이었다. 무협영화의 톱스타인 왕우의 영화는 계속 개봉되었는데 관객들은 한 편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만큼 매력적인 영화들이었다.
나열 주연의 <철수무정>도 뺄 수 없다. 그리고 나온 영화가 장철 감독의 <복수>이다. 강대위, 적룡 콤비는 눈을 뗄 수 없는 매력덩어리 캐릭터였다. 이후 <권격>, <13인의 무사> 등 무협걸작이 쏟아졌다. 곡봉, 진성, 왕광유, 우마 등이 빛나는 조연을 맡았다. 홍콩영화는 한국영화나 기타 타국의 영화들과는 달랐고 친근감마저도 있었다.
<대폭군(관세음)>, <여마적>의 이려화(릴리화)는 당대 홍콩영화의 여걸이다. 그 외 이청 주연의 <스잔나>, <화월 춘야> 등의 멜로영화가 한국 관객을 강타했다. 그리고 하리리, 호연니, 초교, 탄니, 티엔니(념니), 금비, 왕평, 이려려가 여러 영화에 등장하며 관객을 설레게 했다. 한국영화, 서구영화 모두 상대가 되질 못했던 시절이다. 이른바 한국에서의 홍콩 뉴시네마 시대이다.
당시 미국영화는 뉴아메리칸 시네마가 선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영화 시대를 개막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새로움을 선물한 것이 바로 홍콩영화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로서는 어느 나라, 어떤 장르던 좋아했겠지만 할리우드영화 다음으로 홍콩영화는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같은 동양권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화 세계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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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73년 7월 27일, 진짜가 나타났다. 이소룡의 영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람들은 뉴 스타, 뉴 액션에 열광했고 그 영향인 ‘이소룡 문화현상’은 적어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소룡, 한영걸, 전준, 석견, 묘가수, 의의의 등장 이후 홍금보, 성룡, 원표, 담도량 등 무술배우의 향연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총으로 중무장한 이수현,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양조위, 주성치가 등장한다. 유가량, 이연걸, 견자단, 진국곤이 등장하여 홍콩 무술영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의 파트너로 모영, 양자경, 관지림, 장만옥, 왕조현, 임청하, 종초홍 등의 여배우가 보석같이 빛났다. 이렇듯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영화와 배우들이 즐비한 홍콩영화계이다.
나는 2005년 무협영화의 레전드인 왕우를 시작으로 2007년에는 강도, 곡봉, 나망, 양가인, 유가휘, 적룡 등 7인과 인터뷰를 했다. 그날의 기록을 담아낸 졸저들을 오늘도 뒤적이며 그날들을 회고한다. 비록 그 시절이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날의 추억조차 빛이 바래지는 않는다.
*안태근 필자의 글은 공정일보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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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다큐멘터리 <한국의 춤 살풀이> 제작, 연출 감독 데뷔. 같은 해 극영화 시나리오 <사방지>로 작가 데뷔. 중앙영화사 감독 활동 후 1990년 국방부 홍보관리소 제작의 <대한국인 안중근> 각본, 감독. 홍보영화 <귀항>, <철판을 수놓은 어머니>로 2년 연속 금관상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기획상 등을 수상. 5년간의 조감독 활동, 그리고 5년간의 시나리오 작가 및 감독 활동 후 1991년, EBS에 입사하여 <전통문화를 찾아서>, <다큐 이사람>, <역사속으로의 여행>, <풍수기행> 등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연출하였으며 2004년 광복절 특집 3부작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2007년 한중수교 15주년 특집 5부작 <청사초롱과 홍등> 등을 제작하였다. 저서로는 『청사초롱과 홍등』, 『이소룡 평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돌아오지 못하는 안중근』, 『나는 PD다』시리즈, 『다큐멘터리』시리즈, 『한국영화 100년사』시리즈 등이 있다. 호남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서울디지털대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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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린시절은 온통,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와 수십 번도 더 돌려본 홍콩영화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홍콩영화 혹은 홍콩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구독자님들 많이 계시죠?
그러나 오늘의 악씨레터를 읽으니 각자의 기억 속 홍콩영화의 화양연화는 모두 다른 것 같습니다. 구독자님의 기억 속 가장 빛났던 홍콩영화는 무엇인가요? 악씨레터에 추천해주세요.🤩👍 이번 주에는 홍콩영화를 꼭 한 편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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