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 악씨레터가 마무리되었어요. 저희 뉴스레터는 문화콘텐츠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구독자님께 전하고자 꾸준히 고민해 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시대, 리터러시는 더없이 중요한 역량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의 감각. 악씨레터가 그 감각을 일깨우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주부터 시작될 9기 레터에서도, 새로운 시선과 사유를 담아 찾아뵙겠습니다. 악씨레터를 즐겁게 읽어주시는 구독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시 보고 싶은 레터는 아래에서 발행된 날짜(ex. Vol.3 No.13 2025.4.9.)나 제목을 클릭해 보세요. 바로 연결됩니다.💌 |
|
|
박성준
문화콘텐츠학 박사로, 한국외대, 한성대, 용인예술과학대에서 플랫폼, 웹콘텐츠, 웹소설, 영상비평, 윤리학, 글쓰기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문화콘텐츠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경향성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연구 테마는 플랫폼, 웹소설, 대중성, 세대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플랫폼, 키치를 주제로, 문화콘텐츠 생산과 향유 문화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대중들의 삶과 일상에 관심을 가집니다. |
|
|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세계관을 “크툴루 신화”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설정을 “그레이트 올드 원(Great Old Ones)”이라 칭했고, 인간 이성과 과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우주적 공포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신’은 인간의 신앙이나 윤리를 초월한, 이해 불가능한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창조한 이야기들은 '신화'라기보다는 ‘우주적 허무주의(cosmic nihilism)’의 문학적 구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그의 소설은 사실 재밌지 않았습니다.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 즉 우주적 공포를 다룬 그의 이야기 속에는 영웅도 없고, 극적인 스토리텔링도 없습니다. 주인공들은 광기에 빠지거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이 다루는 것은 인간이 결코 대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이러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소설적 재미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계관으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
|
|
원래 크툴루 신화는 인간이 감히 이해하거나 맞설 수 없는 초월적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허무, 즉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를 핵심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계관이 한국 대중문화, 특히 웹소설이나 웹툰과 같은 플랫폼 기반 장르 콘텐츠에 수용되면서 중요한 변용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포’와 ‘무력함’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그 공포를 극복하고 오히려 ‘강자’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가 중심이 된다는 점입니다. |
|
|
특히 웹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크툴루 신화는 단지 ‘참조되는 소재’나 ‘공포스러운 배경’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서사 구조, 캐릭터 설계, 독자와의 상호작용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 걸쳐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생검신>은 루프 구조를 활용하여 크툴루 신화의 ‘반복되는 광기’와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무협이라는 동양 장르 안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문화 혼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명 중심의 존재 표상을 통해 독자에게 상징을 통한 해석의 공간을 열어주며, 신화의 데이터베이스화된 소비 구조 안에 크툴루 신화의 외부신을 전략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신화 속 무법자>는 하스터와의 거래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크툴루 신화를 기존 신화 체계의 틈에 개입시키는 서사 전략을 구현함으로써, 신화의 위계를 전복하는 힘으로 사용합니다. |
|
|
김효민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강사.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 특히 웹콘텐츠를 중심으로 말과 이야기, 감정과 정체성의 흐름을 연구합니다. 번역과 문화정책 등 언어와 사회를 연결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콘텐츠와 언어, 사람 사이를 천천히 유동(遊動)합니다. |
|
|
이러한 웹소설의 클리셰는 단순한 상업 전략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의 정서에 반응한 결과입니다. 현실에서 좌절하고 실패하며 고군분투하는 독자들에게 웹소설은 단 몇 줄 안에 통쾌함과 감정 보상을 안겨줍니다. 그것이 바로 클리셰의 역할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구조 안에서, 익숙하게 위로를 얻는 것. 이것은 피로한 세대가 선택한 콘텐츠 향유 방식이기도 합니다. |
|
|
삶은 본래 예측 불가능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Πάντα ῥεῖ(Panta rhei, 판타 레이)”, 즉 ‘모든 것은 흐른다’는 말로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진실로 보았고, 세상의 본질은 멈춤이 아닌 흐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모든 것은 흘러갑니다. 우리는 자꾸만 ‘정해진 답’이라는 틀을 갈망하지만, 알다시피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 위에 어떤 선택을 세울지는 나의 몫입니다. 우리는 선택하는 존재이고, 그 선택이 곧 나를 만들어갑니다. |
|
|
버추얼 아이돌이 ‘진짜’처럼 느껴지기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딥페이크, 데이터 유출, 실연자 교체 같은 문제는 단지 기술의 오류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명확한 계약이 부재한 데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지속 가능한 가상 서사를 위해서는 새로운 윤리적 틀이 필요합니다. |
|
|
박석진
중국근현대사 공부를 통해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와 사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에서 ‘유동하는 경계’를 키워드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다양한 경계를 들여다보고 있고,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에서 학생들과 중국에 대해 수업하고 있습니다. |
|
|
혐오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혐오하는 주체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은 언제든 필요에 따라 선택될 수 있습니다. 혐오는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게 된 사회의 구조적 조건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혐오의 대상은 누가 될까요. 지금 필요한 것은 혐중을 우리 사회 모두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혐오를 선동하고 또 이에 호응하는 우리 사회의 조건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
|
|
그 옆에 있는 무연고자 위령탑은 일본에 강제동원되었다가 결국 고국으로 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사망한 조선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으로, ‘평화기원’이라는 글과 함께 한반도 지도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평화와 통일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가는 한국의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절 안쪽에는 일본의 다른 절과 다름없이 꽤 큰 규모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묘비만 봐도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통국사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일본에서 잊히고 지워지기 쉬운 존재들을 묵묵히 기억해가는 공간이었습니다. |
