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씨 뉴스레터 Vol.1 No.9 2023.10.4. |
|
|
‘콘텐츠’는 이제 누구나 편히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저는 “도대체 콘텐츠가 뭐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했습니다. ‘콘텐츠’라는 말이 생소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사람들이 ‘콘텐츠’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어서 자주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여기저기서 쓰다 보니, 익숙해진 거죠. 예를 들면 우리가 ‘핸드폰’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어서 그 말을 쓰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
|
|
1995년부터 사용된 ‘콘텐츠’
‘콘텐츠’라는 말이 지금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95년쯤입니다. 신문 기사를 모아놓은 ‘빅카인즈’를 검색해 보니 1995년 7월 3일 <전자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
|
|
한글과컴퓨터、핸디소프트、LG소프트웨어、퓨처시스템 등 SW 전문4사가 국산 SW산업의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 전문4사가 최근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제품은 그룹웨어、사용자인터페이스、프로토콜、게이트웨이 등 네트워크솔루션과 스프레드시트 등 사무용패키지, 각종 콘텐츠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 또 콘텐츠류의 경우 우리 정서에 맞는 주제 및 지적호기심이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한국이동통신의 서정욱 사장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콘텐츠란 통신망이나 방송망을 통해 주고받는 ‘정보내용물’을 총칭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콘텐츠는 처음에 정보통신산업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디지털콘텐츠’가 콘텐츠의 본류라는 생각은 바로 여기서 비롯합니다. 여기에 대응하여 ‘문화콘텐츠’라는 말이 널리 쓰이면서, ‘아날로그콘텐츠’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이어지지만요. |
|
|
‘콘텐츠’는 당연히 영어의 ‘contents’에서 온 말입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내용’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쓰면, 추상명사라서 복수형을 쓰기가 어려워 ‘content’라는 단수형으로 자주 씁니다. 물론 복수형을 쓸 수 없는 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인 ‘내용물들’을 말할 때는 ‘contents’를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쓰임은 드뭅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콘텐츠 초창기에는 이걸 우리말로 ‘콘텐트’로 써야 하느냐, ‘콘텐츠’로 써야 하느냐, 논쟁도 있었습니다. 정부는 2001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지금의 한국콘텐츠진흥원)을 세우면서 ‘콘텐츠’를 공식 이름에 사용하지요. 이 때문인지 ‘콘텐츠’가 훨씬 더 우위를 차지해서 요새는 거의 모두 ‘콘텐츠’라고 씁니다. |
|
|
‘콘텐트’ 고집하는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여전히 ‘콘텐트’를 고집합니다. 아마도 영어 단어에서 ‘콘텐츠’라는 복수형 쓰임이 많지 않고, 우리가 지금 ‘콘텐츠’라고 쓰는 말은 대부분 셀 수 없는 명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콘텐츠’는 더 이상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에 들어와서 매우 짧은 시간에 한국어가 돼 버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손과 전화를 나타내는 ‘핸드’와 ‘폰’이 결합해서 한국어 ‘핸드폰’이 태어난 것처럼요. 영어로는 ‘핸드폰’을 ‘핸드폰’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
|
|
‘콘텐트’ 표기를 고집하는 <중앙일보> / 2023년 9월 26일 ‘브루노 마스’ 관련 기사
|
|
|
우리가 지금 ‘콘텐츠’라고 쓰는 말의 영어는 ‘creativity’ ‘creative industry’가 가장 가까울 겁니다. 그런데 거꾸로 한국어에 들어온 ‘콘텐츠’가 영어로 다시 수출되어 요즘에는 ‘content industry’라는 말도 심심찮게 쓰입니다. ‘콘텐츠’가 이미 한국어라고 생각하면 영어의 단수, 복수의 쓰임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요. 가끔 ‘콘텐트’라는 말을 보고 있으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언중이 선택한 말을 두고 굳이 뭔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
|
|
‘콘텐트’는 단일 생산물, ‘콘텐츠’는 산업과 유통 체계
물론 ‘콘텐트’를 변명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는 기획-투자-제작-배급-유통-향유의 과정을 거치는 산업입니다. ‘콘텐츠’가 이 전체 체계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제작된 결과로서의 생산물이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캐릭터 등등으로 구현되는 구체적인 생산물 하나하나를 설명할 필요도 있지요. 이럴 때, 단일하고 구체적인 생산물 하나를 가리킬 때 ‘콘텐트’라고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전체나 복수를 나타낼 때는 ‘콘텐츠’로 쓰고, 부분과 단수를 나타낼 때는 ‘콘텐트’로 써 보는 거죠.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그 또한 영어의 용례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택입니다. 그렇지 않고 전체든 부분이든, 복수든 단수든 ‘콘텐츠’로 쓴다면, ‘Contents’와 ‘contents’처럼 대문자와 소문자로 나눠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때때로 부분으로서 단일 생산물을 나타내는 ‘콘텐츠’라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는 어떤 말이 더 정확한가라는 기준보다, 어떤 말이 더 편리한가라는 언중의 선택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콘텐트’와 ‘콘텐츠’ 사이에서 고민이 거듭되는 까닭입니다. |
|
|
#콘텐트 #콘텐츠 #문화콘텐츠 #중앙일보 #content #contents
|
|
|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중국영화, 아시아 대중문화(한류), 문화콘텐츠 담론, 문화정체성과 스토리텔링을 공부하고 있어요. 인간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유동한다는 생각으로 ‘트랜스아이덴티티’ 담론을 통해 세상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관심이 많아요.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장,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조직위원장, 한국외대 대만연구센터장/융합인재연구센터장, 한국영화학회 부회장 겸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최근 《착한 중국 나쁜 차이나》, 《문학윤리학비평》(공역), 《중화명승》(공저), 《문화콘텐츠연구》, 《한류, 다음》(공저), 《중화미각》(공저), 《한국영화의 역사와 미래》(공저), 《세계의 영화, 영화의 세계》(공저) 등의 책을 출판했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쾌인쾌사: 중국인물열전’,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에 참여했어요. |
|
|
오늘의 악씨레터는 여기까지
💻📰
가끔 ‘콘텐트’로 표기한 글을 보면, 잘못 썼네! 생각만 하고 ‘콘텐트’와 ‘콘텐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네요.😅 정말 유익한 악씨레터!!😄😎
급속히 부상한 ‘콘텐츠’라는 용어를 보며,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할 키워드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떤 키워드가 있을까요? 피드백으로 키워드 하나씩 남겨주세요. 추첨을 통해 악씨의 에코백🛍️을 선물🎁로 보내드릴게요.
키워드 남기러 피드백 작성 gogo~!!
|
|
|
사단법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siacci@naver.com서울시 종로구 난계로 259, 602호(숭인동, 경일오피스텔)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