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No.11 II 2026.5.27. |
|
|
음식이 유행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2024년 숏폼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가파르게 부상한 카테고리는 맛집·음식이었어요. 맛집을 찾는 방식이 포털 검색에서 릴스로 이동했고, 음식을 발견하는 알고리즘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두바이 초콜릿이 단적인 예입니다. 맛이 퍼진 게 아니라 장면이 퍼졌습니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먹방 영상이 불을 지폈고, 그 불꽃이 틱톡을 타고 전 세계로 번졌어요. 한국에서는 두쫀쿠라는 변종까지 낳았습니다. 이제 음식은 경험이 아닌 스펙터클이 됐습니다. |
|
|
(좌)두바이 초콜릿 ⓒ우리의식탁 홈페이지 / (우)두쫀쿠 ⓒPalm Bites 홈페이지 |
|
|
같은 해, 정반대의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Z세대의 34.5%가 가장 트렌디한 콘텐츠로 꼽은 건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였어요. 화려한 비주얼이 아닌 요리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응시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요리가 다시 ‘서사’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긴 화면도 기꺼이 붙잡았어요. 두 현상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맛을 모르지만, 사람은 알아요. 음식 콘텐츠의 핵심은 결국 감정 연결이고, 감정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붙드는 것은 서사입니다. |
|
|
그렇다면 서사를 담은 우리 시대의 대표 음식은 무엇일까요. 단연 짜장면이에요. 졸업식 날 교복을 입은 채 온 가족이 함께 간 중국집, 이삿날 신문지를 깔고 둘러앉아 먹던 한 그릇, 낯선 도시에서 혼자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다 결국 시키게 되는 그것. 짜장면은 특별한 날의 음식이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은 날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생애의 어떤 마디마다 끼어들어 기억의 일부가 되어버린 음식. 이것이 짜장면이 가진 진짜 자산이에요. 비주얼이 아니라 기억이고, 유행이 아니라 생애입니다.
짜장면의 시작은 19세기 말 개항 이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둥 출신 화교들이 부두 노동자들에게 팔던 작장면(炸醬麵)이 원형이에요. 돼지고기와 춘장을 기름에 볶아 면에 얹은 값싸고 빠르고 배부른 이주민 노동자의 음식이었습니다. 이 음식은 1940년대 말 춘장에 캐러멜을 더해 달콤하게 볶아내는 조리법을 얻으며 처음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닿았어요. 음식이 이주하면 문화도 이주합니다. 짜장면은 이주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
|
|
(좌)짜장면 ⓒ컬리 / (우상)짜파게티 (우하)짜파구리 ⓒ농심 홈페이지 |
|
|
서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960~70년대 한국 정부는 외국인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중화요리 가격을 통제했어요. 화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일구어온 음식 문화를 제도로 밀어붙이며 흡수한 거예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시켜 먹는 짜장면 한 그릇에 누군가의 생계가 무너지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짜장면은 불편한 역사의 증인이에요.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2006년에는 김치·불고기와 나란히 ‘한국을 대표하는 100대 민족문화상징’에 이름을 올리며 공식 무대에서 자리를 굳혔어요. 그러는 사이에도 짜장면은 짜파게티가 됐고, 짜파구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짜파구리에 채끝살을 얹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세계 스크린 위에 올랐어요. 인천항 부두에서 시작된 이주노동자의 음식이 품어온 계급의 서사는 그렇게 뜻밖의 방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본래 한국 음식이 아니었던 짜장면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역설 앞에서, 정체성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임을 한 그릇으로 증명했어요. |
|
|
그 쌓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 박물관이에요. 이주와 정착, 변용과 수탈이 한 그릇의 면 속에 켜켜이 쌓인 이 공간은 그저 음식 전시관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K-콘텐츠로 한국식 짜장면을 먼저 접한 중화권 여행객들이 종종 이곳을 찾아요. 자국의 음식이 타국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변용되었는지를 확인하러 오는 것이리라 싶습니다. 박물관 안에서 중국어와 한국어가 뒤섞이는 풍경은 짜장면이 아직도 두 문화의 경계 어딘가에서 묘한 긴장을 품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증언해요. |
|
|
두바이 초콜릿은 이미지로 잠깐 반짝였지만, 짜장면은 이야기로 140여 년을 버텼습니다. 이주와 변용, 수탈과 대중화, 한국화와 세계화라는 서사를 한 그릇 안에 응축한 채로. 숏폼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서사의 무게는 역설적으로 더 커져요. 빠르게 소모되는 것들 사이에서 오래 남는 것들이 오히려 도드라지거든요. 짜장면은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짜장면의 다음 챕터가 궁금해집니다. |
|
|
알고리즘, 스펙터클, 서사, 음식콘텐츠, 짜장면 |
|
|
정 유 선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 고전과 현재, 경계와 교류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동양 고전의 현재적 가능성에 주목하여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고 쓰는 명저 다시 쓰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흐름 속에서 일상과 제도, 기억과 욕망이 쌓인 문화적 흔적들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저술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명대 오름교양교육연구소장과 한중인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 『종로미각』(공저), 『전통시기 중국의 안과 밖』(공역), 『사치의 제국』(공역), 『열자』, 『조씨고아』, 『장물지』(공역), 『중국 설창예술의 이해』, 『중국 경극 검보의 이해』, 『중국경극의상』(공역), 『송원화본』(공역) 등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
|
|
요즘 유행의 속도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체감하는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너도나도 두쫀쿠를 찾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 이름을 꺼내는 사람이 없잖아요. 알고리즘이 빠르게 띄워주는 만큼, 사라지는 속도도 그만큼 빠른 것 같아요. 바이럴 영상 하나가 뜨면 유사 제품이 쏟아지고, 후기 영상이 이어지고, 알고리즘이 다시 또 밀어주는 식으로요. 다음엔 또 어떤 음식이 그 사이클을 탈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이건 소셜미디어 시대의 숙명일까요 아니면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결과일까요?
Editor 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