|
|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장시간 노동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닙니다. 2016년부터 유행한 ‘996근무제’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에 12시간 주6일 근무라니요! 정말 살인적인 노동조건입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 요즘에는 ‘896근무제’(오전 8시~밤 9시, 주 6일)가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이 직원들에게 ‘896근무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007근무제’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 24시간, 주 7일 근무를 의미하는 자조적 표현으로, 퇴근 후에도 업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한 말입니다. |
|
|
<귀궁>은 한국 전통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제의문화와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하기 위해 이무기, 악신, 한, 복수, 팔척귀와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 한국적 세계관이 살아 있는 서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어요. 또한, 정서적 몰입감을 유도한 ‘궁’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에도 주목해 볼 만합니다. |
|
|
<모-던 인물史 미스터.리> 📝박진후 악씨레터 3기 필진
|
|
|
해당 방송은 그동안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다양한 인물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게 해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관념에 유격을 냅니다. 정보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성향의 패널을 초대한 것도 이 방송의 특징입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조카까지. 이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전하는 인물들의 비화를 듣는 것이 이 방송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
|
|
신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작가의 믿을 수 없는 데뷔작이라고나 할까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을 풍자하고 담아내면서 참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때론 시트콤처럼, 때론 드라마처럼 펼쳐냅니다. 한 컷 한 컷, 한 에피 한 에피마다 후루룩 넘기는 것이 아까워서 한동안 머물며 곱씹게 되는 장면들이 많은 고퀄리티의 작품이에요.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좀비물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수작이라고 생각되는, <위아더좀비>는 단행본이나 웹툰 유료결제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외형적으로는 액션과 공포라는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만, <부산행>에는 그 이상의 사회적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좀비는 분명 공포의 존재로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진짜 두려움은 괴물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배제의 태도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고, 공동체보다 개인의 안위를 앞세우는 선택들이 반복될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누가 더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사는 단순한 장르적 쾌감이 아니라, 인간성과 공동체 윤리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로 이어지며 <부산행>을 좀비 장르를 넘어서는 사회적 텍스트로 만들어줍니다. |
|
|
<역대급 영지 설계사> 📝정원대 악씨레터 4기 필진
|
|
|
무엇보다 이 웹툰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간접적으로 내포합니다. 낙후된 시스템 혁신, 기존의 귀족제와 권력 중심 구조를 와해, 새 질서를 세우는 과정은 오늘날 사회 개혁과 리더십의 문제, 나아가 기술과 공공성의 관계에 대한 함의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역대급 영지 설계사>는 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회학적인 문제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이죠. 독자들은 로이드가 영지를 재건하는 과정을 보며 단순한 통쾌함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의 시스템과 구조, 개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
|
<2025 서울국제도서전> 📝권애영 악씨레터 5기 필진
|
|
|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믿을 구석-THE LAST RESORT’입니다. 감정, 경제, 정치 등 삶 속에 닥치는 고난과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집단의 노력을 조명하고, 그 해법을 책에서 찾아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만큼이나 각기 다를 ‘믿을 구석’이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국제도서전을 통해 지치고 힘든 일상이지만 그래도 등을 기댈 수 있는 나만의 ‘믿을 구석’을 떠올려 보고, 다른 이들의 ‘믿을 구석’은 과연 무엇인지 살며시 들춰보시겠습니까? 같이 나눠봐요, 우리의 ‘믿을 구석’이 무엇인지! |
|
|
<2025 레드벨벳 아이린&슬기 콘서트 투어 밸런스(BALANCE)>
📝양인화 악씨레터 5기 필진
|
|
|
레드벨벳 아이린-슬기(이하 ‘아슬’)의 콘서트가 지난 6월 14일과 15일에 올림픽홀에서 열렸습니다. 그룹 전체가 아닌 유닛으로 한 첫 콘서트라 기존 레드벨벳 콘서트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습니다. 아이돌 팬 사이에서는 콘서트 날짜별로 선호도가 다른데요, 콘서트가 3일인 경우라면 보통 마지막 날인 ‘막콘’이 가장 인기 있고 그 다음이 첫날인 ‘첫콘’, 그리고 가운데 날인 중콘 순이 됩니다. 물론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공연을 보는 ‘올콘’이 제일 좋겠지만요. 저도 일반적으로 “콘은 막콘”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지만 이 경우는 첫 번째 콘서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았습니다. |
|
|
영화 <승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조훈현의 대사는 “승부의 세계에서 일류가 못되면 서글픈 거다.”입니다. 맞습니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일류가 못되면 정말 서글픕니다. 일류가 아니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로 느껴지며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내려갑니다. |
|
|
<진흙발의 오르페우스> 📝김원 악씨레터 6기 필진
|
|
|
예를 들어 ‘유모’란 단편은 아이 돌보미 로봇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격투 기능을 몰래 넣은 로봇회사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로봇들끼리 밖에서 서로 격투를 펼치죠. 그 모습을 본 로봇 주인들은 아이 기를 살릴 수 있게 더 강한 최신형 로봇을 구매합니다. 원작이 따로 존재하는 <리얼 스틸>과 닮았죠. ‘무한자’같은 이야기는 진화 광선에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요. 진화의 끝에 대한 시선도 흥미롭죠.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어떻게 될까? 이야기에서는 일종의 투명한 영혼 같은 상태가 된다고 말해요. 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에너지-정보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처럼 정보화된 코드로 진화한 인간이라면 네트워크 여기저기를 흘러 다니는 <트랜센던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주 공간을 흘러 다닐 수도 있겠지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