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탑은 네 가지 상징적인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계 최상단엔 두 무어인이 매시간 종을 치는 조각상과, 그 밑에 날개 달린 사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 그리고 황도 십이궁이 이어집니다. 다시 한번 사진을 봅시다. 청동 말이 여전히 프레임의 중심에 있지만, 사진을 언뜻 보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밝게 빛나는 하얀색 시계탑 건물이 보입니다. 여기에 베네치아의 영욕의 역사가 함축적으로 다 담겨 있는데, 청동 말 동상과 날개 달린 사자상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베네치아 공동체의 심벌이자 문화적 자산입니다.
우선 무어인의 종탑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오셀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셀로』의 원 제목은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입니다. 오셀로는 북아프리카 아랍계 무어인 출신임에도 해군 제독으로 승진하여 귀족 가문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베네치아는 개방사회였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의 정치·상업의 중심지로서 지중해 무역의 최강자였습니다.
그 밑의 날개 달린 사자상은 베네치아 수호성인인 성 마르코를 상징합니다. 베네치아인들은 성 마르코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성서에 한쪽 다리를 걸친 날개 달린 사자(사진3)를 베네치아 국기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대성당 꼭대기에는 성 마르코 상과 베네치아의 상징이 된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있습니다. 종탑을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있는데, 베니스 국제영화제와 베니스 비엔날레의 최우수상인 황금사자상도 바로 여기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마가)가 왜 베네치아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기록에 따르면, 828년 두 척의 베네치아 상인의 배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에 도착합니다. 당시 칼리프의 부하들이 반그리스적 폭동이 일어나자 수도원으로 가서 수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성 마르코의 시신을 자신들에게 넘겨 안전하게 베네치아로 옮기자고요. 수사들은 처음에는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성인의 유골이 옮겨지는 것을 반대했지만, 시시각각 폭동이 커지며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자 눈물을 머금고 동의합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성 마르코의 유골을 빵바구니 밑바닥에 놓고, 그 위에 돼지고기 덩어리를 빈틈없이 채웠고, 맨 위에는 돼지머리까지 얹어서 수도원을 빠져나옵니다. 손수레를 끌고 가는 그들을 막아서는 병사들에게 ‘칸질! 칸질!’ 외치자 모두 얼굴을 찌푸리며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칸질은 아랍어로 돼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알렉산드리아의 넓은 거리를 횡단하며 배까지 안전하게 도달했습니다. 마지막 관문, 항구를 나가는 세관 검사원들이 빵바구니를 여는 순간 돼지머리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코를 막고 나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유물이 베네치아에 상륙하는 순간, 온 베네치아 사람들이 찬송가를 합창하며 성대하게 축하 행사를 치릅니다. 이 성자의 유골이 베네치아의 번영과 영광을 보증해 준다고 믿었지요. 후에 수호성인을 마르코로 바꾸고 대성당을 화려하게 지어 성 마르코를 편안히 안식하도록 했습니다.
마르코의 유골이 이토록 중요했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 유골로 인해 베네치아는 일약 일급 도시국가로 비약합니다. 성인의 위계는 12사도가 가장 높고, 4복음서를 쓴 마르코, 누가와 함께 세례 요한까지 15명을 일급으로 여겼습니다. 로마는 성 베드로, 피렌체의 수호성인은 성 요한, 베네치아도 이제 일류 성자를 수호성인으로 갖게 된 것입니다. 당시 베네치아인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베네치아는 비로소(르네상스의 두 주역이 될) 로마와 피렌체와 동급인 도시국가로 급부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자인가? 요한계시록에서 성 마르코는 부활을 의미하는 사자로, 성 요한에게는 승천을 나타내는 독수리로 상징됩니다. 베드로에게는 수제자로서 천국의 열쇠가 주어졌지요.
네 마리 청동 말의 사연은 기묘합니다. 1204년, ‘가장 타락한 십자군 전쟁’이라는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의 히포드롬 입구에 있던 말들을 베네치아가 약탈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동 말은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개선문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면서 옮겨다 놓은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1797년 5월 16일 나폴레옹군 4천 명이 베네치아를 점령한 후 수많은 예술 작품을 파리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때 청동 말 네 마리도 포함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무너지자 이 말들은 베네치아로 돌아왔습니다.(프랑스는 아쉬움이 많았던지 파리 개선문에는 네 마리 청동 말을 새로 제작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로마-콘스탄티노플-베네치아-프랑스를 거쳐 다시 베네치아에 남게 된 것입니다. 4가 네 번 겹치는 기묘한 걸작입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는 유홍준 교수의 유명한 서문은 우리나라 문화유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베네치아 하면 118개 섬으로 이뤄진 물의 도시, 운하를 가르는 곤돌라와 아드리아해에서 반사되는 밝은 햇빛, 물 위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석조 건물 등 멋지고 부유한 역사만 있을 듯하지만, 역사에는 영욕이 존재합니다. 천년 공화국을 이어온 베네치아, 그 영욕이 담긴 장면은 이렇게 박제된 채 내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에 남아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