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약자로 PC라고 불리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편견이나 차별이 내포된 언어적 표현이나 정책을 사용하지 말자라는 신념에서 비롯된 사회적 운동에서 기인합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정책, 척도 등에서도 편견이 함축된 공격적 마인드를 제거하고 갈등을 해소하며 존중과 배려적 마인드를 강화하자는 의미에서죠. 이 용어의 기원은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대체로 18세기 미국 법원, 그 외 영어권의 공식 문서 등에서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1960∼70년대 영미권에서 흑인 인권 및 여성 운동, 베트남전 반대 시위 등이 일어났는데, 이때 일반에게도 신문 지상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세계 지식인, 지성인들의 상당수가 정치적 올바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계속해서 알려지고 활용되는 개념이며, 현재 20·30 MZ 세대는 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개발도상국보다 선진국에서 보통 더 강조되는데, 경제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PC의 문제가 대두된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간수를 교도관으로, 파출부를 가사도우미로, 남녀평등을 양성평등이나 성평등으로, 미혼을 비혼으로, 불임을 난임으로 표준화해 표현하는 것 등입니다. 언어와 정책 모두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전통에 대한 옹호보다 진보적 마인드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여성주의, 노동자, 자유주의(liberal) 진영에서 PC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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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PC에 대해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전통이나 보수 진영에서는 PC의 적극적 활용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PC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존 단어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억압한다는 데 불만이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지방을 비수도권 지역이라고 부르는 게 실제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의심스럽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이라 부른다고 해서 동물의 지위가 정말로 높아진 건지 현 사회 문화 상황에서도 여러 반성이 가능합니다. 지방을 비수도권 지역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런 정책을 쓰려한다고 해서 비수도권 문제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지방 소멸의 문제는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보면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느낌을 더 줄 수 있으며, 철학적으로는 일종의 유명론(마치 이름을 불러줘서 특정의 본 의미가 생겨난다는 김춘수 시의 ‘꽃’과 같은)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고 해서 정책을 그렇게 맞춰 쓰려한다고 해서 실제적(실재론적)으로 본질상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맥락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용어와 정책에 대한 단순 강조가 더욱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사람들 개인 각각의 기본 자존심은 점점 세어지고 있으며, 예전에는 농담에 불과했던 이야기들이 지금은 잘못하면 소송이 걸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되었습니다. PC의 도입으로 인해 상호 간의 존중과 배려라는 장점이 분명 부각되었지만, 사회 인심이 팍팍해지게 되었다는 단점 역시 강조될 수 있습니다. 그냥 좀 더 그럴듯하게 앞에서만 보이고자 한다는 제스쳐일 따름이며, 이런 식의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양산할 뿐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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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는 이 PC 개념이 문화콘텐츠 업계에 짙게 드리워졌습니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최근 미국의 애니메이션 작품들 및 기존 애니메이션의 실사 영화화 작품들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표현은 남녀 간의 키스가 아님을 보여준 <겨울왕국>이나 서로 다른 원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강조한 <엘리멘탈>은 PC의 성공 사례입니다. 반면 흑인 배우를 에리얼로 캐스팅한 <인어공주>, 왕자를 기다리지 않는 라틴계 공주의 <백설공주> 등은 PC의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수용자들은 바보가 아니며, 작품의 PC적 의의보다 완성도를 더욱 좋아할 뿐입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이든 PC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PC충’이라고 비난합니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Wokeism(PC에 과잉 반응하는 주의) 문화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Woke는 영어 단어 Wake의 과거형이며 ‘깨어있는’이란 뜻의 형용사로도 쓰입니다.)
진보적 이데올로기나 마인드를 소유한 사람은 PC를 보통 옹호하지만, 전통-보수주의자는 반PC 경향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히 생각할 수만도 없습니다. 진보적인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의 일부 역시 PC를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PC에는 계몽주의적 마인드가 들어있으므로 엘리트주의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표준화와 잘 연결되는 정치적 올바름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무지한 민중을 지식인들이 교육시키고 바꾸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오히려 강제를 행한다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영국의 반종교주의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대표적 무신론 지식인이자 신경과학자인 샘 해리스, 사회주의 진보성향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등이 모두 각자의 이유로 PC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좌우 정치 이데올로기, 보수-진보의 마인드를 넘나들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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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와 관련되는 꽤 심각한 PC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성탄절에도 석탄일에도 이슬람축일에도 “해피 할러데이(Happy Holiday)”라는 인사를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게 올바르다는 PC의 논지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피 할러데이”로 대체하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즐거운 휴일(연휴)되세요” 정도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즐거운 휴일(연휴)되세요”가 공식적 사회 표준이 된다는 것 역시 사람들이 모두 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사회적인 갈등과 논란이 더 부추겨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책도 열심히 읽고, 불경도 즐겨 보면 혹시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정말로 구원받은 신실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상호 존중과 배려의 의지를 이처럼 PC를 통해 모두 다 해결하려 해야 할지, 그냥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 주고자 더욱 노력할 수는 없는 건지, 사회적으로 깊이 고심해 보아야 할 필요 역시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PC에 대한 찬성과 반대, 적용과 배제는 21세기 현대 양극화 문화 중의 주요 사안처럼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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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문화콘텐츠, 이데올로기, 표준, 존중, 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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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성 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사회철학과 문화콘텐츠학을 함께 공부한 문화학자입니다. 사회·문화이론을 전공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글로컬 혼종문화 정체성, 문화콘텐츠의 공공성 및 윤리 문제, 대중문화와 철학, 시각문화, 과학기술문화, 기독교 콘텐츠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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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저도 꽤 낯설었어요. 말 한 마디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은 마음도 들었구요. 하지만 언어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파출부, 미혼, 불임과 같은 표현은 그 자체로 이미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 들어가 있기에 불편한 것이거든요. 그리고 결국 중요한 건 표현 자체보다, 그 표현 뒤에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구독자님은 일상에서 PC를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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