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
7월 초에 <아이언 하트> 이야기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렸었죠. 그런데 사실은 이미 그때부터 <아이언 하트>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중에서 어떤 걸 주제로 악씨레터를 쓸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F1 더 무비>로 찾아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F1 더 무비>와 <케데헌> 중에서 어떤 걸 다룰까 고민을 했었더랬죠.
6월 말부터 넷플릭스 영화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케데헌>을 번번이 뒤로 미루었던 이유는, <케데헌>을 9월 초에 다루더라도 여전히 흥행 고공 행진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
|
오늘날 콘텐츠 산업의 구조 속에서는 예술성보다도 중요한 것이 대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날의 대중성이라는 것에는 보편성, 시대정신, 세계시민의식 같은 하위 요소들이 얽혀 들어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하위 요소들조차 플랫폼을 필두로 한 글로벌 미디어 채널의 확산 덕분에 ‘대중’의 범주가 글로벌 단위로 확장된 결과일 따름이죠. 결국 콘텐츠는 타겟 소비자들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언젠가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았던 다음 이미지가 저는 참 뜬금없이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
|
|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엄청 많은 수의 대중이 좋아해 준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넷플릭스 정도 되는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막 1위를 하고 그러면 이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흥행하는가 그 이유를 찾아보면서 콘텐츠 속의 예술성과 메시지, ‘철학’이란 것들을 발굴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 과정에서 애초 세세하게 고민하고 기획했던 감독과 제작진의 메시지와 철학이 콘텐츠 속에 예술적으로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이러면 이제 대중의 심층 ‘덕질’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죠.
<케데헌>은요, 오늘날의 콘텐츠 산업이 보여주는 이러한 향유적 특성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표본이라고 생각해요. |
|
|
기억을 돌이켜서 2024년 6월에 넷플릭스가 차기 애니메이션 포트폴리오를 처음 공개했을 때를 생각해 볼까요? ‘케이팝 아이돌이면서 동시에 악령을 퇴치하는 퇴마사로도 활동하는 걸그룹 아이돌의 양면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라는 로그라인과 한 장의 초기 설정 이미지 아트웍을 본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었지요. “이제 K-컬처라는 게 정말 갈 데까지 가는구나...”
말하자면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케데헌>을 그저 시류에 야합해서 일회용으로 뽑아 먹으려고 하는 B급 콘텐츠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외 문화소비자들은 이 초기 정보를 접하고선 ‘외국에서 K팝 아이돌을 소재로 삼아 판타지적인 설정과 버무려 만들어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스킨이었던 ‘K/DA’나 마블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인 ‘루나 스노우(설희)’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유사한 여러 시도들 중 하나’ 정도로 다소 느슨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
|
|
<케데헌>의 초기 설정 이미지 아트웍 ⓒ넷플릭스 2024
|
|
|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 걸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케데헌>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각종 기록들을 나날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6월 20일에 정식 공개된 이후 이틀 만에 넷플릭스 전 세계 영화 1위를 달성했고요, 사흘 만에 사운드트랙 미국 아이튠즈 1위 기록했으며, 열흘 만에 OST앨범 빌보드 200 차트에 8위로 데뷔했습니다. 7월 2일에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OST 두 곡이 동시에 진입했고, 7월 5일에는 ‘Your Idol’과 ‘골든’이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1-2위를 동시 석권했어요. 7월 16일에는 ‘골든’이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를 달성했고, 7월 22일에는 역시 ‘골든’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오리지널 주제가상 후보작으로 공식 출품 예정이라는 넷플릭스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7월 30일에는 <케데헌>이 ‘넷플릭스 역사상 최다 시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등극했고요, 8월 12일에는 ‘골든’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른 데 이어 8월 19일에는 <케데헌> 사운드트랙이 1996년 이후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세 곡을 진입시킨 음반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8월 25일에는 미국 영화시장에서 이틀간의 특별상영 결과 1,80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며 넷플릭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8월 26일에는 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 100 차트 톱10에 네 곡을 진입시킨 사운드트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동시에 45년 만에 처음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톱5에 세 곡이 동시 진입한 영화 사운드트랙이 되었죠. 그리고 마침내 8월 27일에는 넷플릭스 영화 부문 시청 수 역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
