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바람이 자주 생깁니다. 상담실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상상하게 되지요. 만약 마음이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요? 기분이 좋을 때는 몽글몽글한 흰 구름처럼 피어올랐다가, 서운하거나 화가 날 때는 까만 먹구름처럼 변한다면 어떨까요. 서로의 마음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우리는 훨씬 쉽게 이해하고, 오해도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도, 또 타인의 마음도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어요. 오직 말과 표정, 때로는 길게 이어지는 침묵을 통해서만 그 단면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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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좀 더 쉽게 이해하려는 시도들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한때는 혈액형이, 또 한때는 별자리가 대표적인 기준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MBTI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MBTI가 뭐예요?”라는 질문이 오가는 것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호기심과 함께 네 개의 철자가 정해지면 왠지 상대가 금세 파악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ENTJ라면 추진력 있는 사람, INFP라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 상대방과 어떤 관계가 될 수 있는지 조금은 예측이 가능해 보입니다.
사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유형화하고 나누는 이런 구분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우리가 늘 간직해온 마음에 대한 갈망을 반영합니다. ‘알고 싶다’ ‘쉽게 이해하고 싶다’는 기대이자 바람입니다. 때로는 관계에서 오는 충격을 줄이는 안전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상대가 차갑게 느껴질 때 “저 사람은 T라서 그래.”라고 해석하면 덜 서운해지고, 친구가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해도 “P 성향이라 그렇겠지.”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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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들었던 예시와 같이 어떤 기준을 통해 사람을 구분하면 관계가 단순해지고,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동시에 그 구분의 경계선은 우리의 기대와 해석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F니까 공감할 거야.” “J니까 철저하겠지.”라고 미리 단정하는 순간, 관계는 정해진 내 마음의 경계선 안에 고정됩니다. 예측할 수 있다는 안도감은 생기지만, 정작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만날 기회는 줄어들지요. 경계선을 넘지 못하는 관계는 그 순간 멈추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어떤 만남은 경계선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단정하려 하기보다는, 어떤 시간과 경험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왔는지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펼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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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시작은 단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내가 대신 써주거나 섣불리 상상하지 않고, 그가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머무르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얼마 전 그동안 미뤄 두었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있는 곳은 학교지만, 드라마 속 병원 이야기는 오히려 제가 그동안 바라 왔던 ‘마음을 알아가는 태도’에 대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주는 장면들로 가득했습니다. 저도 항상 저보다 어리고 어딘가에 마음두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쉽게 ‘내가 이 학생을 도와야겠다.’ 혹은 ‘나는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실패하지 않도록 끝까지 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학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 내 예상을 빗나가는 학생들을 보면서는 완벽하지 않은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내가 학생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경계선 밖에 있는 학생의 마음을 바라보는 순간 기대하지도 못한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보다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을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배려나 동정을 넘어, 그냥 그 마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문제로도, 해답으로도 보지 않고 그만의 속도로 삶을 헤쳐 나가는 존재로 존중하는 일.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 저는 이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깊은 애정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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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초등학생이 제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제 마음은 필통 안에 있어요.” 처음엔 왜 하필 필통일까 싶었지만, 학생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필통 안에 사탕이 있거든요. 기분이 나쁠 때마다 꺼내 먹으면 기분이 금방 좋아져요.”
학생의 말은 조금 엉뚱했지만, 그만큼 솔직했습니다. 그리고 그 솔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저는 아이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을 바라보기 위한 순간은 어떤 특별한 기술보다 단정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잠시 그 마음을 바라보겠다는 결심이면 충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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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주는 연습이 먼저 필요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항상 예민할까’가 아니라 ‘내가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나쁜가보다’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 마음에 들어오는 기쁨, 기대, 실망, 서운함 같은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천천히 바라보려는 나의 마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기 마음을 다정하게 대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도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됩니다. 요즘 나오는 광고의 카피처럼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자’라고 하면 다른 사람과도 더욱 믿을 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요? 저는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가 단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궁금해하는 호기심, 천천히 바라보면서 다가가는 기다림, 그리고 그 마음을 향한 다정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바라본다면 각각의 마음이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상대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누군가를 틀 안에 가두지 않고 그가 그리는 마음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겠다는 결심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요? 잠시 멈추어 그 마음을 바라보아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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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프로젝트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은 Wee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Wee’는 우리(We)와 교육(Education), 감성(Emotion)을 담은 합성어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조기에 발견하고 맞춤형 정서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어요. Wee프로젝트는 학생들이 일상적인 고민을 나누는 Wee클래스(학교), 학생 마음건강을 위한 지역 통합지원체계로의 Wee센터(교육지원청), 학업과 생활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대안형 교육기관(Wee스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교의 상담활동은 점점 ‘개별 학생의 문제 해결’에 머물지 않고, 모든 학생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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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선 충청남도서산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근무하는 전문상담교사. 충남전문상담교육연구회 회장. 마음도 안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 고민하던 중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교사들(오마보팀)과 함께 『다시, 즐거운 학교상담』이라는 책을 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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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마트워치 많이들 사용하시죠? 얼마 전 StressWatch라는 앱을 깔았더니 일정한 시간마다 HRV(심박변동성)을 측정해서 현재 스트레스 수준을 귀여운 캐릭터로 보여주더라고요. 제가 애플워치를 차고 있으면, 저희 집 둘째는 늘 제 스트레스 정도를 확인합니다. “엄마, 지금 과부하야!! 빨리 쉬어!”라며 난리가 나지요. 아마도 그 수치와 제 마음 상태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겠죠. 마음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그 마음에 다가가는 방법을 오늘의 악씨레터에서 배웠으니, 저는 오늘 제 자신에게 조금 더 다정해 보려고 합니다.💛💜(곧 개강이고 해야할 일들이 많지만, 괜찮아. 넌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다정함을 꺼낸 김에.. 구독자님들, 늘 악씨레터 옆에 깊은 애정으로 머물러 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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