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사조사’라는 게 있어요. 고전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시대 상황에 따라 형성된 일종의 문예적 흐름을 말하죠. 그런 것처럼 어느 시대에 속해 있는 작가상은 확실히 전형적 측면이 있습니다. 요즘이야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기를 하며 깔끔하게 다림질된 셔츠를 입고 창작을 하는 작가 모습이 일반적이지만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자, 1900년대 초중반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뭐가 떠오르나요?
일단 정신상태는 신경증, 우울증 등을 갖고 있어야 하겠죠.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이력은 필수고, 자유로운 연애와 파혼, 신체적 병증으로 쇠약해진 몸, 또 다른 것은? 아마 가난일 수도 있고, 또는 죽음과 연관된 과거의 상처, 불운한 가족사도 꼽을 수 있겠죠. 그런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기에 다작을 했겠죠?
정답입니다. 1900년대 작가의 전형적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필립 K. 딕이라고 하는 작가의 삶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이해하신 겁니다. 놀랍죠? 어찌 보면 특정한 이름을 가진 인간 개체에 대해 파고들면 그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고, 문예 사조의 흐름을 알 수 있을 듯 싶지만 정반대예요. 거대한 시대정신을 역산해 올라갈 때, 개체일 땐 알 수 없던 패턴이 드러나요. 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죠.
“작가는 돋보기로 관찰할 땐 두드러져 보이나, 망원경으로 볼 땐 평평하다.”
평평하다는 게 작가의 개성이 그렇단 걸로 오해하면 곤란해요. 도리어 1900년대 작가적 삶의 패턴에서 위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마치 고원처럼 평평하다는 뜻일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필립 K. 딕은 할리우드 SF영화에 수많은 이야기 원천소스를 공급해 줬어요.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이 된 것은 물론 <매트릭스>나 <트루먼 쇼> <인셉션> 등 수많은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으니까요. 지금 읽고 있는 ‘진흙발의 오르페우스’ 단편집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많이 봐온 영화를 떠올리게 해요.
예를 들어 ‘유모’란 단편은 아이 돌보미 로봇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격투 기능을 몰래 넣은 로봇회사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로봇들끼리 밖에서 서로 격투를 펼치죠. 그 모습을 본 로봇 주인들은 아이 기를 살릴 수 있게 더 강한 최신형 로봇을 구매합니다. 원작이 따로 존재하는 <리얼 스틸>과 닮았죠. ‘무한자’같은 이야기는 진화 광선에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요. 진화의 끝에 대한 시선도 흥미롭죠.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어떻게 될까? 이야기에서는 일종의 투명한 영혼 같은 상태가 된다고 말해요. 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에너지-정보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처럼 정보화된 코드로 진화한 인간이라면 네트워크 여기저기를 흘러 다니는 <트랜센던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우주 공간을 흘러 다닐 수도 있겠지요.
최근 필립 K. 딕 단편을 집어 든 이유는 대학 때 좋아해서, 아마 50번은 봤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가이기 때문이에요. 그는 디스토피아를 재능 있게 묘사한 작가였던 만큼 젊은 시절 제 감성과 맞는 부분이 있었던 듯합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를 내세운 ‘타이렐 사’의 복제인간처럼, 누가 인간인지가 아니라 더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지 모호한 세상이라 느꼈으니까요.
지금도 간혹 그때 생각이 납니다. 비가 내리는 서울의 잿빛 마천루, 타지에서 유학 온 대학생이 빗물 비린내를 맡으며 어두컴컴한 비디오 방에서 블레이드 러너를 보는 모습. 이상하게도 그건 제 기억이 아니라 제삼자가 내려다보는 듯한 광경으로 인식되었다는 것.
저란 인간도 멀찍이서 바라보면 매우 평평한 어느 지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이미 알았던 거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