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은 평화롭고 풍족한 땅입니다. 철원평야는 오늘날 서울의 1.1배인 650㎢에 이르는 거대한 옥토입니다. 주변에는 빼어난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습니다. 특히 한탄강 주상절리는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곳입니다. 현무암 용암이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다 굳으면서 수축 작용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사각형과 육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떨어져 나가 주상절리 절벽이 형성되었습니다. 주상절리길은 철원군이 깎아지른 한탄강 협곡 절벽에 지상 20~30m 높이로 만들어 매달아 놓은 길(잔도)입니다.
순담 매표소에서 드르니 마을까지 총길이 3.6km의 이 길은 한탄강과 자연이 함께 빚어낸 수직의 바위 절벽을 따라 이어집니다. 마치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장관입니다. 잔도를 따라 걸으면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시원함을 더합니다. 수직과 수평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조화. 스릴도 느껴지고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곳을 이렇게 늦게 찾게 되었을까요. 개인적으로 풍광 좋은 철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인생의 가장 푸른 시절 30개월의 군 복무를 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소모적인 관계 속에서 생긴 상처 때문에 한동안 철원을 외면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러 두세 번 방문한 적은 있지만, 여행 목적으로 철원을 찾은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일들이 이해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그저 무덤덤해졌습니다.
고개를 돌려 비바람 겪었던 곳을 보고 돌아가니
비바람 불었든 맑았든 상관없어라. -소식
回首向來蕭瑟處,歸去,也無風雨也無晴。-蘇軾
3.6km를 쉬지 않고 걸었더니 땀이 나고 배도 고파졌습니다. 서둘러 어부가 직접 고기를 잡아 운영한다는 민물매운탕집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은 사람들로 꽉 차 빈자리가 없더군요. 잠시 기다리는 동안 안쪽 벽에 걸린 문장 몇 줄이 예사롭지 않아 눈길을 붙잡습니다.
천하를 품은 궁예의 꿈이
배고픔으로 끝났다.
명성산 울음의 사연을 안다면
때맞춰 먹는 것을 잊지 마라… -이오장
역사를 꿰뚫어 한 줄로 묘사한 문장입니다. 이 두 줄을 읽는 순간, 역사 속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이 문장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천하를 품은 궁예의 꿈이라. 신라 말기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지자 궁예는 승려의 신분으로 몸을 일으켜 반군의 장수가 됩니다.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며 사사로움 없이 공정한 일 처리로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불과 10년 만인 901년에 후고구려를 세우고 고구려의 원수를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904년에는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고 철원을 도읍으로 삼았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미륵불로 자처하며 우리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신정일치 국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왕이 된 뒤 그의 사람됨은 돌변합니다. 의심이 많아지면서 잔인해졌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은 배우 김영철의 대사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누구인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바둑에 임하는 자세와 작전 등 무궁무진한 이치를 밝혀놓은 『현현기경(玄玄棋經)』에서는 하수가 겁이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고수는 교만함이 없고, 하수는 겁이 없다.
高者無亢, 卑者無怯。
궁예는 하수였지만 스스로를 고수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결과 고수의 병폐인 교만함까지 갖게 됩니다. 결국 ‘교만한 하수’라는 역사상 최악의 조합이 탄생합니다. 한쪽 눈으로 반쪽 세상만 본 궁예. 918년, 폭정에 못 이긴 백성들이 왕건을 앞세워 궁으로 쳐들어옵니다. 그는 명성산으로 쫓겨 갑니다.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 지 18년 만의 일입니다. 그가 쫓길 당시 들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드르니’ 쉼터입니다. 도망자가 된 궁예는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 울음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여 명성산(鳴聲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한탄강(漢灘江) 또한 궁예가 쫓겨 이 강을 건널 때 한탄했다 하여 한탄강(限嘆江)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물론 궁예만 한탄한 것은 아닙니다. 12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395m 백마고지 전투에서 패하고 철원평야를 잃자, 김일성도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옥토에서 궁예의 꿈이 배고픔으로 끝나다니요. 궁예는 명성산에 숨어 지내며 보리 이삭으로 끼니를 때우다 그를 알아본 백성들에게 발각되어 결국 생을 마감합니다. 때맞춰 먹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역사는 늘 우리에게 더 많은 단서와 증거를 남깁니다. 하수임에도 스스로를 고수라 착각한 그의 비극적 결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그는 평생 업보를 믿는 사람이었지만 끝내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궁예는 오늘날 선거로 뽑힌 정치인과 가장 닮은 왕이기도 합니다. 보잘것없는 신분에서 혼신을 다해 백성을 섬기며 왕국을 세우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결국 민심을 잃고 버림받았습니다. 행운도 민심도 변덕스럽습니다. 백성의 환호만큼 변덕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현대에서도 군중은 대통령이 누구든 새로 취임하면 환호를 보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처음의 환호는 의례적인 것일 뿐 절대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개혁은 힘들고 정치는 어려운 것입니다.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책을 실시하면 인기를 유지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돌아섭니다. 그리고 기억력을 잃은 사람처럼 얼마 전까지 반대하던 정책이 더 나았다고 투덜댑니다. 정치가에게 있어 군중이 열렬히 지지하는 정책은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공익에 도움이 될 때야 비로소 충분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단 하나의 목적만으로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철원의 수많은 지명에 이름을 남긴 궁예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입니다.
권광영 선생님의 ‘아름다운 인생’ 시리즈는 여러 편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정보와 함께 삶에 대한 깨달음까지 전해주셔서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의 부제가 마침 ‘인생도처유상수’입니다. 책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답사에 연륜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른 경구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였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들이었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는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출처: 알라딘)
오늘로써 악씨레터 10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주는 10기 특별호로, 그 다음주에는 악씨레터 11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앞으로도 악씨레터와 함께, 그 안에 담긴 상수의 시선을 따라가는 여정에 동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