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더운 공기와 따가운 볕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력은 넘어가고 어느새 가을이 왔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반갑다 못해 어색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결이 달라지는 계절입니다. 여름 내내 바쁘게 달려오던 일상에 선선한 바람이 스며들면,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지고, 문득 텅 빈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
‘갑자기 시간이 간 것 같아. 나는 올해 무엇을 했더라.’
저 역시 이런 생각들이 불쑥 떠오르고, 설명하기 힘든 헛헛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왠지 모를 공허감이나 지친 마음을 느끼고 계시지는 않나요? 햇살은 잔잔한데 마음속은 허전하고, 일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멈춘 것 같다는 생각. 어쩌면 누구나 가을에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분은 단순히 계절 탓일까요, 아니면 내 마음이 보내는 어떤 신호일까요?
심리학에서는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누구나 이런 마음의 파동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대답은 허전하고 지치는 마음이 결핍이나 소진의 징후일 수도 있지만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회복을 시작하라는 마음의 편지일 수 있다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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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가을에 유독 마음이 허전해지는 데는 과학적 이유도 있습니다. 햇빛의 양이 줄어들면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 감소해 기분이 가라앉고 피로감이 쉽게 찾아옵니다. 실제로 계절적인 변화로 인해 심한 피로감이나 우울증과 비슷한 감정의 변화가 생기는 현상을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합니다. 이는 가을과 겨울에 햇빛이 줄어들면서 평소 햇빛에 맞춰 조율되던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흔들리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는 우리 마음의 균형을 흔들고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계절의 변화에 ‘혼자’와 ‘함께’ 사이의 이중적인 풍경을 갖는 문화적인 환경도 영향을 줍니다. 늘 연결된 듯하지만, 정작 마음을 나눌 자리는 많지 않습니다. 메시지와 SNS는 쉴 새 없이 오가지만,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꿋꿋이 하루를 버텨내다 보니,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을 지나며 쌓여온 일들이 더욱 버겁게 느껴집니다. 여름 내내 들인 노력과 에너지가 지금은 조금 더 무겁고 힘겹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가을에 찾아오는 허전함은 계절의 변화,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빚어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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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성 정동장애란?
가을에 접어들면서 햇빛의 양이 줄어들고, 평소 햇빛에 맞춰 움직이던 우리 몸의 생체시계의 균형이 깨지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햇빛이 적어지면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는데,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는 늘어나면서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적은 고위도 지방에 거주할수록, 그리고 연령이 낮을수록 계절성 정동장애의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브란스 질환백과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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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우리가 조금 덜 허전하고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답을 긍정심리학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1990년대 후반 마틴 셀리그먼이 제창한 긍정심리학은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단순한 구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지요.
긍정심리학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행복과 회복은 기다린다고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상의 아주 작은 행동 속에서 싹튼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지쳤을 때 외부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실천을 찾아야 한다고 긍정심리학은 말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소한 행동은 기쁨, 감사, 호기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폭을 넓혀, 새로운 관계를 이어주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며, 결국 지친 마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의 기회를 마련해 줍니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이 그런 회복의 힘을 줄 수 있을까요? 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는 순간,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짧은 찰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일을 적어 내려가는 습관 등 모두 소소해 보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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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처럼 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인공도 그런 상황에 놓였습니다. 하루아침에 감옥에 갇힌 그는,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낯선 환경 속에서 그저 석방의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곳에서 ‘슬기로운’ 방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자신만의 일상을 지켜가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을 도는 일, 몸을 단련하는 운동을 반복하는 일. 기쁠 때도, 힘들 때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이 루틴은 그에게 무너지지 않는 중심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떤 하루를 보내든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힘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먼저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었고, 이후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 수감자와 믿음을 주는 교도관이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따뜻함은 주인공이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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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가을의 공허함을 건널 수 있을까요? 우리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힘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위한 두 번째 비결인 ‘따뜻한 연결’입니다. 많은 심리학 연구는 좋은 관계가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관계는 단순히 외로움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대화하는 순간은 우리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보호막이 되어 줍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거창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친구에게 “잘 지내?”하고 보내는 짧은 문자, 가족과 나누는 짧은 식사, 혹은 하루 끝에 건네는 작은 미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마음의 온도를 지켜줍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확신은 우리가 이 계절을 덜 외롭고 더 단단하게 건너갈 수 있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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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공허함 속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서둘러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조금씩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침에 좋아하는 차 한 잔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잠시 멈춤을 허락하는 것, 오래된 친구에게 “잘 지내?”라는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일을 두세 가지 적어 보는 것. 이런 행동은 소소해 보이지만, 내 마음을 돌보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럼 이제 여러분에게 스스로 질문을 해보세요. 내일 누구에게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아니면 나를 위한 어떤 일들을 해보고 싶은지를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면 예전엔 즐겼지만 요즘은 하지 않고 있는 소소한 일들을 떠올려 보아도 좋습니다.
외로움과 공허함이 마음이 보내는 다정한 초대장이라면, 오늘 하루 그 초대에 응해 작은 루틴 하나를 만들어 보세요. 이런 실천이야말로 감빵에 갇힌 것 같은 하루를 안전하게 보내는 가장 슬기로운 방법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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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마음지키미 #작은실천 #하루루틴 #따뜻한연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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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선 충청남도서산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근무하는 전문상담교사. 충남전문상담교육연구회 회장. 마음도 안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 고민하던 중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교사들(오마보팀)과 함께 『다시, 즐거운 학교상담』이라는 책을 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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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동생과 동생절친 그리고 저, 약간 색다른 조합이지요? 이 둘은 대학 때부터 친했고, 저도 종종 함께 만나왔기에 충동적으로, 그러나 별 어색함 없이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러다 3년 전쯤 예전 홍콩 여행을 회상하며, 다시 떠나기 위해 돈을 모으기로 했지요. 그렇게 매달 모은 돈으로 지난 주말 도쿄를 다녀왔어요. 세 사람 모두 바쁘고, 바쁜 일정 속에서 겨우 시간을 내어 떠난 그곳에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하루에 2만6천보도 걸어보고요. 긴자에서 마셨던 인생 라테, 하루 한 번은 생맥주(生ビール)! 길을 걷다 보니 건물마다 맥주가 써있는 거예요. 찾아보니 빌딩=ビル였다는 일본어 까막눈 에피소드까지..
그런데 사실 여행 자체도 좋았지만, 지난 3년간 이따금 만날 때마다 어디로 여행을 가면 좋을지, 다시 함께 간 여행은 어떨지, 저번 홍콩은 참 좋았지 등에 대한 시시콜콜한 수다가 우리를 연결하고, 기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색다른 조합의 여행이 만들어낸 9년 간의 시간, 그만큼 더 적립된 우리의 우정으로 이 가을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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