|
|
그리고 말이죠, <케데헌>이 이렇게 고공 행진을 하며 각종 1위 기록들을 경신하기 시작하자, 두 번째 그림으로 보셨던 인터넷 농담이 서서히 현실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메시지도 막 보이기 시작했고요, 감독의 철학까지도 느껴가면서 매기 강 감독은 전 세계 순회 인터뷰에 나서고 있죠. 초기 컨셉은 마냥 우스꽝스러워 보였던 <케데헌>에서 이제 사람들은 정말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찾아내고 그것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단지 작품에 국한된 이야기만 나누는 것도 아니지요. 많은 사람들은 지금 <케데헌> 속 소재나 배경, 갖가지 기호들에 대해 한국 전통문화 정보를 공유하며 해석하고 있고요, <케데헌>의 주제의식과 연관된 일상 속 삶의 문제들까지 이 이야기에 결부시켜서 언급하기 시작했어요. 이 모든 현상은 결국, 애초 세세하게 고민하고 기획했던 감독과 제작진의 메시지와 철학이 콘텐츠 속에 예술적으로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겠죠. |
|
|
양파처럼 수많은 이야기의 결을 가지고 있는 <케데헌> |
|
|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해 상당수의 <케데헌> 제작진이 한국계 미국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아왔던 자신들의 삶을 이 콘텐츠에 투영해 냈다고 해요. 그러면서 자신들의 뿌리인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 한국 대중문화를 아주 정교하게 이어 묶어서 ‘힙하면서도 핫해 보이는 한국 문화’라는 것을 영리하게 재현해 내는데 성공합니다(어디서 들어보니, 힙한 것은 아는 사람만 누리는 거고 핫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누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결과, <케데헌>은 이방인 정체성, 한국 전통문화, 한국 대중문화사,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현대 대중문화, 심지어 전통-현대 한국인의 생활문화사 등등이 마치 조각보처럼 아기자기하게 맞물려 들어있는 ‘이야깃거리 선물세트’처럼 향유자들에게 던져졌어요. 제작진들이 투영한 ‘한국’의 모습이 이렇다 보니, <케데헌>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요. |
|
|
몇 가지 이야깃거리들을 한 번 훑어볼까요?
첫 번째, 지난 2024년 2월에 소리(笑理) 이지이 선생님도 악씨레터에서 다뤄주셨던, “K-팝에서 K를 떼자!”는 논의와 주장이 부쩍 힘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습니다. 해외 팬덤은 점차 K-팝을 장르적으로 받아들여 가고 있는데 비해 K라는 단어는 지나친 국적성을 투사하고 있으니 이걸 제거하자는 주장이었는데요, 그런데 우리끼리 한국 안에서 논쟁을 벌이는 사이에 뜬금없이 해외에서 K팝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를 외국인들이 만들어서 외국인들이 세계적으로 즐기며 K팝과 한국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사태(?)가 터지자, 그냥 이제 K-팝은 누가 뭐래도 그저 K-팝이게 되어버렸다는 뭔가 황망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두 번째, K-콘텐츠의 경계가 부쩍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간 ‘K-콘텐츠’라면 적어도 한국인이 주도했거나, 한국인 또는 한국 기업에서 제작, 투자한 콘텐츠라는 암묵적인 경계가 있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케데헌>과 그 OST인 ‘골든’ ‘Your Idol’ 같은 콘텐츠들은 한국인이 일부 참여하긴 했지만 엄밀하게는 외국인과 외국 기업이 주도적으로 기획, 제작, 투자한 콘텐츠란 말이죠. 그런데 이 콘텐츠들은 마치 K-콘텐츠와 같이 K-팝 팬덤을 중심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져 버렸으니, 우리끼리 ‘K-콘텐츠의 조건’을 논해봐야 별 쓸모가 없어져 버렸죠. |
|
|
또, <케데헌>은 높은 가능성으로 ‘K-컬처 붐 현상을 한 단계 혁신한 시발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K-컬처나 K-콘텐츠에 있어서 한국인들은 무조건 발신자이고, 외국인들은 무조건 수신자라는 인식에 갇혀있었죠. 그런데 바로 위에서 살펴본 ‘두 번째’ 덕분에, 한국인들은 이제 ‘K-콘텐츠의 수신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특정 로컬 문화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게 되면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법이죠. 과거 일본 문화가 미국 사회에 큰 인기를 구가했을 때엔 ‘가라테’ 요소가 할리우드 감성을 만나 <가라테 키드>(1984)가 되었고, ‘닌자’ 요소가 미국적 판타지 설정을 만나 ‘닌자 거북이’(<TMNT>, 1987)가 되었고, ‘사무라이’ 요소가 할리우드 액션 감성을 만나 <킬빌>(2003)이 되기도 했죠. 프랑스 음식문화가 픽사를 만나 <라따뚜이>(2007)가 된다든지, 중국의 고전 문학과 문화가 디즈니와 드림웍스를 만나 <뮬란>(1998)이나 <쿵푸팬더>(2008)가 된다든지 하는 일들이 다 이런 식으로 벌어지는 것들일 겁니다.
