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겨울’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거리에서 들려오는 캐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 혹은 하얗게 내리는 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옛 선비들에게 겨울은 단순히 ‘추운 계절’이 아니라 다가올 봄을 맞이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마음을 닦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아름다운 기다림의 미학이 담긴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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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소한도’라는 이름이 조금 생소하신가요? 한자를 풀이하면 ‘아홉 구(九) 자가 두 번 겹쳐, 추위(寒)를 없애나가는(消) 그림(圖)’이라는 뜻입니다. 옛사람들은 동짓날(冬至)을 진정한 겨울의 시작이자 동시에 태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기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동지로부터 딱 81일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온다고 믿었죠. 그 81일 동안 매일매일 정성을 들여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바로 구구소한도의 핵심입니다. 방법은 아주 낭만적입니다. 커다란 종이에 하얀 매화 꽃송이 81개를 그려 넣습니다. 보통은 아홉 송이씩 아홉 줄로 그리거나 한 가지에 81개의 꽃잎이 달린 매화를 그리지요. 그리고 동지 다음 날부터 매일 한 잎씩 혹은 한 송이씩 붉은색으로 색을 채워 나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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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살을 에듯 추운 겨울이지만 방 안의 선비는 붓을 들어 하얀 종이 위에 붉은 매화를 피워냅니다. 그렇게 마지막 81번째 꽃잎에 색이 입혀지는 날, 창밖에는 정말로 거짓말처럼 봄바람이 불어오고 진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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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소한도는 단순히 날짜를 세는 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의 놀이이자 예술이었으며, 날씨를 기록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선비들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꽃잎을 칠하는 위치를 달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름이 낀 날은 꽃잎의 위쪽을 칠하고, 맑은 날은 아래쪽을 칠하며, 바람 부는 날은 왼쪽, 비 오는 날은 오른쪽, 눈이 오는 날은 꽃잎의 한가운데를 칠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81일이 지나고 나면, 완성된 구구소한도 한 장에는 그해 겨울의 날씨가 고스란히 담기게 됩니다. 나중에 이 그림들을 모아보면 ‘아, 작년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왔었지’, ‘재작년엔 비가 잦았구나’라고 하며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데이터가 되었던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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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로 쓰는 봄, ‘정전수류진중대춘풍(亭前垂柳珍重待春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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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소한도를 그리는 방법으로 매화 그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글씨를 쓰는 것을 좋아했던 이들은 글씨로도 썼습니다. 한자로 아홉 획으로 된 글자 아홉 자를 고릅니다. 9*9는 81, 즉 총 81획이 되는 문장을 고른 것이죠. 대표적으로 사용된 문구는 ‘정전수류진중대춘풍(亭前垂柳珍重待春風, 정자 앞 수양버들은 진중하게 봄바람이 오기를 기다린다)’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딱 아홉 글자이고, 각 글자의 획수가 모두 아홉 획입니다. 매일 한 획씩 글자를 채워 나가며 이 문장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버들이 늘어지는 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 획 한 획을 그으며 ‘오늘도 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구나’라고 되뇌었을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설레는 시간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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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수백 년 전의 이 풍습이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갓생 살기’나 ‘데일리 루틴’과 무척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SNS에 매일 운동한 기록을 남기거나 독서 기록을 채우고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 열풍 속에 살고 있지요. 구구소한도 역시 매일의 나를 다스리고 인내하며 목표(봄)를 향해 나아가는 일종의 ‘81일 챌린지’였던 셈입니다. 지루하고 긴 겨울을 견디기 힘든 고난의 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꽃잎 하나’라는 작은 성취감을 통해 즐거운 축제로 바꾼 지혜.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이미 동짓날은 조금 지났지만 오늘부터 나만의 구구소한도 지금 바로 시작해 볼까요? 디지털 기기가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가끔은 아날로그적인 기다림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꼭 매화 그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만의 ‘소한도’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81개의 칸이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오늘 하루 나를 미소 짓게 했던 일 하나를 적거나 좋아하는 색깔로 칸을 하나씩 채워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81일이 지났을 때 여러분의 손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겨울의 기록’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완성될 즈음엔, 우리 마음속에도 따뜻한 봄볕이 들고 있겠지요.
구구소한도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봄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기다리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다는 것을요. 추운 날씨에 몸은 조금 움츠러들지 몰라도 마음만은 하얀 종이 위에 붉은 매화를 그려 넣던 선비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넉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마음속에 첫 번째 꽃잎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기나긴 겨울 끝에 올 여러분의 찬란한 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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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중국고전문학, 그 중 주로 송대(宋代)문학인 송사(宋詞),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문장, 그리고 소철(蘇轍)에 대해 공부했어요. 최근에는 송대 문인들의 교유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중국고전문학을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어서 중국문학을 콘텐츠화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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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와 삼촌에게 조카는 ‘책임없는 쾌락’이라고 하죠. 작년 12월, 오매불망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저희집 둘째에게 이모가 초콜릿이 가득 든 ‘어드밴트 캘린더’를 보내 줬더라고요.(하필 초콜릿을..🍫😮) 어드밴트 캘린더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매일 한 칸씩 열어보는 달력인데요. 오늘은 어떤 초콜릿이 나올까 설레어 하며 한 칸씩 열고, 먹다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였다고 합니다.
기다림은 참 지루하고, 때로는 견디기 어렵지요. 그러나 구구소한도, 어드밴트 캘린더, 데일리 루틴과 같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다림을 수동적 인내가 아닌 능동적 채움으로 바꿔 온 지혜가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긴 겨울, 저도 매일매일을 허투로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꽃잎 하나씩(저는 공부와 운동이요!) 그려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찬란한 봄이 성큼 다가와 있겠지요.🌸
2026년 병오년 새해, 구독자님과 함께 악씨레터도 힘차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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