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퀴어 드라마를 한편 보았는데, 이 여운이 참.. 쉬이 가시지를 않네요. 말랑말랑한 로맨스 감성이 제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 것도 있겠지만, 달라진 콘텐츠 향유 환경에 격세지감을 느낀 까닭에서 그러합니다. 퀴어 드라마 <2반 이희수>가 몰고 온 인식의 잔물결을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여러분께 좋은 드라마를 소개하는 글이 될 예정입니다. 근데 이제 삶에 대한 푸념을 조금 곁들인.. |
|
|
<2반 이희수>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알고 봐도 신기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소개 덕분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밤새 유튜브의 세계를 탐닉하고 있는데, 추천 목록에 2분짜리 드라마 하이라이트 클립이 떠 있는 걸 발견했죠. 그 영상은 주인공 ‘희수’(안지호 분)가 베프인 ‘찬영’(조준영 분)이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는 클립이었어요. |
|
|
영상에서 눈길이 먼저 갔던 것은 우습게도 희수와 찬영이 함께 놀던 장소였어요. 여담이지만 그 장소가 우리 동네에 있는 ‘호수 공원’이라는 곳인데, 제가 늘 츄리닝 차림으로 조깅하던 공간이 드라마 배경으로 나오니 신기하더라고요. 농구장이며, 보드장이며, 일렁이는 가로등 불빛까지 청춘들의 로맨스가 펼쳐지기에 꽤나 근사한 공간으로 비쳐서, 자연스레 희수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함부로 기대하게 하는 말들, 나를 함부로 설레게 하는 말들..”
찬영이의 별 뜻 없는 말에 흔들리는 희수의 모습과 그 애달픈 마음을 담아낸 내레이션을 듣고 있자니, 금세 마음 한편에 짝사랑의 애처로움이 그득하게 차오르더라고요. 사랑에 빠진 설렘에서부터 마음을 꺼내놓지 못하는 안타까움까지, 한 장면, 한 장면 희수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는 결국에 퀴어한 사랑을 향유자들에게 설득시키죠. 한 번이라도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보편의 감정을 매개로 특별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희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
|
|
제대로 설득당한 저는 그길로 드라마 전편을 몰아봤습니다. <2반 이희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퀴어적 사랑과 이성애적 사랑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역설해 줘요. 찬영이를 향한 희수의 사랑도 인상 깊지만, 사실 더 중요한 플롯은 희수를 좋아하는 ‘승원’(이상준 분)의 또 다른 짝사랑입니다. 희수의 곁을 맴돌며 그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승원의 사랑은, 이성애 관계 속 여성들이 기대하는 ‘로망’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었어요. 사랑의 대상이 희수라는 사실만 지운다면, 전형적인 이성애의 형태와 별반 차이가 없죠.
희수와 승원의 엇갈린 짝사랑은 오해를 거듭하며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는 여느 사랑의 서사와 유사한 궤도를 나타냅니다. 여기에 찬영과 그의 여자친구 ‘지유’(김도연 분)까지 얽히고설키는 독특한 사각관계를 더하며, 전형적인 로맨스 드라마의 양식을 충실히 따릅니다. 희수와 승원의 퀴어한 사랑은 짝사랑의 순수함과 헤테로 서사의 형식으로 포장되어, 자연스럽게 보편의 사랑으로 승화하게 되죠. |
|
|
궁극적으로 <2반 이희수>는 퀴어의 특수성을 흐릿하게 빼내고, 그 자리에 사랑의 보편성을 채워 넣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퀴어 서사를 펼쳐냅니다. 퀴어인 듯, 퀴어 아닌, 퀴어 같은 서사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입장과 감정을 투영하게 되고, 그렇게 퀴어한 사랑은 보편적인 서사로 완성됩니다. 퀴어가 더 많은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양상입니까? |
|
|
<2반 이희수>는 국내의 LGBTQ 전문 OTT 플랫폼인 ‘헤븐리’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데요, 이 플랫폼에서 상영하는 BL 드라마가 무려 2,000편이 넘는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퀴어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기에, 퀴어물이 이제 대중 장르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옛날 제가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에 퀴어물 한편 찍어둘 걸 그랬어요. 여기서 잠깐 푸념 좀 곁들여 볼게요. 십여 년 전, 제가 배우로 활동했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지금의 달라진 퀴어물의 위상을 더욱 체감할 수 있거든요. 그 시절 저는 퀴어물과 인연이 참 많았습니다. 공연이고 영화고, 퀴어를 다룬 작품의 오디션엔 늘 최종까지 올랐었고, 어느 감독에게는 직접 캐스팅 제의를 받기도 했죠. “내가 퀴어한 이미진가?” 진지하게 문제의식을 느낄 만큼 기회가 많았지만, 단 한편도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퀴어물의 입지가 곤궁했거든요.
물론 대학로 공연계에서는 티켓 파워가 있는 젊은 남자배우들을 중심으로 기획 공연이 성행하면서 자연스레 퀴어 서사의 부흥이 일었지만, 어디까지나 마니아층에 한정된 환대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계에선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렀고, 영화제 같은 특별한 플랫폼에서나 접할 수 있는 B급 장르에 지나지 않았죠. 퀴어물은 대중들의 인식 속엔 낯선, 아니 솔직히 말해 꺼려지는 불편한 대상이었고, 퀴어물에 출연한다는 것은 배우로서 멍에를 짊어지는 일과 같았어요.
