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음악의 3대 성악 장르는 바로 판소리, 민요, 정가입니다. 그중 판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창자(唱者)와 북을 연주하는 고수(鼓手) 2인이 함께 연행하는 예술 장르입니다. 판소리는 공연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죠. 이번 레터의 주제는 판소리 공연에서 노래하는 창자와 함께 북을 치는 ‘고수’입니다. 그리고 저는 고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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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국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물놀이’였습니다. 중학교에서 우연히 사물놀이 수업을 듣게 되었고, 선생님의 초대로 서양 오케스트라와 사물놀이의 콘체르토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협주곡이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웅장한 스케일과 그 연주를 뚫고서 섬세하게 연주되는 사물놀이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방과 후 매일 같이 선생님 연습실에 찾아가 열심히 장구를 공부했습니다. 울산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울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사물놀이의 창시자 김덕수 선생의 모교인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현재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이하 국악예고)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 연습하다가 흠뻑 젖은 땀 때문에 하루에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을 정도로 매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수석으로 입학, 서울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악예고는 매년 예술제를 국립국악원 예악당(대극장)에서 공연을 합니다. 입학하던 해에 타악 전공 전체 40명 정도가 판소리 없이 소리북으로만 공연하였습니다.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데 저는 입학하자마자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북과 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술제의 공연 프로그램은 늘 고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첫 공연을 소리북으로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작품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이 지금의 제 스승님이십니다. 그때 저를 유심히 보셨는지 산공부(산에 들어가서 연습하는 일종의 뮤직 캠프)에 가지 않겠느냐 제안하셨고, 그렇게 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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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주요한 역할은 바로 소리꾼이 소리판을 잘 끌고 갈 수 있도록 보필해 주는 것입니다. 음악적으로 북을 안정감 있게 연주하는 것은 물론, 관객과 소리꾼을 직접적으로 연결해 주기도 하고, 간혹 가사를 까먹으면 가사를 불러주기도 하고, 때로는 춘향이가 되기도 심청이가 되기도 하면서 창자의 상대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옆에서 박자를 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소리판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출연자인 셈입니다. 국악에서 고수의 역할은 비단 음악적인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창자와 연주자의 심리적인 멘토이자 코치가 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고수가 두 명의 명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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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와 류승룡이 출연한 영화 <도리화가>에서 고수가 창자를 리드하여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고수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얼씨구!”와 같은 추임새로 창자를 격려하는 동시에 함께 무대를 꾸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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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에게는 크게 두 가지 소양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바로 ‘소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이해한다는 가장 기본적으로 소리꾼이 부르는 소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북을 ‘잘’ 쳐야 합니다. 실제로 국악계에서는 판소리 전공자가 고수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판소리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고수와 다른 이유는 바로 북을 치는 테크닉의 능수능란함에 있습니다. 물론 기술적으로 북을 잘 치는 소리꾼도 있지만, 하지만 선대의 인간문화재들이나 고수로 이름 날린 분들의 북을 보면 그들은 확실히 북을 ‘잘’ 치는 즉 테크닉 역시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판소리 반주법인 고법은 엄청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북’이라는 악기를 이용해서 판소리 다섯 바탕의 수많은 노래를 반주하기 위해서, 또 엄청난 기간 동안 예술가들의 공력이 담겨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의 박자를 이해하고, 선율과 가사의 맥락을 파악하고, 창자의 호흡을 읽어내며 무대를 이루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예컨대 메트로놈 비트에 딱 맞춰서 연주하는 대중가요에 비해서 판소리의 박자는 매우 자유롭습니다. 소리북의 타점이 매우 여백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박자는 있지만, 여백을 두는 것은 그 여백 속에서 소리꾼이 마음대로 박자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없이 늘였다 줄였다 한다면 그것은 또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고수가 박자를 적절하게 조율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수는 리허설과 본무대에서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리허설에서는 박자를 잡아주고 본 공연에서는 연주자가 실수를 하더라도 전혀 티가 나지 않도록 연주자의 호흡에 맞추어 공연을 완성시킵니다. 따라서 소리꾼과 고수가 서로 장단이 잘 맞기까지는 오랜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침내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나면 소리와 북의 음양 조화를 생각하는 ‘음양북’이라는 단계, 또 나가아 소리의 이면까지 그려내는 단계까지 남아있습니다. 소리가 표현하는 바를 북이 함께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소리꾼이 새가 날아가는 소리 흉내 내면 북을 치는 모양 역시 새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을 흉내 내면서 치기도 합니다. 가사에 “내려간다”라는 가사가 있다면 북을 윗부분을 치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칩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경우의 이면을 그리는 방식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모두 알고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고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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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의 매력은 동양의 산수화와 비슷합니다. 여백의 미를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없는데 있고, 있는데 없다.” 고수가 무대의 주가 되어서는 좋은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고수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 내가 북을 쳐야 하는지 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명고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끝으로 고수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추임새’입니다. ‘잘한다!’ ‘좋다!’처럼 연주자를 격려하거나 칭찬하는 의미도 있고, ‘그렇지’, ‘하믄(암만)’처럼 창자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에 공감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 추임새입니다. 가령, 너무나 슬프게 흐느끼는 장면에서 ‘얼씨구!’하고 힘차게 고수가 추임새를 한다면 그 고수는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즉, 총감독이자 지휘자이자 연주자 역할까지 겸하는 고수이기 때문에 “1고수 2명창” 외에도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악씨레터에서 이번에는 저의 이야기를 통해 국악 콘텐츠에서 중요한 고수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럼 구독자 여러분을 위해서 힘찬 추임새로 이만 갈음하겠습니다. “악씨레터 얼씨구!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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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에서 타악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마쳤어요. 그리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글로벌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박사를 수료했습니다. 국악 타악은 물론 드럼, 라틴타악기 등의 세계 타악기를 부전공했고 가야금 지도자 자격증도 있으며 군악대에서는 해금 연주자로 활약하였습니다. 현재는 국악의 전당 대표로서 국악 아카데미와 유튜브 채널 <국악의 전당>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국악 부문 대의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 출강 중이며, 전통음악과 콘텐츠에 대한 강의 및 연주를 해오고 있습니다. 국악에 반해 반평생 국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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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악씨레터에서 소개된 고수는 鼓手이지만, 高手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배우가 가장 먼저 보이지만, 그 뒤에는 뛰어난 감독이 있듯이, 책은 온전히 작가의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편집자가 있듯이, 판소리에서도 고수는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그 존재감은 무엇보다 중요하단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고수 김영진 선생님의 힘찬 외침과 함께 악씨레터도 좋은 글로 여러분 곁에 스며들겠습니다! “악씨레터 얼씨구! 좋~~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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