지금까지 ‘한류’ ‘K-컬처’ ‘K-콘텐츠’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K-컬처 붐 현상’에서는 이같은 일들이 목격되지는 않았죠. 해외 창작자들의 한국 문화 소재화 작업은 ‘K/DA’나 ‘루나 스노우(설희)’ 등 일회적이거나 다소 마이너한 시도 정도에 그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케데헌>은 트릴로지 기획안에 언급되고 있고, <케데헌>의 인기에 자극받은 다른 여러 기획안이 분명히 안 나올리 없다는 걸 감안해 보면, <케데헌>은 ‘해외 창작자나 제작자가 한국 문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펼쳐내는 방식’의 물꼬를 연 상징적인 콘텐츠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겠습니다. |
|
|
<케데헌>을 둘러싼 이야깃거리는 이것들뿐만이 아닙니다. 민속학에 관심 있는 연구자는 잠깐 등장했던 무당들의 복식과 무구 재현의 완성도가 생각보다 너무 높다며 민속학과 <케데헌>을 잇는 연구를 할 기세이고, 한국의 초기 대중문화사에 관심 있는 연구자는 스치듯 등장했던 세 명의 다소 점잖은 여성 트리오가 ‘김 시스터즈’를 오마주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케데헌>과 연계한 김 시스터즈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민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에게서 호작도 연구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전통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케데헌>에서 재현된 전통 건축 공간들의 특성과 <케데헌>의 서사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고 부단히 목차를 짜고 있기도 합니다. 문화관광을 연구하는 분들은 <케데헌> 속에 등장한 한국의 주요 도시 공간을 관광콘텐츠화하는 연구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심지어 식물을 좋아하는 어떤 네티즌은 <케데헌> 속에 식물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분석하면서 그 식물의 이름과 학명, 꽃말 등을 그 신, 혹은 시퀀스의 내러티브와 비교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쓰기도 합니다. 정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요소가 너무나 많은 것이 이 <케데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뜬금없이 북촌한옥마을에 외국인 관람객이 몰리게 하고, 호랑이와 까치 형상을 한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념품의 해외 주문이 물밀듯 밀려들어 몇 번의 재생산을 하도록 강제하는 이런 일들이 <케데헌>을 마중물 삼아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진행 중(Ongoing)인 <케데헌>의 거대한 이슈몰이 속에, 우리들도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 이 현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 번쯤 끄적여보는 것도 솔찮은 재미를 가져다줄 것 같습니다.😊 |
|
|
#케이팝데몬헌터스 #케데헌 #KPDH #K-POP #K-컬처 |
|
|
김세익 경희대학교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트랜스아이덴티티 이론으로 MCU를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여러 대학에서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디지털 게임, 한류 등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어요. 이야기가 들어있는 여러 분야의 스토리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잡식성 스토리텔링 연구자예요.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공간, 디지털, 게임, 브랜드, 디자인 등등을 좋아하고 연구합니다. |
|
|
<케데헌>이 처음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을 때, 저희집 초등학생 둘째가 <케데헌>을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 하더니, 다 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예요!!”👍👍 그러고 나서는 보고 또 보고... 제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케데헌>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때 직감했습니다. 아, 초대박 콘텐츠가 나왔구나! 그리고 저 역시도 <케데헌>이 연령과 성별, 국적을 초월해 글로벌한 인기를 얻은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오늘의 악씨레터에서는 ‘그것이 알고싶다, <케데헌>’처럼 속속들이 파헤쳐 주셔서 궁금했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어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케데헌>! 앞으로 K-콘텐츠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Editor 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