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대회 참석차 베트남 호치민시에 다녀왔어요.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각자의 관점과 경험을 나누며, 콘텐츠를 통한 문화 교류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귀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를 준비하면서 저는 베트남의 콘텐츠를 일컬어 ‘V-콘텐츠’라 명명하자고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그때만 해도 막연히 한국의 ‘K-콘텐츠’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생각한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베트남을 방문해 오래된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 그리고 그 위에 피어난 독특한 콘텐츠들을 접하면서, ‘V-콘텐츠’라는 말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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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콘텐츠 산업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 구조 속에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존재합니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디지털 경제의 발전과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베트남이 디지털 경제와 콘텐츠 산업, 나아가 콘텐츠 개발 분야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이루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어요.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베트남은 인터넷의 보급과 디지털 인프라 강화 측면에서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스마트폰,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워치 등 스마트 기기 보급률에서도 높은 지표를 나타내고 있답니다.
한편, 베트남의 인구는 약 1억 300만 명으로 동남아에서 세 번째로 많은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평균 연령이 33세로 노동 및 소비 연령층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로 구성된 젊은 소비층은 새로운 콘텐츠를 수용하고 확산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베트남 정부는 문화산업을 국가 성장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글로벌 OTT 플랫폼과 해외 자본의 관심 또한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베트남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도입과 역동적인 콘텐츠 소비 인구의 확장에 힘입어 문화콘텐츠 산업 발전의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음악·방송과 같은 전통적 분야는 물론, 게임 산업과 모바일 기반 플랫폼, 디지털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베트남이 가진 고유한 문화적 자산, 예컨대 풍부한 역사와 다채로운 민속 전통, 그리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창작자들의 시도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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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협업을 통한 V-콘텐츠의 품질 제고,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Mang Mẹ Đi B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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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콘텐츠 산업의 그 무궁무진한 잠재성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풍부한 문화 자산과 젊은 인구 구조, 빠르게 확산되는 디지털 플랫폼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작사와 투자자들은 베트남을 차세대 콘텐츠의 허브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나 아시아 각국의 콘텐츠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 진출을 모색하며 공동 제작이나 현지 투자 기회를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제작사들의 참여는 두드러집니다. K-콘텐츠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드라마·영화·예능 분야에서 베트남 현지 제작사와의 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공동 제작 프로젝트나 기술적 지원, 인력 교류 등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본과 기술의 유입을 넘어, 양국의 창작 역량이 결합하여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베트남 제작사 ‘Tran Thanh Town’과 국내의 ‘CJ HK Entertainment’가 공동 제작한 영화 <마이>(Mai)는 2024년 개봉하여 그해 베트남 영화 시장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한-베 합작의 가시적인 성과가 차츰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저 역시 한-베 합작의 성과를 직접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학회가 끝난 뒤 진행된 문화 탐방 시간에 호치민시 도심의 CGV 영화관을 방문하여, 학회원들과 함께 한-베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Mang Mẹ Đi Bỏ)를 단체 관람했습니다. 해외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협력하여 만든 영화를 베트남 현지의 CGV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경험은 한층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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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Mang Mẹ Đi Bỏ) 포스터 /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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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한국인 감독이 연출을 맡고 베트남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한국 배우 정일우, 고경표가 특별 출연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창작자들이 협연하여 만든 이 영화는 두 나라의 창작 역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결과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영상적인 측면에서 기술적 완성도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촬영 기법이나 화면 구성, 편집 리듬 등에서 한국 영화의 제작 노하우가 반영된 흔적이 뚜렷했습니다. 이로 인해 작품 전체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진 인상이었고, 기존 베트남 영화와 비견해서 질적 수준이 제고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해당 영화는 서사의 전개 방식이나 장르적 코드에서도 한국적인 색채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습니다. 멜로드라마의 서정성, 가족 서사에서 드러나는 정서적 공감대, 감각적인 유머 코드와 신파적 요소까지, 한국 콘텐츠의 장르적 양식이 효과적으로 접목되어 있었어요. 베트남의 풍경과 문화를 배경으로 익숙한 한국적 서사 문법이 함께 어우러져, 신선하고도 낯설지 않은 감상을 선사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한-베 합작 영화가 단순히 제작비나 인력을 공유하는 차원을 넘어, 양국의 문화적 자산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에서 주인공을 맡은 두 베트남 배우의 열연은 참으로 인상 깊었는데요. 그들의 연기는 어떤 나라의 배우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깊이가 있었으며, 특별 출연한 한국 배우들의 연기가 오히려 태평하게 보일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두 배우가 보여준 표현 예술에는 자국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치열한 긴장감이 담겨 있었고, 저는 그 태도를 통해서 V-콘텐츠의 잠재적 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K-콘텐츠 역시 이제는 안일하게 머무를 수 없으며,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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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돌아와 바로 개강에 돌입해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보냈던 시간이 아득히 먼 옛이야기처럼 느껴져 가슴 한편이 멀멀합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진 않겠지만, 제 일상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는 베트남 유학생이 참 많은데, 강의실에서 그들을 마주할 때면 언어적·문화적 차이로 인해 쉽게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이번 OT 수업에서도 몇몇 유학생들과 서먹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어요.
그때 이번 베트남 여행 이야기와 관람했던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금세 마음의 빗장을 풀고 더 많은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베트남 주전부리까지 꺼내어 챙겨주네요. 신기하고도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베트남 학술대회에서 논의했던 ‘콘텐츠를 통한 문화교류’의 현상을 몸소 체험한 느낌이었지요.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콘텐츠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요. 지난여름 베트남에 다녀온 경험이 참 잘한 선택이었음을 마음속으로 되새겨 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요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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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콘텐츠 #베트남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Mang Mẹ Đi Bỏ) #콘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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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한신대학교 인문융합대학 조교수. 영화, 공연, 방송, 연기 등을 연구해요. 삶의 미(美)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콘텐츠도, 학문도, 인간 사회도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어요. 전형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새로움과 솔직함을 추구해요. 자유를 억압하는 세상에서 참신하고, 유니크하고, 이상한 것들이 넘쳐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어요.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와 한국영화학회의 학술이사를 맡고 있고, 단편영화 감독과 공연 연출을 하고 있어요. 언젠가 나다운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림을 주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꿈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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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23년 박스오피스 국적별 점유율은 한국영화 5,984억 원, 미국영화 4,568억 원, 일본영화 1,358억 원, 유럽영화 137억 원, 중화권 영화(중국·홍콩·대만) 98억 원, 기타 33억 원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러한 집계는 극장 개봉 영화들이 아무래도 상업성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이제는 OTT를 통해 훨씬 다양한 나라의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오늘 개막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극장에서도 OTT에서도 보기 어려운 희귀하고 다채로운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더- 확대되어, 영화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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