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특수한 역사와 문화환경 탓으로 중국어, 객가어, 대만어, 원주민어가 공존하며 정부에서 공인한 16족의 원주민과 함께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온 이주민들이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족군이 모여 살기에 1990년대에 ‘다문화 교육’이 등장하였죠. 그리고 2000년에는 반세기 이상 집권해 온 국민당의 통치를 끝내고 민진당으로의 첫 정당 교체가 시작되면서 언어정책과 대만인의 주체성을 자각하는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그동안 중국어로만 발간되던 도서출판에도 변화가 일어나면서 최근에는 대만어로 쓰인 작품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원주민 문화와 언어보존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이 실시되면서 원주민 관련 도서도 속속 출판되고 있습니다.
원주민 문학의 가치와 최근 동향
원주민은 비록 전체 인구의 2.6%밖에 안 되지만 풍부한 부락의 역사와 전설 및 신화, 제사의식과 노래들이 구전 방식으로 전해지고 있기에 문화인류학적으로도 그 연구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대만에는 원주민 문화를 보호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정부 기구와 여러 단체가 있고, 민간 출판사와 대학에서도 원주민 문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국립대만대학교에도 ‘원주민족 연구센터’가 개설되어 있고, 각 지역 도서관에도 다문화 도서와 함께 원주민 관련 책들이 함께 비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원주민어는 이미 많이 사라져서 그 실체를 제대로 복원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원주민 관련 그림책이 주로 발간되고 있는데 그 유형은 크게 정부, 민간, 민간과 정부 합작으로 나눌 수 있답니다. 여기에 참가하는 작가와 화가는 원주민과 비원주민이 섞여 있고, CD나 QR코드를 활용해 중국어와 원주민어를 함께 들을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주민 관련 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원주민어를 표기하는 건 아닙니다. 원주민어는 소리로만 존재하고 문자가 없어서 기록되지 못했고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둥구사페이산은 성스러운 위산(玉山)을 말하는 부농족(布農族)의 원주민어입니다. 위산은 대만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거의 4,000m에 다다르며, 일본의 후지산보다도 높습니다. 이렇게 높이 솟은 산이기에 인류가 큰 홍수로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보존한 최후의 피난처라는 전설을 지니고 있답니다.
『둥구사페이: 산의 아이 디앙(東谷沙飛: 山的孩子笛昂)』의 글 작가는 부농족 원주민인 네코 쒀커루만(乜寇·索克魯曼)이고, 그림 작가는 얼마 전 우리나라 국제도서전에도 온 마오위(貓魚)입니다. 주인공인 디앙(笛昂)은 실제 글 작가의 아들이지만, 실은 어린 시절의 작가 자신이기도 합니다. 디앙은 작가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한데, 부농족은 할아버지의 이름을 다시 손자에게 물려주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은 어린 디앙이 셰르파인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위산을 오르는 내용입니다. 나무가 노래하고, 달리기 경주도 하는 위산의 다양한 생태와 유머, 그리고 부농족 원주민의 세계관과 상상이 잘 담겨 있습니다. 누구든 대만의 위산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멋진 그림책이랍니다.
이 책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기에, 부농족의 아름다운 노래 <달빛(月光, Buan)>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대만국립도서관에서 열린 『둥구사페이: 산의 아이 디앙』 북토크에 참여하여 직접 들었는데, 참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원래는 유명한 원주민 가수 왕홍언(王宏恩)이 불렀던 노래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림책 작가와 그 딸이 함께 들려주는 노래로 감상해 보세요. 비록 가사를 모르더라도 감동은 고스란히 전해질거라 생각합니다.
#대만원주민문학 #부농족 #네코쒀커루만 #마오위 #둥구사페이:산의아이디앙
권동리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부설 동양문화 고급과정에서 한문을 공부했어요. 올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대만에 머무르며 몇몇 아동 청소년 문학 관련 행사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특색있는 대만의 좋은 작품을 소개하려고 해요.
긴 추석연휴가 아쉽게도 끝났네요. 저는 연휴동안 늦잠을 자서 그런지, 이번주 월요일부터는 제때 일어날 자신이 없어 알람을 무려 20개나 맞춰놓았답니다.😆 다들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이시지요?
오늘의 악씨레터에서는 책과 함께 대만 원주민 부농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부농족의 노래 〈달빛〉은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요즘처럼 조금 쌀쌀해진 날씨와 참 잘 어울리는 곡인 것 같아요. 언젠가 대만에 가게 되면 꼭 부농족의 마을을 찾아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격주 발행으로 변경된 악씨레터 10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레터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