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배경지식에 따라 영화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영화 <파묘>는 2024년 상반기 한국 영화 최종 관객 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죠. 그중 많은 관객은 <파묘>를 반일 영화로 보고 있어요. 정작 <파묘> 영화감독과 주연 최민식은 이에 동의하지 않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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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화 <파묘> 포스터, (우)영화 속 친일파 파묘 장면 / 출처: 쇼박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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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일 관점은 어릴 때부터 역사 교육을 받아온 영향 때문이겠죠. 한국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친일과 반일 프레임 두 개뿐인 경우가 많았고, 이 중에 한 선택을 은근히 강요받아 왔어요. 이 때문에 영화를 볼 때도 이 관점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만일 우리가 역사 외에도 다른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파묘>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느낄 텐데요. 특히 동양사상이 깊게 스며든 영화 <파묘>를 오행이라는 렌즈로 보면 훨씬 더 많은 것이 보여요. 그럼 <파묘>를 오행으로 한번 해석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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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에서 최민식이 오니를 쓰러뜨리는 최후의 결정적 장면에서 “물은 불을 이기고 젖은 나무는 쇠보다 질기다”라는 말을 해요. 실제로 수기가 강한 겨울에 물(水)먹은 통나무(木) 옆면을 도끼(金)로 찍으면, 나무가 베어지기는커녕 맞은 부분이 오히려 압축되고 더 단단해져요. 반면 여름에 메마른 통나무 옆면을 도끼로 찍으면 퍽퍽 잘 베어지죠.
그 이유를 오행의 생과 극으로 설명해 볼 수 있어요. 목화토금수 배열에서 한 칸 차이는 생, 두 칸 차이는 극을 뜻해요. 예를 들어 생은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이죠. 반면에 극은 목극토, 화극금, 토극수, 금극목, 수극화입니다.
이 규칙을 적용하여 위 대사를 해석해 볼게요. 금은 목을 극하는데, 이 둘 사이에 수가 개입하면 아래 그림처럼 금생수와 수생목 관계가 이루어져요. 그래서 금이 힘을 쓸수록 수를 생하고, 이렇게 힘을 받은 수는 목을 생하죠. 이렇게 쇠는 젖은 나무를 오히려 생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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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을 적용하면 반일 친일 프레임에서 벗어나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어요. 얼핏 보면 최민식이 말한 목은 한국이고 금은 일본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양국 간 대결 구도 같아요. 그러나 해가 솟는 동쪽은 오행 목에 해당하여, 일본은 오히려 한국과 비슷한 목(동쪽)의 기운을 가진 국가로 해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오행으로 본 <파묘> 시나리오는 국가가 아닌, 가치 간 대결 구도에 가깝습니다.
<파묘>에서 나온 문(文), 자연, 성장은 오행 목에 포함하고 무(武), 가공품(쇠말뚝), 통제는 금에 포함할 수 있어요. 이를 적용해 <파묘>의 금극목 구도를 보면 한일 관계가 아닌 문과 무, 자연과 가공품, 후대 성장과 외부 통제예요. 그리고 이 관계를 해결하는 최민식의 정체성과 가치관도 금(아버지, 보수, 실리)에서 수(할아버지, 세대교체, 지혜)로 변하죠. 그럼 사건 종결자 최민식의 심리 변화와 시나리오를 오행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최민식은 흉지의 영향이 무서워 원래 파묘 의뢰를 거부하며 보수적 태도(金)를 보였죠. 그러나 딸의 결혼식 예정을 언급하며 최민식은 아버지(金)에서 할아버지(水)로 정체성 변화를 암시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손자뻘인 의뢰인 자녀(木)를 구하기 위해 파묘를 결정했어요(수생목).
통제 상황(金)에서 최민식은 결국 지혜(水)를 발휘하여 가공품인 쇠말뚝과 무인을 상징한 오니(金)의 힘을 빼고 후대를 위한 성장(木) 환경을 만들었습니다(금생수, 수생목). 그리고 마지막에 죽어가던 최민식은 딸의 결혼을 꿈꾸며 회생합니다(할아버지가 될 가능성, 수). 즉 금에서 수로 트랜스 아이덴티티 현상이 일어나며 그는 문제 해결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맞이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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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행 개념에 비추어보면 최민식의 상대는 일본이 아니라 금에 해당하는 가공된 쇠말뚝, 외부 통제, 무력, 정체한 자신이죠. 이 관점에서는 우리의 상대도 특정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인류를 해할 수 있는 물건, 생각, 행위, 자신입니다.
물론 <파묘>에는 역사 배경과 함께 한일 대결 구도가 일부 담겨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일 뿐이지, 우리가 봐야 하는 달이 아닐 거예요. 만일 달을 보기 위한 렌즈가 필요하다면, 오행이라는 렌즈를 한 번 사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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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홍유선, 「명리학 관점으로 본 트랜스 아이덴티티: 천간합화(天干合化) 적용을 중심으로」, 『문화·경영·기술』 제1권 제1호,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2021.
홍유선·임대근, 「관광 스토리 메이킹을 위한 오행(五行) 사상 적용 방안」, 『인문사회21』 제10권 1호, 아시아문화학술원,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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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반일 #오행 #트랜스아이덴티티 #시나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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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만사범대 인문대학 전임강사. 한국외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고 아름다운 이치(佳理)를 찾고 있어요. 문화정치에 관심이 많아 한류, 소프트파워, 국가정체성, 이데올로기, 다문화사회를 연구하고 있죠. 동양철학에도 신비감을 느껴 동양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답니다. 현재 국립대만사범대 한국학연구센터 센터장, 중화민국한국연구학회 이사,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해외이사, 한국외대 대만연구센터 편집위원, 국립가오슝대 한국연구센터 협동연구원,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특임연구원도 맡아 활동하고 있어요. 이러한 활동과 교류를 통해 공영하는 다문화공동체 형성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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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치만 木金 이후 다시 土니까요! 여전히 연휴인 것만 같아요. 저는 이번 추석에 속초-정동진-울산-인천까지 두루 다녔는데요. 비록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가끔은 이런 것들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여러분의 추석 연휴는 어땠나요? 해피 추석이셨기를 바랍니다!🧡🌝
오늘로 5기 악씨레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좋은 글로 많은 영감을 주신 권동리, 양인화, 홍유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DITOR 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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