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다’는 영어로 ‘thank’입니다. 이 단어는 어디서 왔을까요? 놀랍게도 ‘생각하다’라는 뜻의 ‘think’와 어원이 같습니다. 이 두 단어의 근원을 잘 파악하고 연결한 이는 철학자 하이데거입니다. 그는 이 두 단어를 결합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감사하는 것이다(Thinking is thanking).”
저는 그동안 ‘감사하다’와 ‘생각하다’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구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명제를 두고 꽤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만 뾰족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뜻인지, 감사하지 않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는 건지 점점 모호해지더군요. 그러다 결국 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은 감사할 수 없다’는 문장이 가장 적확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요즘 세대는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가던 과거와 달리 이동이 자유로운 노마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일본 청년들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성향을 보이는 반면, 한국 청년들은 기회가 보이면 적극적으로 외부로 나아가려 합니다. 많은 한국 가정에는 유학이나 이민 등 해외에 나가 있는 친인척이 한두 명쯤은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해외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각계의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공부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좀더 깊은 대화를 위해 앰프의 잔향이 울리는 ‘케이 라운지’로 이동하곤 하는데, 홍콩 주재원 출신 기업인부터 예술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느 날 글렌 굴드의 ‘바흐 파르티타’와 임윤찬의 연주 방송을 듣고 예술 이야기를 나누던 중 “휴식을 취하기 좋은 매력적인 도시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주최자인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안전, 문화, 음식이 좋으면서도 생활비가 적정한 도시로 아부다비와 싱가포르를 꼽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주변 도시인 홍콩과 두바이에 대한 품평도 이어졌습니다. 홍콩은 1990년대 이후 서구적 자유와 독립적 문화가 약화되며 고유한 매력을 잃었고, 두바이는 세계적인 건물이 많지만 문화예술 기반이 약한 데다 술 규제가 강해 아쉽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또 다른 해외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국외보훈처 사적지 탐방으로 우슈토베(카자흐스탄)를 다녀온 청년들의 경험담입니다. ‘세 개의 언덕’이라는 뜻의 우슈토베는 지금도 바람이 거칠게 부는 황량한 구릉지대입니다.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의 역사와 고려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깊이 새겨진 곳이지요.
1937년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첫 열차는 6,600km를 달려 한 달 뒤인 10월 9일 우슈토베역에 도착했습니다. 강제 이주는 총 124회 열차 편으로 이루어졌고, 17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이주했습니다. 고려인들은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바슈토베 언덕 밑에 토굴을 파고 첫 겨울을 났다고 합니다. 지금의 고려인들은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전 분야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카자흐스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고려인협회는 고려인의 정착과 성취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복합문화단지 ‘K-파크 프로젝트’의 착공식을 열었습니다. 고려인 정주 90년이 되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알마티 인근 알라타우 신도시에 조성되는 이 공간은 전 세계 고려인을 위한 복합문화·비즈니스 거점이자 유라시아 지역의 한류 문화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직은 황량한 벌판에 놓인 큰 기념석에는 ‘감사·기억·유산’이라는 말이 한글·러시아어·카자흐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감사는 어려운 시기 고려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카자흐스탄 민족들의 호의와 환대에 대한 고마움이다. 기억은 이주 1세대들의 시련과 고난을 항상 기억하자는 취지이며 유산은 이러한 감사와 기억을 미래 세대에 잘 계승하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태옥 주알마티 총영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