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우리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일로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매일 조금씩 조율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과 친구, 동료 사이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간격을 재며 살아가고, 그 안에서 때로는 한 걸음 더 다가서서 따뜻함을 나누고,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숨을 고르기도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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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곳. 경험으로 서로의 거리를 점점 알게 되는 곳.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는 어쩌면 관계 속 거리감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는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거리를 줄였다 늘리며 하루를 견디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미래를 위한 관계의 연습을 이어갑니다. 교사들은 그 연습의 상대가 되어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뜻하지 않게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교실이 교사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것도,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처럼, 사람 사이의 거리도 멀리서 보면 사소한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안에 숨은 불안과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는 이 거리의 균형이 더욱 중요합니다. 교사가 너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없고, 반대로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교사도 학생도 쉽게 지치게 되니까요.
비단 교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우리가 한 공간 안에서 오랜 시간 서로와 닿아 있다 보면, 한없이 좋기만 한 관계는 아마 없을 거예요.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레 고마움도, 서운함도 마음속에 함께 쌓이게 마련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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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오래 지내는 관계일수록, 마음에도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자리에 머물 수 있다면, 관계는 좀 더 오래, 그리고 안전하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마음의 기술이 하나 있다면, 저는 그것을 ‘바라보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바라보기’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정서적 거리를 지혜롭게 조율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태도입니다. 관계를 믿을 수 있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작고 단단한 기술이지요.
사실 ‘바라보기’는 마음챙김의 기술 중 하나인 ‘관찰하기’를 제 나름대로 명명한 것입니다. ‘관찰하기’란 현재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기술입니다. 판단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생각이 스쳐 가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라보기’란 마치 창문을 닦아 그 너머의 물체를 들여다보는 일과 같아서 지금 내 안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더 또렷하게 알아차리도록 해줍니다.
하지만 바라보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과연 그게 쉽게 될까요? 누군가의 날이 선 말투, 무심한 행동 앞에서 그저 바라보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감정이 얽힌 순간일수록 ‘바라보기’는 더 힘들고, 바라보지 못하는 사이 작은 갈등이 큰 오해가 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오해는 어느새 조심스러움으로 바뀌어 관계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감정에 휘둘릴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합니다.
‘아, 지금은 마음돋보기를 꺼낼 때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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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중심이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돋보기를 꺼낸다는 상상을 하면, 마치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떨어진 듯한 여유가 생기곤 합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상대의 말투나 표정 속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마음의 결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 감정의 파도도 천천히 잦아듭니다.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돋보기를 꺼내야 하는 날도 있고, 꺼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땐 그런 나를 너무 나무라지 않으려고 합니다. 관계는 언제나 완성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바라보려는 연습을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바라봄 속에서 나와 너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안전한 존재가 되어가는 방식이라는 걸, 저는 교실에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다시, 즐거운 학교상담』을 쓰며 떠올린 마음의 기술에 대한 단상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결국 교실이란 공간은,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가장 안전해진다는 믿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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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돋보기 #바라보기 #마음챙김 #믿을만한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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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선 충청남도서산교육지원청 Wee센터에서 근무하는 전문상담교사. 충남전문상담교육연구회 회장. 마음도 안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 고민하던 중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교사들(오마보팀)과 함께 『다시, 즐거운 학교상담』이라는 책을 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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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관계 속 거리의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예전 관계의 문제로 고민하던 때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손잡이가 어느 쪽에 달려있는가에 관한 건데요. 마음의 문 혹은 나의 개인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문의 손잡이쯤 될 것 같아요. 손잡이가 안쪽에 있다면, 자신이 원할 때 열고 닫을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손잡이를 바깥쪽에 달아놔서 다른 사람이 언제든 열고 들어올 수 있다는 거였어요. 누구든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의 영역을 침범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불쾌하겠어요. 근데 그게 다른 사람의 탓만은 아니라는 거죠. 내가 손잡이를 바깥쪽에 달아놨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저 역시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더라고요. 손잡이를 안쪽으로 옮기는 데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 이후로 훨씬 더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어요. 구독자님은 손잡이가 어느 쪽에 있나요? 오늘의 악씨레터의 ‘마음돋보기’를 통해 그때의 손잡이가 생각났어요. 저도, 마음돋보기-기꺼이 꺼내어보려 합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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