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No.41 II 2025.1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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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권위 있는 어린이책 상으로는 미국의 뉴베리상(Newbery Medal)과 칼데콧상(Caldecott Medal)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상은 미국 도서관협회가 주관하며, 뉴베리상은 텍스트 중심이어서 글작가에게, 칼데콧상은 그림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이지요. 역사와 권위로 인해 아동문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큰데요. 특히 칼데콧상은 세계 여러 나라의 사서, 교사, 학부모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대표적 그림책상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중국 역시 이에 뒤질세라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자국의 대표 그림책상을 제정해 왔는데, 그중 2009년 칼데콧상을 모델로 만든 ‘펑즈카이 그림책상(豐子愷兒童圖畫書獎)’이 대표적입니다. 이미 출판된 그림책 가운데 ‘중국어로 된 작품’이라면 국적과 지역을 막론하고 응모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해외 화교 작가는 물론 ‘하나의 중국’이라는 취지에 따라 대만 작가도 참여할 수 있으며, 민간에서 운영되는 상이기에 정치적·교육적 제약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3년에 들어서야 ‘대한민국 그림책상’을 신설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며, 수상작은 출판수출통합플랫폼(k-book.or.kr)에 등재되어 해외 홍보 및 수출 마케팅 자료로 활용됩니다. 또한 영문 웹진 「K-Book Trends」를 통해 작품 소개와 작가 인터뷰를 국제 시장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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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아동도서 번역시장에서는 뉴베리상과 칼데콧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볼로냐 라가치상, 브라티슬라바 그림책 비엔날레(BIB),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 등 세계적인 수상작은 물론 ‘펑즈카이 그림책상’ 수상작도 꾸준히 번역, 소개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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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번역된 2025년 펑즈카이 그림책상 대만 작가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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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펑즈카이 그림책상’ 수상작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2년마다 열리는 ‘펑즈카이 그림책상’은 2025년 올해 제9회를 맞이하였는데 대상작은 선정되지 않았지만 5권의 우수작과 8권의 추천작이 발표되었습니다. 현재 그중 2권의 대만 작가 작품이 우리나라에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먼저 대만의 신이출판사에서 발간한 옌즈하오/쉐후이잉(顏志豪/薛慧瑩)의 『고양이를 안 키워서 얼마나 다행이야(貓房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할머니와 고양이들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만인들은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는데요. 무척이나 고양이를 아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눈이 밝지 못한 할머니는 집안에 고양이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늘 “고양이를 안 키워서 얼마나 다행이야.”를 중얼거리죠. 그러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점점 기억력이 쇠해진 할머니는 자신이 고양이를 싫어했다는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 노인이 되는데요. 다행히도 그 곁에는 할머니를 돌봐주는 고양이들이 함께 하고 있지요. 할머니는 잊혀져 가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양이를 좋아했는지 만은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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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만 작가인 리밍주/마오위(李明足/貓魚)의 『사랑해요 아빠(親愛的奶爸)』는 아로와나 수컷이 암컷이 낳은 알을 아기 물고기로 부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암컷 못지않게 자식을 온몸으로 지켜내는 수컷들이 있지요. ‘물의 원숭이’라 불릴 만큼 수면 위를 잘 넘나드는 아로와나는, 암컷이 낳은 알을 수컷이 입속에 넣어 부화할 때까지 약 40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새끼를 보호합니다. 아기 아로와나가 아빠의 입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엄마’를 떠올리지만, 아로와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아빠들의 삶 또한 얼마나 장엄하고 눈물겨운지 생각해 보게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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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펑즈카이 그림책상 수상 중국 작가 다우(大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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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신예 작가 다우는 주로 표정 없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생활 속에서 부조리함과 여운을 전달하는 표현기법이 특징인데요. 올해의 ‘펑즈카이 그림책상’ 수상작은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기존 작품 두 권이 번역·출간되어 있습니다. 다우의 그림책은 발상이 아주 독특하고 신선하답니다. 『그냥, 그대로(不要動一隻蝸牛)』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좋은 의도일지라도 인위적으로 조작한 일이 상대에게 결코 이롭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님을 얘기합니다. 형제의 행동과 말이 여러 가닥으로 펼쳐지며 나비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철학적인 내용으로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만 그 숨은 뜻을 찾아낼 수 있지요.
『코끼리가 문제라고?(不要讓大象走進房間)』는 형제 사이에서 생긴 조그만 문제를 외면하다가 벌어지는 놀라운 소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동으로 결코 아이들만이 이러한 문제와 모순에 놓인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음이 드러나지요. 방 안에 들어온 작은 코끼리와 새는 서로 간의 소통 부재와 외면, 그리고 방관의 상징입니다. 커져 버린 코끼리로 인해 집이 부서지고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한 가족들이 집을 고친 후 과연 이야기는 행복하게 잘 마무리됐을까요? 마지막에 뜻밖의 새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직접 확인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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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그림책은 오랫동안 문자 해득이 덜된 어린이나 독서에 흥미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글밥이 많은 책으로 옮겨가는 디딤돌로의 기능이 부각되었지요. 물론 이러한 역할이 결코 가볍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그림책의 경향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심리적 안정과 함께 생각해 볼 여지와 공간을 선사하는 게 그림책이 지닌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읽기에서 벗어나 같은 책을 읽고, 보면서 내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구석을 발견하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에 정말로 좋은 것이 그림책 읽기의 장점이지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그림책 코너를 둘러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책을 찾아보세요. 무얼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권위 있는 상의 수상작이나 관심 있는 작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그리고 함께 읽은 사람과 가볍게 감상을 나눠보세요. 짧은 이야기 속에서 각자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얼마나 다른지 아마 놀라게 될 거예요. 그런데, 혹시 그림책의 매력에 풍덩 빠졌더라도 진지하게 교훈이나 의미, 주제를 찾아내려고 애쓰지는 말기를! 그냥 자연스럽게 읽고 보기만 해도 충분히 즐겁고 위로가 되며 편안해지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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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즈카이그림책상 #고양이를안키워서얼마나다행이야 #사랑해요아빠
#그냥그대로 #코끼리가 문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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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부설 동양문화 고급과정에서 한문을 공부했어요. 아동도서와 아동·청소년 문학에 관심이 많아요. 중국과 대만의 좋은 책을 찾아 우리나라에 소개하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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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게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함축적인 언어와 그림은 비어 있는 여백을 상상으로 채우게 만들어, 아이들로 하여금 더 깊은 사고를 하도록 이끕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때로는 소설 속 여러 장의 묘사보다, 그림책 속 몇 마디 말과 한 장면의 그림이 주는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아이에게 권정생 선생님의 『엄마 까투리』를 읽어주다가, 저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저만큼 슬퍼하지 않았어요. 제 아이도 언젠가 엄마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엄마 까투리』를 읽어줄 때, 그제야 이 이야기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림책은 참 신기합니다. 오늘은 책장 가득 꽂힌 그림책 중 몇 권을 꺼내 다시 펼쳐봐야겠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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