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책은 종이와 잉크로 만든 고정된 물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책은 더 이상 ‘읽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책은 이제 독자가 직접 경험하고, 반응하고, 선택하는 세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바로 인터렉티브북(Interactive Book)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렉티브북은 과연 책일까요? 아니면 게임일까요?
유네스코는 책을 “표지를 제외하고 본문 49페이지 이상의 비정기간행물”로 정의하지만, 이는 물리적 매체 중심의 틀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책은 형태보다는 지식 전달의 방식과 경험 설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독자는 이제 단순히 활자를 읽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정보를 선택하고 조작하며 반응하는 능동적 사용자로 변모했습니다. 책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형식’에 묶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책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재정의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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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렉티브북은 기존의 텍스트 중심 서사에 감각적 자극과 참여형 구조를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입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읽기’ 이상의 복합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텍스트에 터치 기능이 더해져 독자의 손길에 반응하고, 특정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이나 애니메이션이 흐르며 몰입을 도와줍니다. 독자가 선택한 경로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지기도 하고, 학습용 인터렉티브북에서는 퀴즈와 피드백을 통해 지식이 즉각적으로 강화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감정적 몰입과 인지적 참여를 이끌어냅니다. 책은 더 이상 독자의 상상 속에서만 펼쳐지는 공간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반응하는 살아 있는 세계로 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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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렉티브북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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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교육용 디지털북
페이지를 넘기면 캐릭터가 말을 걸고 문제를 제시하며 학습을 유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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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형 스토리북
영국 출판사 Wonderbly의 첫 작품인 『The Little Boy or Girl Who Lost Their Name』는 2세에서 6세 사이의 독자를 위한 맞춤형 그림책으로, 이름을 잃은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담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다양한 이름 데이터를 기반으로, 독자가 아이의 이름을 직접 선택하여 개별화된 책을 제작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Wonderbly는 이후 어린이의 주소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 그림책 『The Incredible Intergalactic Journey Home』을 출간했으며, 이 책에는 실제 집의 위성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 ‘맞춤형 서사 시뮬레이션’ 경험을 제공하는 대표 사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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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저: 원더블리 홈페이지, 재제작: (주)더콘텐츠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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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전자책
애니메이션과 함께 중국어 동요를 제공하는 전자책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익힐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텍스트, 음성, 영상이 어우러진 콘텐츠는 몰입과 학습을 동시에 실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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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쑥쑥 마음도 쑥쑥 신나는 중국어 동요』 임대근 저, 책공장 / 출처: (주)더콘텐츠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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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인터렉티브북은 중국어 동요(얼거)를 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제공함으로서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학습에 참여하며 중국어를 익힐 수 있는 콘셉트로 기획된 전자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토끼, 호랑이 등의 동물이 나오는 동요 위주로 이루어져있으며 간단한 숫자부터 동작까지 다양한 중국어 단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인터렉티브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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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형 감정 인터렉션 콘텐츠
드라마처럼 감정선에 따라 반응을 클릭하고, 캐릭터와 감정을 주고받는 방식은 스토리텔링의 감정적 깊이를 확장시키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터렉티브북은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을 넘나들며 새로운 독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게임이나 영상처럼 보이는 콘텐츠를 굳이 ‘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핵심은 형식이 아니라, 창작의 의도와 목적에 있습니다. 인터렉티브북은 지식을 전달하고, 이야기를 전하며, 삶의 관점을 제시하려는 창작자의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종이책처럼 활자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지 않더라도, 그 내용이 인간의 사고를 자극하고, 감정을 움직이며, 기억에 남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책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책은 이제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경험의 구조’입니다. 독자가 콘텐츠를 통해 몰입하고, 배우고, 감동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책입니다. 책의 본질은 정보와 감성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 방식이 달라졌다고 해서 ‘책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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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책과 게임의 중간지대에서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에듀테인먼트, 게임북, 인터렉티브 스토리텔링, 메타버스 기반 독서 플랫폼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책의 규칙과 게임의 메커니즘을 결합하여, 몰입감 있는 콘텐츠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창작자는 더 이상 ‘책’이라는 틀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고, 독자 역시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이 지점에서 책은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열린 플랫폼이자 경험의 구조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책과 게임, 교육과 놀이, 정보와 감정이 하나로 녹아드는 이 흐름은 결국 더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이제 우리는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무엇이어야만 책이 아닌가?”라는 역질문도 함께 던져야 합니다. 고정된 틀과 형식으로 책을 규정하려는 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책은 종이 위의 활자가 아닌,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 사고를 담는 그릇이며, 이야기를 매개로 한 깊은 경험의 장입니다. 인터렉티브북은 그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독서의 미래를 한 단계 더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책은 형태가 아니라 목적과 경험으로 정의됩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책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유연하고, 풍부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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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렉티브북은 단지 기술 트렌드가 아닙니다. 그것은 콘텐츠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 창작자와 독자 간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출판사가 이야기의 문을 열고, 독자는 조용히 따라 읽는 손님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독자 또한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선택하고, 반응하는 공동 창작자가 되어갑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포맷의 혁신이 아닙니다.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실천으로 답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인터렉티브북은 ‘읽기’라는 행위를 ‘경험하기’로 전환하며, 교육·예술·서사·기술이 만나는 접점을 실험하는 장이 됩니다.
만약 당신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사 구조를 상상할 때입니다. 종이책, 전자책, 게임, 영상… 그 모든 요소가 하나의 책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면, 그 책은 더 이상 매체의 이름이 아니라 경험의 이름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고자 하는가입니다. 인터렉티브북은 게임이면서 책이고, 책이면서 플랫폼이며, 플랫폼이면서 예술입니다. 당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 감동, 정보, 상상력이 독자에게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이든 ‘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책의 경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 바깥을 탐색하는 모든 창작자와 독자에게, 인터렉티브북은 새로운 시대의 지식 실험실이자 서사 실험실이 되어줄 것입니다. 당신이 만들고 싶은 세계는 책일 수도 있고, 게임일 수도 있으며 그보다 더 흥미로운, 그 어디쯤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책을 다시 상상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의 중심에, 당신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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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뉴스레터 예고:
“디지털 저작권의 미래: AI와 전자책은 공존 가능한가?”
AI 생성 시대, 전자책 콘텐츠는 어떻게 보호되고 확장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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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콘텐츠 #브랜딩 #인터렉티브북 #디지털폰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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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나 (주)더콘텐츠팩토리 대표.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 서울시 문화본부, 서울도서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여러 지역 재단 등과 함께 기관 브랜딩 및 디지털콘텐츠 기획・제작을 하고 있어요. ‘자발적 참여 문화자’를 넘어선 ‘사용자 경험’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시길(sigil)로 전자책 만들기』 『코딩을 몰라도 누구나 쉽게 내펍으로 나만의 전자책 만들기(공저)』 책을 출간했고, 시민대학, 50플러스센터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카드뉴스 기획・제작, 전자책 강의를 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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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악씨레터는 책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어디까지를 책으로 인정할지는 여전히 고민거리입니다. 물론 활자 없이 그림만으로 구성된 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은 활자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활자를 읽는 행위가 사라져도, 그것을 책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구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앞으로 책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요?📖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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