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No.10 II 2026.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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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중심’으로서의 인간
– 하오징팡의 SF 창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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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후 류츠신(劉慈欣), 하오징팡(郝景芳), 하이야(海漄) 등이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 독자들이 중국 SF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삼체(三体)』로 잘 알려진 류츠신과는 사뭇 다른 창작 스타일로 SF 독자들을 매료시킨 하오징팡 소설의 의미를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곱씹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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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하오징팡이 중편 「접는 도시(北京折叠)」로 휴고상 수상자가 되면서, 중국은 아시아인 최초 수상자였던 류츠신에 이어 2년 연속 휴고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류츠신의 『삼체』는 엄청난 시공간 스케일과 기발한 천체물리학적 상상력,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UN을 중심으로 하는 현존 국제질서를 결합한 장엄한 대서사시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하오징팡의 소설은 인간 개인의 삶과 죽음, 세계의 부조리, 존재 의미와 윤리의 문제를 보다 일상적이고 세심하게 다룹니다. 그의 소설집, 『고독 깊은 곳(孤独深处)』에 수록된 10편의 소설은 대체로 지구 세계 내부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으며, 우주 공간을 다루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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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는 도시(北京折叠)」가 수록된 하오징팡의 소설집 / 출처: 알라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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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제목을 ‘고독 깊은 곳’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하오징팡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SF소설을 쓰는 것은 가능성의 세계를 구상하고 그 세계의 끄트머리에 인물을 세워놓는 일이다. 그때 가장 쉽게 느끼게 되는 것은 탄생과 소외라는 감각이다. 세계에서 떨어져 나오는 느낌보다 더 고독한 것이 있을까.”
그녀의 설명에서 우선 눈길을 끄는 표현은 ‘가능성의 세계’일 겁니다. 그녀가 말하는 ‘가능성의 세계’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가능성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왜 ‘고독’과 ‘소외’를 느끼게 되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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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말하는 ‘가능성의 세계’란 ‘(불)가능성의 세계’로 읽혀야 할 것입니다. 가능성이란 늘 불가능성을 내포하며, 마찬가지로 불가능성 또한 가능성을 함축합니다. 불가능성을 내포하지 않은 가능성, 가능성을 함축하지 않은 불가능성은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고정된 현실일 테니까요. 따라서 ‘가능성’이라는 말은 인류에게 희망의 감각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과 초조감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왜 작가가 SF 창작을 ‘가능성의 세계’ ‘끄트머리’에 ‘인물’을 세워놓는 일이라고 정의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안정적인 가능성의 지평 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든 불가능성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벼랑 끝에 불안하게 서 있을 뿐이죠.
작중 인물들을 보면, 규칙적으로 ‘접히는’ 메트로폴리탄 베이징에서 살아가는 「접는 도시」 의 주인공 라오다오, 강철족의 도움으로 바라던 명성을 얻지만 결국 강철족에 대항하기로 결심하는 「화려한 한가운데」 의 아주, 곡신성과 그곳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결국 그들의 머나먼 이주를 막지 못한 비행사 랑닝, 천재적인 연구 능력을 증명하려 애썼지만 실상 자질구레한 일상의 노예일 뿐이었던 한즈, 그런 그들에게 ‘가능성’은 늘 ‘소외’와 ‘고독’을 수반하는 ‘불가능성’이었던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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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과학 문명을 대신할 ‘새로운 가능성’의 ‘중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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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SF라는 장르에서 ‘가능성’은 주로 ‘과학적 진보’와 연관됩니다. 이 점이 위에서 말한 인간 실존의 ‘고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수 세기 동안 과학혁명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과학이 인간을 억압과 부조리에서 해방하고 부와 행복을 선사하는 긍정적 힘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억압과 불합리를 낳았고, 새로운 불편과 불행의 원천이 되기도 했죠.
근대인은 공장과 회사에서뿐 아니라, 진보한 과학기술의 이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모든 시공간 속에서 ‘소외’됩니다. 과학의 진보를 주도하는 것은 인간인 듯하지만, 인간은 그 이상으로 과학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과학적 진보가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하는 그 ‘가능성의 세계’는 항상 ‘불가능성의 세계’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불가능성’은 불가역적인 불가능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학적 진보’를 대신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불가능성’, 즉 ‘(불)가능성’인 것이죠. 그렇다면 그 ‘새로운’ 가능성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자체일 것입니다.
하오징팡 소설에서 인간은 소외된 존재, 고독한 존재라는 바로 그 의미에서 고귀성을 발휘합니다. 절대적 가능성으로 인식되었던 근대 과학이 끔찍한 불가능성을 드러냈을 때, 고통받고 소외당하는 인간의 고민과 결단은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젖힙니다. 그러하기에 과학과 인간은 서로에게 가능성이자 불가능성입니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또 서로를 제약하는 질긴 관계성을 나타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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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징팡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SF 세계도 결국 과학과 인간의 변증법이 형성하는 (불)가능성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의 세계 끄트머리에 불안하게 서 있는 인간이야말로 한 줌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늘 과학이 낳은 문명 안에서 소외되지만, 비틀거리며 쉰 목소리로나마 새로운 가능성을 노래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오징팡 소설의 가장 큰 주제는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고도로 발달한 먼 미래의 문명에서도, 궁극적인 가능성의 세계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그녀가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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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SF, 하오징팡, (불)가능성, 과학(문명), 소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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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 호
상지대학교 중국학과와 자유전공학부를 거쳐 현재는 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소설, 문학 논쟁, 정치사상을 주로 연구하였고, 최근에는 중국 SF 창작에 관심을 두고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국의 인도주의 담론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대안적 사회 비판 사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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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SF 하면 류츠신의 『삼체』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되어 나왔을 때 정말 재밌게 봤고,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안 살수가 없었어요. 드디어 올해 시즌 2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네요!!(기대기대😆) SF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이 가능성의 세계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결말을 상상하곤 해요. 물론 늘 저의 상상력은 빈약하고 스토리텔링은 진부했지만, SF를 통해 과학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즐거움입니다. 하오징팡의 『고독 깊은 곳』 함께 읽어보실래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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