퀴어물을 향한 대중의 인식이 부정적인 배경에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겠지만, 퀴어 서사 자체의 문제도 꽤 컸다고 생각해요. 퀴어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빠진 듯,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에 매몰되어 있었죠. 퀴어 서사의 주인공은 세상의 온갖 시련과 고난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파리했고, 숨 막히게 진지하고 어두운 톤 앤 매너는 동정보다는 피로감을 야기했습니다.
또 왜 그렇게 동성애의 섹슈얼리티에 집착하는지, 주인공들을 성애화하는 데에 열을 올렸죠. 저 역시 퀴어 영화 오디션을 볼 때마다 노출 수위나 베드신에 대한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캐스팅 제의를 받았던 단편영화를 끝내 거절했던 것도 이런 문제들 때문이었죠. 이것도 여담인데, 신기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얼마 전 그 영화도 추천해 주더군요. 재밌는 건 과거 연극을 함께 했던 동료 배우가 제가 거절했던 역할을 연기했더라고요. 호기심에 보긴 했습니다만, 금방 스킵하고 말았습니다. 퀴어 서사 특유의 멜랑꼴리와 적나라한 베드신에 숨이 막혔고, 저는 조용히 그때의 제 선택에 다시금 수긍하게 됐습니다.
이렇듯 과거의 퀴어물들은 퀴어의 차별성과 억압의 역사성을 조명하며, 보편의 정서보다는 특수한 이상을 좇는 것 같았어요. 그건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나 다름없죠. 당시에는 퀴어물의 이 고독한 노선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관련 내용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퀴어 서사에 이론적 배경을 생산하던 급진적 페미니즘의 영향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퀴어의 행복은 우리 사회가 변혁되어야 가능하기에, 퀴어 서사는 계속해서 퀴어의 불행을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해요. 불행의 불씨가 모여서 혁명의 동력이 될 것이란 이상에서겠죠. 글쎄요, 저는 어쩐지 퀴어가 더 불행해지는 허상인 것 같아서 동조할 순 없더라고요. |
|
|
<2반 이희수>는 그 옛날 퀴어물이 추구했던 퀴어성의 기호들을 보기 좋게 전복합니다. 퀴어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면서도 세상에 대한 비관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하고, 엄숙하게 무게를 잡기보다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향유자의 마음을 환기시키죠.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그 흔한 키스신 한번 없이도 퀴어한 사랑의 설렘을 만들어냅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그토록 마다하던 ‘행복 대본’ 그 자체라 할 수 있어요. 만약 그 시절에 이런 퀴어 드라마가 있었더라면, 저 역시 아마 골백번도 더 출연했을 거예요.
저는 퀴어성의 개념을 다시 한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행, 대항, 혁명, 섹슈얼리티와 같은 의미들이 퀴어성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행복, 타협, 안정, 순수처럼 그 반대편에 있는 의미들 역시 퀴어성을 이루는 또 다른 결일 수 있다고 믿어요. 어느 것이 더 본질에 가까운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형태의 퀴어성이 더 다채롭게 발현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퀴어 지향성의 의미가 세상 저 멀리까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저에게 여전히 가르침을 주시는 지도 교수님께서는 콘텐츠가 예술과는 다른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를 배웁니다. 맞아요, 콘텐츠는 가볍고, 재밌고, 새로워야 하며, 특히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대중적 코드를 품고 있어야 하죠. 저는 <2반 이희수>가 그 지향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퀴어물 팬덤에서는 이 드라마의 연출이 헤테로의 형식과 닮았다고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그러나 더 많은 대중은 바로 그 보편적 양식 속에서 퀴어한 사랑의 설렘을 발견한 듯합니다.
이제 퀴어의 사랑 이야기도 소수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닌, 모두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조금만 더 유연한 태도로 변화를 맞이해 보아요. 우리 이제 예술 하지 말고, 콘텐츠 합시다. |
|
|
이태리 한신대학교 인문융합대학 조교수. 영화, 공연, 방송, 연기 등을 연구해요. 삶의 미(美)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콘텐츠도, 학문도, 인간 사회도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어요. 전형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새로움과 솔직함을 추구해요. 자유를 억압하는 세상에서 참신하고, 유니크하고, 이상한 것들이 넘쳐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어요.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와 한국영화학회의 학술이사를 맡고 있고, 단편영화 감독과 공연 연출을 하고 있어요. 언젠가 나다운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림을 주고 싶은 것이 궁극적인 꿈이에요. |
|
|
방학의 마침표를 찍는 것 같은 광복절 연휴, 잘 보내셨나요? 초중고는 대부분 개학을 했고, 대학교도 9월 개강을 앞두고 있네요. 언제나 이쯤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곧 가을임을 느끼곤 했는데 이번 연휴에 다녀온 베트남 다낭보다도 서울이 더 더운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방학이 끝났다는 게 실감나네요. 덥긴 했어도 추억이 많은 이 여름을 놓아주기가 아쉽지만,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가오는 2학기 준비를 해야겠지요.😊 그러니 더위도 슬슬 물러가 주기를!🌬️
Editor 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